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초(3-5일) 켈리 미 특사단 일행의 방북시 북측의 `핵프로그램 시인`으로 야기된 이른바 `북핵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다가, 27일 제10차 APEC 한-미-일 정상회담에서의 공동발표문을 계기로 그 해법이 점차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애초 미국의 일방적 누출로 야기된 이 파문은 ▲북한이 과연 시인을 했을까 ▲시인을 했다면 무슨 이유에서일까 ▲핵 개발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그렇다면 북미중 어느쪽이 먼저 1994년 기본합의문을 어겼는가 등등의 의문점과 쟁점을 낳았다. 원래 이처럼 중대한 문제가 터졌을 경우 어느 한편의 얘기만 듣거나 또는 그에 근거해 예단을 내려서도 안된다. 다른 편의 얘기를 듣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 관련국들의 견해도 들어봐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미측의 `북한 시인` 누출 - 미국의 입장표명 - 남북장관급회담 개최 - 북측 외무성대변인 담화발표 - APEC 한.미.일 정상회담 - 북일 수교회담 재개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당사국과 유관국들의 입장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먼저, 북한과 미국간의 기본합의문 파기를 둘러싼 책임공방이 치열하고 북핵문제에 대한 해법제시가 다르다. 우선, 양국은 서로 상대방이 기본합의서를 어겼다고 주장한다. 명분싸움이다. 하지만 양국은 파기에 대한 후속조처를 아직 취하고 있지 않다. 미측이 취할 수 있는 것은 중유제공 철회와 KEDO(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에서 추진중인 대북 경수로사업단의 철수다. 그러나 아직 그 뚜렷한 징후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북측은 미측에 기본합의문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듯 양국은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양국은 핵문제 해결책에 있어서도 사뭇 다르다. 북한은 25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자주권을 인정하고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며 ▲경제발전에 대한 장애를 조성하지 않는 조건에서 협상을 통해 핵문제를 해결할 용의가 있음을 미국에 밝혔다. 이에 대해 미측은 `선 핵포기, 후 대화`를 요구하면서 북측의 메시지를 일축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북미간엔 타협점이 없는 듯 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런 와중에서도 평양에서 제8차 남북장관급회담(19-22)이 열리는 등 남북교류 일정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또한 29일 예정된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의 북.일 수교협상 재개가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북핵파문`을 들뜨지 않게 하고 있다. 다만 일본측은 아무래도 미국측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북일 수교회담에서 `핵문제와 일본인 납치문제를 포함한 안보문제에 관한 완전한 이행 없이는 북일 수교교섭이 완료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할 예정`이기에 일본의 돌변이 예측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봐서 미국은 `평화적인 방법`과 `대화를 통한` 해결에 무게를 두고 있는 느낌이다. 막말을 하는 편인 부시가 말을 아끼고 있고, 일본도 숱한 어려움 끝에 성사시킨 북한과의 수교협상 재개를 무효화시키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일단이 APEC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비쳐졌다. 3국 정상들은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신속하고 검증 가능한 방법에 따라 폐기`할 것을 담은 공동발표문을 채택했다. 그러나 여기에 `기한`을 못박지 않은 점으로 보아 `대화를 통한 해결`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읽혀진다.

그렇더라도 북미간의 책임공방과 해법에서의 현격한 차이, 그리고 일본의 변신 등을 예측한다면, 이제부터 북핵문제를 둘러싼 남측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바야흐로 남북이 6.15공동선언의 정신인 민족공조를 시험할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신의(信義)여부는 상황이 어려울 때 나오기 마련이다. 남북이 지난 장관급회담에서 `남과 북은 6.15공동선언의 정신에 맞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핵 문제를 비롯한 모든 문제를 대화의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적극 협력하기로 한다`는 내용의 공동보도문을 낸 것은 민족공조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의미가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핵문제를 놓고 남측이 북측에 말도 못붙일 일이었다. 북측은 핵은 미국과의 문제인데 남측이 왜 끼냐고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터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그 이유는 6.15공동선언 덕택이다. 핵문제는 남북간의 문제가 아닌 북미간의 문제이자 더 나아가 우리민족대 외세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민족앞에 닥쳐온 엄중한 사태`를 6.15공동선언의 합의정신인 민족공조로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미국과의 관계에서 불평등성과 종속성을 보여왔던 남측 당국은 이번 북핵문제 해결과정을 통해 평등성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제8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시작된 민족공조의 단초가 어느 수준까지 높아갈지는 전적으로 남측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북핵문제를 계기로 민족공조를 향한 남측 당국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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