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김서원(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위원)


이른바 `북한 핵파문`이 12일 동안 지속되는 와중에도 입을 굳게 닫고 있던 북이 드디어 미국을 향해 일갈하고 나섰다.

10월 25일, 북은 <조선외무성 대변인 담화>(이하 <담화>)의 형식으로 문제를 풀고 싶으면 <조-미 불가침 조약>을 맺자고 미국에 제안하였다. 드디어 본격적인 대미공세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이번 `핵파문`을 되짚어보고, <담화>에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고 미국의 대응을 예상해 본다.

1. `핵파문` 다시 본다 - 미국의 의도와 계획을 중심으로

필자는 지난 22일 발표한 글 "북한 핵개발 시인 파문과 한반도 정세 전망"에서 미국을 포위.고립해 왔던  이북은 주동적으로 `핵파문` 상황을 만들어 `악랄하고 노골적`으로 나오는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고 핵개발 계획과 미국의 핵선제공격 정책 포기, 북의 자주권 존중 등을 맞바꾸는 일괄타결을 노렸다고 분석했다.

이번에는 미국의 계획과 의도를 중심으로 이번 핵파문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미국의 대북 강경파들과 정보기관, 대외정책 팀들은 최근 한반도 정세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었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7월말부터 시작된 남북관계의 급진전과 북-러, 북-중 관계의 공고화, 북-일 정상회담 등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북의 주동적인 공세였다.

한편 유럽연합이 적극적으로 북에 접근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행된 북의 경제개혁과 신의주 특구 지정 등은 이북이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 및 관계 정상화에 목을 매지 않아도 "경제강국"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시위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밀릴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미국은 "불량국가와는 대화할 수 있어도 협상할 수 없다", "미국이 공격받기 전에 선제공격한다" 정도의 군사패권적이고 일방주의적이며, 막연한 대북 적대정책을 좀 더 구체화한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북이 농축 우라늄장비를 구입했다는 정보를 파키스탄으로부터 입수한 것은 지난 7~8월께로 미 국무부 부장관 아미티지가 일본을 방문하기 직전이라고 한다. 미국은 당시 이를 계기로 북을 불량국가로 재규정하는 명분을 확보하며 한반도에서 입지를 재구축할 계획을 수립했다는 것이다.(1) 부시 정권 초기부터 부정해왔고 또 이른바 `북한붕괴 시나리오`의 중요한 단계로 설정해놓았던 제네바 합의 파기를 서둘러 결행할 채비를 한 것이다.

북-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을 방문한 아미티지는 일본이 북과 성급하게 접근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북이 농축 우라늄 방식의 핵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흘린 사실이나, 고이즈미가 평양으로 출발하기 전날 미 국방장관 럼스펠드가, 북이 이미 한 두 개의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발언을 한 것이 모두 이런 맥락이었다. 그런데 납치 문제 등으로 북-일 정상회담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던 미국은 북의 주동적인 납치 문제에 대한 조치로 북-일 공동선언이 탄생하자 서둘러 대북 특사 파견을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북에 `핵개발 증거`라는 것을 들이대며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미국 특사 켈리는 "핵무기뿐만 아니라 더 강력한 무기도 있다"는 북의 역공세에 놀라 이 사실을 12일 이상이나 숨기며 대책을 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 12일 동안 백악관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백악관에서 열린 대책회의에서는 어떤 경우든 섣불리 군사적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났다고 한다.(2) 그 이유는 북·중·러 동맹체제가 미국의 대북 군사력 사용의 방어망 역할을 하고 있으며, 북의 자체 군사력 역시 막강하고 또한 한국 국민들의 저항 역시 매우 강하며 이라크 공격을 둘러싸고 미국의 군사패권적 행태가 비난을 받고 있는 조건 등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평화적 대화 해결 원칙`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대북 적대정책의 기조 아래 북이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으며 파기된다면 그 책임이 북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려고 했다. 미국 언론들 역시 대북 적대적인 논조의 주장을 쏟아냈다.

10월18일자 <워싱턴 포스트> 사설은 "북한은 무장해제를 하든지 아니면 국가붕괴의 길을 택하든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주장했으며, <뉴욕 타임즈>는 같은 날 사설에서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핵 관련 진실은 무조건적 강제로 규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3)

미국 행정부의 어느 고위 관료 역시 10월20일자 <뉴욕 타임즈>를 통해 "부시 행정부는 북-미 기본합의를 파기하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흘렸으며, 미 국무장관 파월 역시 미국 주요 방송사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북한이 기본 합의 무효화를 선언했다", "합의 당사자 가운데 한쪽이 무효화를 선언했다"는 등의 발언을 하였다.(4)

상황은 미국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듯이 보였다. 유럽연합이 대북지원의 전면 재검토 가능성을 밝혔고, 일본이 북일수교 협상에서 납치문제와 함께 북핵 문제의 해결을 의제로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라고 공언했으니 말이다.

바로 이러한 때에 북은 <조선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한반도 핵문제의 근원은 미국의 적대정책에 있으며, 제네바 합의를 위반한 것도 미국이며, 핵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불가침조약`을 맺자고 선택을 강요하게 된다. 이제, 좀더 구체적으로 <담화>의 내용을 살펴보자.

2. <조선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 담긴 의미

<담화>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정도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북이 `시인`했다고 알려진 `핵 개발계획` 혹은 `핵무기 개발계획`과 관련한 북의 공식적 입장이 담겨 있다.

<담화>에서는 `미국 특사는 아무런 근거자료도 없이` 북의 핵문제를 걸면서 `중지하지 않으면 조-미 대화도 없고 조-일 관계나 북남관계도 파국상태로 들어갈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적반하장격의 강도적 논리`이며 `조선반도의 핵문제`는 `근 반세기 전부터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추구하면서` `우리를 핵무기로 위협해 옴으로써 산생된 문제`라고 이른바 북핵문제의 본질은 미국의 적대정책에 있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것은 북이 `핵무기보유`를 시인한 것이냐, 혹은 `핵개발 계획`을 시인한 것이냐를 둘러싼 논쟁이다.

<담화>만을 놓고 보자면 북이 `핵 개발 계획` 혹은 `핵무기 개발 계획`의 실체를 `시인`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담화>의  "아무런 근거자료도 없이 우리가 핵무기 제조를 목적으로 농축 우라늄 계획을 추진하여 조-미 기본합의문을 위반하고 있다고 걸고 들"었다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제네바 합의 위반이라는 정치도덕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라도 북이 섣불리 핵무기 보유의 시인 혹은 핵개발을 시인할 리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 대통령 특사에게 미국의 가중되는 핵압살 위협에 대처하여 우리가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명백히 말해주었다"고 밝힘으로써 미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핵개발을 할 수도 있다"는 그 의도는 부정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북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해석해볼 수 있다. 과거 90년대 초 김일성 주석은 "우리는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는 발언을 했었는데 이것이 `부인`하거나 혹은 `시인하지 않는` 쪽에 가까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정책`(5)이었다.

그러나 미국 특사가 평양에 갔을 때 취했던 북의 입장과 <담화>의 입장은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는 것으로서 `부인하지 않는` 것이 강조된 NCND정책을 쓰고 있는 것이지 `시인`하는 입장은 아닌 것이다.

둘째, 미국이 어떻게 제네바 합의를 위반해왔는지가 명백해 폭로되어 있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이번 북핵파문에서 미국이 쟁점화시켜 얻고자 하는 것은 북이 제네바 합의 위반의 주범이며 그렇기 때문에 대북 적대정책을 유지할 것이며, 북을 `무장해제`시키기 위한 유리한 조건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담화>에서는 미국이 제네바 합의를 어떻게 어겼는지 조목조목 지적한 후 전격적으로 94년 제네바합의 당시 작성되었던 <비공개 양해록>을 공개함으로써 제네바 합의 위반의 주범이 미국임을 명백히 폭로하였다. 물론 그럼에도 미국은 계속해서 `북의 위반`을 물고 늘어지겠지만 <비공개 양해록> 공개로 그 약발은 다했다고 볼 수 있다.

끝으로, 북-미 관계에 대한 원칙적 입장과 현재의 대치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제안을 하고 있다. <담화>에서는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 및 핵압살위협을 계속한다면 "우리가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있다"고 밝힌 데 이어 "작은 나라인 우리에게 있어서 모든 문제 해결방식의 기준점은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 위협의 제거"이며 "이 기준점을 충족시키는데는 협상의 방법도 있을 수 있고 억제력의 방법도 있을 수 있으나 우리는 될수록 전자를 바라고 있다"고 원칙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담화>에서는 또한 미국과 불가침 조약을 맺자고 제안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는 듯 하다.

첫째, `불가침 조약`은 미국이 주되게 노리고 있는 제네바 합의의 파기와 그 책임을 북에 전가하려는 것을 막고 제네바 합의에서 했던 약속을 포괄하는 새로운 제안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현재 미국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제네바 합의 파기`라는 논점을 `대북 적대정책 폐기 후 평화 정착`으로 바꾸기 위한 북의 공세적인 의도인 것이다.

둘째,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으로 조성된 정세를 주동적으로 돌파하여 북-미 관계를 공고한 평화적 관계로 만들어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담화>를 통해 북이 밝힌 원칙적 입장은 미국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한반도 주변 환경을 만들어놓았으며 군사적 대비도 충분히 마련한 조건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것은 북이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자신감의 근거이자 표현이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무모한 정치 경제 군사적 압력 책동으로 하여 우리의 생존권은 사상 최악의 위협을 당하고 있으며 조선반도에는 엄중한 사태가 조성"된 상황은 북으로 하여금 이제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근원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함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클린턴 말기 `평화협정` 직전 단계까지 발전했던 북-미관계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자 원점으로 돌아갔던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북-미 대결관계와 전쟁의 근원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서는 국제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국회비준`이 필요한 `조약`(6)의 형태를 제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과 같이 <조선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 담긴 기본 내용을 살펴보았다. <담화>는 지금까지 논란이 되었던 사실관계들에 대한 북의 입장을 명확히 표명하면서 미국에 대해서도 `불가침 조약`이라는 매우 구체적이며 공세적인 제안을 하며 미국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면 미국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3. 난감한 미국,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평화적 무장해제`라는 말로 집약되는 미국의 `북한 핵 해체 계획`의 내용은 다음의 세 가지 정도이다. 하나는 국제사회에서 북을 강도높게 압박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빌미로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한국, 일본, 유럽 나라들의 대북협력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북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는 것이다.

한편, 미국 의회조사국이 10월21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북핵 사태에 대한 미국의 대응책으로, 1)대북 핵문제와 대 이라크 정책간의 균형적 대처 2) 제네바합의의 존속여부에 대한 판단 및 새로운 대북 협상 틀의 필요성 3)북한이 핵개발 포기 압력을 거부할 경우 강제적인 조치의 사용 가능성 등을 시급히 검토해야 할 정책 시사점으로 제시했다.(7)

미국의 `북핵 해체 계획`은 위와 같은 내용과 수단으로 아래와 같은 두 축의 계획을 실행하여 결국 제네바 합의를 대체할 `새로운 협정`을 통해 점점 축소되어가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의 회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고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이른바 국제 사회를 동원하여 북을 압박하며 핵개발 시설을 해체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두 번째 단계로 대북 봉쇄정책을 실행하여 북을 굴복시키겠다는 것이다.(8)

지금 미국은 어느 단계의 수순을 밟고 있는가?

미국은 먼저 국제사회의 압력을 동원하기 위해 국무부 차관 존 볼튼을 중국과 러시아에 보냈으나 큰 성과가 없었으며 에이펙(APEC)회의에서 한미일 공동 입장을 마련하긴 했으나 애초에 부시가 의도했던 대북 강경입장은 공동발표문에 넣지도 못하였다.

94년 핵위기 때와는 달리 남북관계 역시 북핵문제와 독립적으로 지속될 예정이며 일정한 난관이 예상되긴 하지만 북일수교협상 역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라도 제 갈길을 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국제적 압력`을 동원하여 북을 압박하는 방법이 잘 통하지 않을 경우 그 다음 단계로 미국은 `봉쇄`라는 방법을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봉쇄`는 북이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것이며 또다시 긴장이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북은 `핵무기보다 더 강한 무기`를 선보이는 `억제력`을 사용하여 미국을 협상으로 불러낼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편 지금까지 발전해오던 남북관계를 한 차원 높여내는 것 역시 북이 선택할 대미공세 중 하나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의 사태 추이로 보아 멀게는 2003년 상반기 이내에, 가깝게는 올해 안에 미국이 협상이냐, 전쟁이냐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민족은 2003년을 앞두고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이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민족공조와 민족자주의 입장에 설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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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

(1) 시사저널 10월31일

(2) 시사저널 위의 글

(3) 시사저널 위의 글

(4) 한겨레21 10월31일자

(5) NCND정책(Neither Confirm Nor Deny Policy)

해외에 있는 핵무기의 존재를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미국의 핵정책을 말한다. 제3세계 나라들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 자신이 해외에 배치한 핵무기의 명백한 존재를 모호하게 은폐하기 위해 만든 기만적인 개념이다.

(6) 1969년 ‘조약법에 관한 빈협약’(1981년 효력 발생) 제2조 제1항 (a)는 조약의 정의를 “국가간에 서면 형식으로 체결되고 국제법에 의하여 규율되는 국제적 합의이다. 단일문서 또는 2개 이상의 관련문서로 구성되는가, 또는 그 명칭을 어떻게 하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93, 94년 핵위기를 거치며 맺었던 `합의(agreed framework)`는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었으며 `조미평화협정`에서 `협정(agreement)`은 국회비준 없이 행정부가 단독으로 외국과 맺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 행정부가 바뀌게 될 경우 입을 닦아 버릴 가능성이 있다.

(7) 연합뉴스 10월29일

(8) 시사저널 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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