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 박지원 장관실에 들어서면 특이한 사진 하나가 눈에 띈다. 전통 문화재나 유명 화백의 그림이 걸려 있음직한 접견실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대물 낚시광」이라는 게임을 시연하고 있는 스냅 사진이 큼지막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문화 콘텐츠 산업 육성을 위한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박 장관의 면면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새로운 디지털 경제 시대에는 부존 자원과 같은 눈에 보이는 요소보다는 지식이나 정보, 문화와 같은 무형의 요소들이 국가의 부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됩니다. 특히 인터넷 시대를 맞아 아무리 초고속정보망을 구축해 놓았더라도 콘텐츠를 확보하지 못한 국가나 기업은 자신이 깔아놓은 고속도로 위를 다른 국가·기업의 콘텐츠들이 활보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박 장관은 『우리의 역사와 전통이 담긴 문화 콘텐츠를 확보하는 문제는 21세기 선진국 진입 여부를 판가름하는 국가적인 과제』임을 재차 강조했다.

그래서 박 장관은 남북정상회담의 공식 수행원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에도 조선콤퓨터센터의 방문 일정을 꼼꼼히 챙겼다. 조선콤퓨터센터는 북한의 소프트웨어 및 콘텐츠 개발의 산실로 알려진 곳. 박 장관은 조선콤퓨터센터를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고 실제 개발한 제품을 시연해 보았다. 그는 그곳에서 기반 시설은 낙후됐음에도 개발 인력은 수준급이라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북한이 개발한 인공지능형 바둑 게임 「은별」이 지난해 세계컴퓨터바둑대회에서 일본 프로그램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예에서 보듯이 북한에는 우수한 개발 인력이 아주 풍부합니다. 특히 게임과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인력 교류와 같은 사업은 당장 추진해도 남북 양측이 서로 얻을 것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 장관은 『게임 개발 인력이 부족해 중국에서 인력을 수급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도 알고 있다』며 『북한과의 게임 개발 인력 교류를 포함한 다양한 협력사업을 추진할 계획이고 게임업계와 학계 등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중이며 조만간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사업을 마련해서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인력·자본 교류는 물론 남북 공동개발, 해외시장 공동개척을 강구해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실천 방안까지 제시했다. 다만 고급 기술의 유출을 고려해 중·하위급 수준에서의 인적 교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게임을 비롯한 콘텐츠에 대한 박 장관의 이같은 혜안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지난해 5월 취임한 이후 1년여 동안 박 장관은 게임과 음반을 비롯한 문화 콘텐츠 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하루 일정을 30분 단위, 심지어는 10분 단위로 쪼개 쓰면서도 우수 국산 게임의 발굴을 위해 본지와 공동으로 시행하는 「이달의 우수 게임상」 시상식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좋은 게임 개발에 애쓴 수상자들을 격려했다.
『그간 게임은 사행적 이미지로,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인식돼 왔고 음악도 단순히 여가선용 내지는 취미수단으로만 인식해 왔지 이를 산업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부임한 이래 가장 역점을 둔 점은 게임과 음악에 대한 지금까지의 잘못된 인식을 해소하고 지식기반시대의 대표적인 산업으로 육성시키는 것입니다.』

실제로 박 장관은 게임과 음악 등 문화 콘텐츠를 산업 정책의 틀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특별소비세를 폐지했고 벤처업종에 포함시켜 각종 세제 및 금융 지원이 가능하도록 했다. 문화진흥기금을 조성했고 게임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고 지원을 크게 확대했으며 게임종합지원센터·게임전문투자조합 등 국가차원의 종합지원시스템을 구축했다. 인력 양성을 위해 게임 업체를 병역지정 업체에 포함시켰고 PC방 운영의 건전화 시책, 프로 게임리그의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가시화했다.
무엇보다도 문화 콘텐츠 산업에 대한 규제 위주에서 육성책으로 환골탈태한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 등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추진한 것도 바로 그였다.
『앞으로 게임 산업의 내수 및 수출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할 생각입니다. 세계 3대 게임 강국에 진입하기 위해 게임투자조합을 본격 가동하고 100여개의 아케이드 게임 업체가 입주할 게임산업단지를 2003년까지 수도권에 조성하겠습니다.』 이같은 육성방안도 중요하지만 건전한 게임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 역시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장관은 『최근 일부 사행성 게임물이 불법으로 제작·유통되고 있어 일반 국민의 사행심을 조장함은 물론 게임 산업의 건전 육성 발전에도 지장을 주고 있어 매우 유감스럽다』며 『게임물 유통 등에 대한 사후 점검 제도 등과 같은 대책을 마련해 강력히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법물 유통의 근절은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업계의 자발적인 노력을 당부하기도 했다.

문화 콘텐츠 부문에서 박 장관이 게임과 함께 집중 육성하려는 분야는 음악. 『음악 산업은 음반 자체는 물론 영화·애니메이션·게임 등의 콘텐츠에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고부가치 산업으로 그 비중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문화부는 음악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키우고자 올해에 정부 예산 132억원을 들여 음악 산업 관련 기술 개발, 수출 지원, 전문 인력 양성, 대내외 홍보, 유통 등 각종 기능을 종합적으로 지원할 「한국음악산업지원센터」를 10월께 개소할 예정입니다』 문화부는 또 2003년까지 258억원의 기금을 지원해 음반유통·물류구조 현대화 사업을 추진중이며, 올해에 40억원의 기금을 지원해 중앙물류기지 및 음반유통정보화·표준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수도권 지역 공동집배송시스템을 시범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콘텐츠 분야의 주도권을 놓고 부처간 다툼이 일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박 장관은 「상호 보완관계」란 말로 답을 대신했다.
『콘텐츠 산업은 유관 기술이 폭넓고 다양해 정부 한 부처가 모두를 관장·육성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중복 투자의 폐해를 막기 위해 부처별 영역 구분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정보통신부는 운영 소프트웨어와 같은 분야, 교육부는 당연히 교육 콘텐츠, 문화관광부는 문화 콘텐츠라는 영역을 갖고 있으면서 상호 협조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모든 것이 온라인·디지털로 융합되는 시대에 구분은 필요하지만 배타적인 고유 영역을 주장하는 오프라인·아날로그적인 발상을 하는 정부 부처는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일성」으로 받아들여졌다. (전자신문 2000.6.27)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