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통일부 장관은 反통일 장관이란 말이 있었다. 반공이 국시(國是)로 치부되던 시절 통일부 장관의 운신의 폭은 그만큼 좁았다. 그러나 지금, 민족화해시대의 통일부 장관은 그전과는 달라야 한다. 요즘 같아서야 장관 명줄도 별 볼일 없지만 그래도 명색이 재상(宰相) 아닌가. 무릇 통일부 장관은 민족의 이익과 통일을 위한 장관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그 해법에 있어 북미간에 큰 차이가 있는 가운데, 정세현 통일부 장관의 발언과 행보에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 역대 어느 정부보다 남북문제와 통일문제에 기대를 갖게 했던 김대중 정부에서 이제까지 통일부 장관은 모두 5명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보수와 개혁세력의 전체적 지지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첫 통일부 장관에 `우익인사이고 신중한 통일론자`인 강인덕(1998년 3월-1999년 5월)씨를 기용했다. 그러나 강 장관은 새 정부 들어 남북간 첫 회담인 1998년 4월 중국 베이징의 비료회담에서 `상호주의`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회담을 결렬시켰다. 그는 이후 재임기간 내내 북측의 비난에 시달렸다. 그는 민족화해시대를 열기에는 걸맞지 않는 장관이었던 듯싶다.

◆ `햇볕정책의 전도사`로 불린 임동원 장관(1999년 5월-1999년 12월 / 2001년 3월-2001년 9월)은 2기와 4기 두 번에 걸쳐 장관직을 수행했다. 김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과 함께 통일.외교.안보문제에 달통했지만 정작 그는 재임중에 변변찮은 남북교류 한번 제대로 못했다. 특히 미국에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서 대북 강경정책을 폈고 국내에선 야당과 수구세력으로부터 집중적인 압력과 견제를 받았다. 임 장관은 결국 2001년 민간차원의 8.15평양공동행사 파문의 유탄을 맞고 야당이 낸 해임안이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물러났다. 물론 그는 이후 다른 중책을 맡았지만 통일부 장관으로서는 가장 불운한 편이었다.

◆ 3기는 학자 출신 박재규 장관(1999년 12월-2001년 3월)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그는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 합의를 이끈 주무장관이었다. 그는 남북화해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그는 재임중 후회없는 장관활동을 한 듯하다. 물러난 뒤에도 그는 6.15 공동선언 합의의 당사자답게 대학과 연구소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그는 북미간 미묘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여러 세미나나 강연 등을 통해 외곽에서 정부측 입장을 측면 지원해 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그는 가장 성공적이고 또 운대가 맞은 장관이었다.

◆ 5기 홍순영 장관(2001년 9월-2002년 1월)은 단명했다. 홍 장관은 9.11 테러사태 후 금강산에서 어렵게 성사된 제6차 남북장관급회담(2001년 11월)에서 아무런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특성상 남북문제는 외교문제가 아니라 민족문제다. 그러나 외교쪽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남북문제를 외교적으로 다뤘다. 그는 결국 북측으로부터 "현 당국의 통일부 장관인지 야당의 통일부 장관인지 가려볼 수 없게 하고 있다"는 공박을 받았다. 외교부 출신인 홍 장관은 애초부터 통일부 쪽엔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다.

◆ 지금은 6기 정세현 장관(2002년 1월-현재)이다. 정 장관은 취임초부터 왕성한 대중강연을 통해 햇볕정책을 전도하면서 `대북퍼주기` 논리를 비판했다. 지난 7월25일 북측이 6.29서해교전사태와 관련 `유감표명`의 전통문을 보냈을 때 그는 이를 `사실상의 사과`로 받아들여 남북대화 재개의 물꼬를 텄다. 또한 정 장관은 8차 남북장관급회담때(2002년 10월19일-22일) 공동보도문에 합의하고 평양에서 돌아오자마자 `미국의 대북 핵개발 의혹이 과장됐을 수도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 이로써 정 장관은 할 말은 하는 장관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북핵문제`의 파장인 북미기본합의서 파기여부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대북 중유제공 문제에 있어, 한.미.일 3자의 입장에 미묘한 차이가 감지되고 있다. 미국은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하고 있고 일본은 11월분까지 공급한 뒤 12월분부터 생각해보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내년 1월까지는 중유가 공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2개월의 차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더 중요하다. `민족의 이익`을 위한 통일부 장관으로서 정 장관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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