김봉우(독도찾기운동본부 일꾼)


북한과 일본의 수교협상이 묘한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지난 9월 북일 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언론에 비친 느낌은 일본이 오랜 적대관계를 끝내고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을 것으로 간주되었다. 오랜 기간 북일 수교문제가 시련을 겪으면서 그래도 항상 가능성을 남겨둔 채 이어져 왔고 특히 고이즈미 총리가 9월17일 북한방문을 앞두고 주위 사람들을 물리치고 정신통일까지 해가면서 정치적 문제를 다듬고 또 다듬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대를 모았던 게 사실이다.

9월17일 고이즈미 총리가 북한을 실무방문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한자리에서 괴선박 문제에 대해 "군부의 일부가 자체 훈련차원에서 한 것이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라는 확답을 주었고 미사일 문제도 2003년까지 시험발사를 동결한다고 선언한 것을 금후 기한없이 동결하기로 약속했다. 역사청산 문제도 일본의 입장에서 처리, 배상차원이 아니라 경제협력 방식에 의거한 해결로 가닥을 잡아 북한이 역사청산의 명분을 포기하였다. 일본인 납치의혹 문제에 대해서는 11명의 일본인을 특수부대가 납치하여 그중 4명이 생존해있고 6명이 사망했으며 남한침투를 위해 망동적 행위를 저지른 것이라고 일본의 문제제기를 완전하게 인정하였다.

이런 기초위에서 양국 정상은 서로 공동선언문에 서명하고 빠른 시일안에 수교협상을 재개하여 2002년도 안으로 국교를 트기로 합의하였다. 세계여론도 양국의 수교의지를 높게 평가하고 일본 국내 정치도 30-40%대에 머무르던 고이즈미의 인기를 56-70%대까지 끌어 올렸다. 고이즈미도 이 정도면 수교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문제를 밀고 나갔다.

그런데 김정일 위원장이 오후 회담에서 어쩔 수 없이 인정했던 일본인 납치문제가 북일수교의 방해물로 떠오르고 말았다. 양 정상이 서명한 합의문을 역사적인 것으로 거론하던 일본 언론이 북한을 일러 범죄국가라고 지칭하면서 문제는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의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몰고 나왔다. 추가 납치가 더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등장했다. 모든 행방불명 사건을 모두 북한의 납치로 몰아가는 극단적인 시각도 등장했다. 일본정부는 납치사건 전담기구를 새로 설치하고 수교교섭 전에 납치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하고 북한에 남아있는 생존자를 10월중으로 귀국시키기로 방침을 정했다. 일본인 90%는 북한과의 수교를 반대하고 나섰다.

모든 사람들이 납치자 문제는 김정일 위원장이 너무 솔직하게 고이즈미에게 고백했기 때문에 이렇게 문제가 꼬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태의 흐름을 보면 오전에 고이즈미는 집요하게 이 문제를 물고 늘어졌고 이 문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더 이상 수교교섭이 진척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도시락까지 싸들고 따지러 간 사람들이 호락호락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사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솔직한 고백이 오히려 장애가 된 점도 어느 정도는 인정된다.

일본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큰 신문들의 논조는 매우 자극적이다. 요미우리 신문은 "국민 불신감 커진다", "납치경시 외교", "핵, 경제협력 실현은?", "북 안보카드 온전" 등으로 사실상 북일수교가 안되도록 분위기를 몰고 있다. 극우의 대명사인 산께이는 "약속이행 의문", "8인 사망...왜 서명", "정권운영에도 영향" 등 수교회담의 분위기에 초를 치는데 열심이다. 산께이는 더 나아가 "너무나 참혹한 결말에 유가족이 통곡한다", "국가적 범죄에 분노하며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과거청산과 배상도 서두르지 말고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대결분위기의 지속과 대북 압박정책을 노골적으로 주문하고 나섰다. 이른바 진보지라는 아사히나 니께이도 논조는 약하지만 납북문제 우선으로 내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여론에 밀린 북한은 일본인 5명을 임시로 귀국시키는데 동의했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적십자회담을 통해 귀국한 이들의 북한 귀국을 막고 가족들과의 생이별을 강요하고 있다. 본인들의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고, 심지어는 가족과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무조건 억누르면서 북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돌려줄 수도 없다고 방침을 못박고 이번에는 북한에 있는 이들 가족을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있다.

지금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들은 좌불안석이다. 학생들, 특히 조선옷을 입은 여학생들은 또다시 일본 학생들의 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조선옷을 입은 여학생들은 심심하면 아니면 일본이 기분 나쁜 무슨 사태만 나면 면도칼로 옷을 찢어 못쓰게 만들고 폭력과 희롱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 교포들은 그들대로 악의 제국 출신이라는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 북일수교 과정에 드러난 납치문제로 일본의 역사범죄는 간 곳이 없다. 심지어는 일본내에서 과거 일제가 저지른 역사범죄와 지금의 범죄는 비교할 수 없는 질적 차이를 지니고 있으니 과거의 범죄는 시대의 산물이고 지금의 범죄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이니 철저하게 단죄해야 한다는 괴변까지 등장하고 있다. 북일수교는 이제 간 곳이 없다. 북한은 납치국가이니 강하게 다스려 항복을 받아 소멸시켜야 한다는 것이 지금 일본 언론의 논조이다.

그동안 한국내에서는 일본은 상당히 양식이 있는 국가, 국민으로 치부한 사람들이 많았다. 3김을 비롯해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이 특히 그랬다. 나이든 사람의 회고도 그렇고 젊은 사람들 속에서 그런 풍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북일수교 과정을 보면서 몇 가지 분명하게 짚어야 할 일들이 있다.

우선, 일본에 소수의 극우파가 있고 이것이 문제라는 인식이 한국에 퍼져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면 극우파란 결국 일본국민 모두를 가리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고이즈미는 부시 이상 가는 국수주의자이지만 이런 고이즈미조차 나설 수 없는 극단적인 분위기가 대중적으로 퍼져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일본과는 양식있는 대화를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다음으로, 철저하게 자기위주의 일방주의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는 점이다. 나의 슬픔은 슬픔이고 너의 슬픔은 오락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네가 하면 스캔들이다. 내가 하면 정의이고 네가 하면 납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의 가치관이다.

셋째로, 지나치게 감정위주의 대응방식에 길들여져 있다는 점이다. 외교를 하면서 도시락을 싸가고 선물로 가져온 송이를 불태워 버리고 남의 처지나 말은 듣지 않고 내 이익만 강요하는 것이다.

이번 일본의 납치사건에서 문제가 된 많은 정보는 지난날 한국에서 흘린 것들이다. 일본은 이런 근거없는 소문을 진실인양 내세워 북을 압박하는 것이다.

일본에 대한 감상은 금물이다. 이제 일본의 본성을 보면서 앞으로는 함부로 일본을 가볍게 평가하거나 헛된 지식 나부랑이로 잘못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일본인의 이런 섬뜩한 자세를 바르게 보는 한국인이 아직은 언론지상에 등장하지 않고 있다. 낯간지러운 유식한 낱말 자랑이 전부이니 그것이 답답한 일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