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정주(중앙여자고등학교 교사)


지난 10월 마지막 주에 아이들의 자치적인 활동으로는 최대의 행사인 특활 발표회를 하였다. 학교마다 그 규모나 내용 등이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우리 학교는 해마다 그 규모를 확장하고 있는 바람직한 경우이다.

동아리에 속한 아이들은 이 행사가 1년중 최대의 행사여서 준비하고 발표하는데 1년, 혹은 2학년 때까지라면 2년을 준비하는 셈이다. 각종 동아리에 속한 아이들의 마음가짐은 각별하다. 풍물, 댄싱 스포츠, 중창단, 응원단, 연극반 등은 이날을 위하여 많은 날들을 연습한다.

그리고 전시를 위주로 하는 별관측반 , 수학반, 만화반, 컴퓨터반 등의 전시능력은 대단하다. 가히 혀를 내두를 만 하다. 이때 동아리 지도 교사의 역할이 유명무실할 때가 있는데 내가 그랬다. 내가 몇년간 맡고 있는 별관측반 아이들에게 그저 내가 한일이라고는 "잘 되가니?"라고 물은 것 밖에는 없다.

이번 행사는 동아리뿐만 아니라 특활반도 참여하는, 소수 학생의 잔치가 아닌 모든 학생의 잔치로 하겠다는 취지여서 학생회에서 통일 사랑반도 전시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뢰가 들어왔다.

개인적으로는 참 가치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나 역시 올해 처음 맡은 반이고 특활반 아이들은 동아리 아이들과는 달라서 열정이나 전문성이 많이 떨어지는데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과 의논해 보려고 말을 꺼내보니 예상과는 달리 아이들이 의욕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적극적으로 매달려서 하겠다는 2학년 아이들, 8명이 나섰고 그 이후 전체 회의에서 다루어볼 주제 등을 의논하면서 일을 추진하게 되었다. 통일 의식에 대한 설문조사, 6.15 공동선언, 한참 아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미선 효순 사건과 그 사건의 배경에 해당하는 소파법 등, 그리고 북한에 관한 퀴즈를 준비하여 많이 맞춘 아이들에게는 단일기가 그려져 있는 뱃지를 선물로 주기로 하였다. 아이들은 내가 조금만 도움을 주면 거의 모든 것들을 내가 생각한 수준 이상으로 해내었다.

북한 만화를 비디오로 보여주려고 통일부에 알아봤지만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다면 직원이 나와서 틀어주겠지만 이런 식의 축제에는 안된다고 하여(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포기했고, 인터넷에는 방송국에서 제공하는 여러 개의 북한 만화 등이 있었으나 교실에 있는 컴퓨터가 구형이라서 결국 진행하지 못하였다. (이것만 틀어줬어도 시청각에 민감한 요즘 아이들에게 더 많이 다가갈 수 있었을텐데......)

아이들은 이론적인 부분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내가 제시하는 여러 가지 자료들로 보완하고 있었고 단일기를 일일이 그리고 자르는 등의 손과 시간이 많이 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날들을 투자하였다.

축제 당일 교실은 단일기가 가득 매달려있고(그것만으로도 왜 그렇게 가슴이 벅찬지...) 아이들이 준비한 게시물 등과 전교조 서울지부에서 지원을 받은 통일학생사진 등을 전시하니 그런 대로 훌륭한 전시가 되었다. 아이들과 나는 만족했다.

우리 학교는 인문계 고등학교여서 그런지 통일교육에 별반 관심이 없고 혹시나 누가 아주 열의를 갖고 있다면 그 일은 어쩌면 아주 개인적인 일로 비추어지는 분위기이다. 다른 학교도 사정은 비슷하겠지만. 오히려 옛날과는 달라진 세상에서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통일교육의 수준에도 턱없이 부족한 편이다. 사람들의 의식은 달라진 사회의 의식에도 못미치는 경우가 참 많은데 우리 학교의 통일교육도 그런 편이다.

발표회를 하면서 그런 척박한 곳에서 나름대로의 한발자국을 내디딘 게 아닌가 하는 만족감이 들었다.(너무 지나친 착각일까?) 미숙한 점도 많고 잘못한 것도 많지만 이렇게 내딛은 한발자국이 나중에는 작은 길을 만들고 그 길이 점점 넓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참 행복한 축제였다. 그리고 언제나 아이들이 나의 스승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선뜻 나서 준 것은 아이들이 아닌가? 내가 아무리 의욕이 있으면 무얼 하겠냐! 내가 혼자 할 수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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