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옥규(서울 인수초등학교 교사)


한 2년전 쯤으로 기억된다.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단체협약 이행 촉구 집회를 하던 때였다. 무심코 올려다 본 교육청 별관 건물에 걸린 프랑카드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분단을 뛰어넘어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로"라는 문구를 보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예전에 우리가 다니던 대학에나 붙을 프랑카드 문구가 서울시 교육청에 나부끼는 것을 보면서 `세상 참 많이 좋아졌네`하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찡해옴을 느꼈다.
 
`통일`이라는 두 글자를 관(官)에서 쓰지 않고 민(民)에서 사용할 때는 좌경용공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았고, 정부의 통일정책과 조금이라도 다른 스펙트럼이 있으면 가차없이 단칼에 잘라내어 버렸다. 백성들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통일의 대한 열망이 있었지만, 그들만의 잔치로 진행되는 통일쇼(?)만 구경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쓸어 내렸다.

그 시대의 교사들의 삶을 되돌아보자. 대부분의 교사들은 정부가 요구하는 대북정책들을 암송했으며, 백성들을 계몽해야 하는 선구자(?)로서의 자기 몫을 충분히 해 주었다. 시험에 잘 나오는 국가의 통일정책을 체계적으로 주입시켜주고, 이 땅의 철천지 원수(?) 북한을 학생들이 불타오르는 증오감을 가질 수 있도록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그 모든 일들을 교사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가슴 한편에서는 그 짐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답답함이 남는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났다. 2000년 6월 13일 남과 북의 정상들이 평양에서 회담을 갖게되었고, `6.15공동선언`이라는 커다란 성과를 남겼다. 최근에는 2002 남북통일 축구경기, 경의선-동해선 연결 작업 시작, 북일 정상회담, 부산아시안게임에서의 남북의 하나된 목소리와 함성 등 그동안 너무나 막혀있던 통일의 물꼬가 이제 막 터지는가 싶다.

누구도 통일의 물결이 조용히 커다란 기세로 밀려오리라 예측하지 못했다. 분단된지 50년이 지나도록 눈물속에서 살아온 우리 민중들의 의지와 노력이 가슴 뭉클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감격적인 순간들이다.
 
최근의 이런 정세의 변화들은 우리 국민들의 삶과 의식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다. 하지만 어떤 정책이든지 모든 구성원의 동의를 얻기는 어렵듯이 지금 이 땅에서도 정부의 통일정책과 남북관계, 북미관계를 두고서 수많은 이견들이 존재한다.

가끔은 이견의 수준을 넘어서 반통일적 흐름을 타기도 하고 정치인들에 의해서 당리당략에 맞게 모습을 바꾸는 일까지 나타난다. 하지만 통일의 급류를 되돌리기엔 너무나 물살이 거세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 물살을 거꾸로 거스르는 일이 오히려 힘든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 시기에 우리 나라 교육계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이후에 교육부나 교육청은 조금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호시탐탐`과 `적화야욕`이라고 표현하던 그 나라의 정상과 만나서 통일의 약속을 하고, 공동선언문을 만들었다. 갑자기 교과서를 다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예전처럼 가르칠 수만도 없지 않은가? 그런 약속을 하고 온 대통령이 미웠을지도 모른다. 책의 일부 내용과 문구를 바꾸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는 통일과 관련된 교재가 만들어졌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교육부에서 직접 편찬한 것이 아니라 검인정교과서로 만들어졌다. 물론 만족할 만한 수준의 것은 아니더라도 통일에 대해서 국가주도의 사업이 아니라 검인정교과서를 이용해서 학교에서 교육을 수행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교재를 다 보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사회나 도덕 교과서보다는 진일보한 측면이 많았다. 앞으로 이 교재를 재구성하고 더욱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는데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최근의 통일정세나 동향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을 넓혀주는 프로그램의 부재와 교사의 실천적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6.15 공동선언이 나온 뒤 학교내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러한 변화 지점에 대해서 교사들의 관점을 바꿔줄 필요가 있는데 교육부나 교육청은 그리 달갑지 않은(?) 변화 상황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학교에서 연수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통일원이나 통일교육원의 연수자는 최근의 변화상황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과거의 향수에 젖어 반공안보교육 중심의 강연을 하고 있다. 그것의 결과물은 학생들이 최근의 급진전된 통일정세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갖는데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물론,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재함으로 인해서 학교내에서의 자율적 수업을 방해하는 측면도 있지만, 교사 스스로가 과거의 인식과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 인해서 최근의 변화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자기검열을 과도하게 한다는 점도 큰 문제이다.

최근 통일정세 동향에 대한 자의적 해석은 학생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과거의 내용과 관점에서 크게 달라지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전국의 모든 교사가 하나의 관점과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는 없지만 최근의 통일경향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갖게 하는 연수 프로그램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교육청과 교육부는 급진전된 통일의 분위기를 겸허하게 수용하고 학교에서 올바른 통일교육이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 또한 과거에 수구적이고 반통일적인 가르침을 수행했다는 자기 반성 속에서 앞으로 펼쳐질 조국통일 대사변기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극적인 모습으로 일관한다면 통일된 조국에서 우리는 부끄러운 존재로 남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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