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진(중앙대학교 연구교수, 정치학)


북의 핵이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

대다수 많은 이들에게는 갑작스런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래 국제정세의 큰 흐름을 보자면, 어쩌면 당연한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보인다. 누구나 인정하듯 90년대 이후 구 사회주의권 붕괴와 가속화되어온 경제난 가운데, 북한의 모든 대내외적 행보는 일차적으로 체제생존에 맞추어져 왔다.

북측의 입장에서는 고립무원의 국제무대에서 외부로부터의 위협요인을 줄여나가면서 국가의 생존을 도모하는 것보다 더 큰  목표가 있을 수 없었다. 요즘 자주 거론되는 경제개혁 문제 역시 내부적인 문제도 크지만, 적대적인 대외환경이 좀 좋아져야 한 숨 돌리면서 매진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필자는 90년 이래 `합리적 행위자`로서 북한이 취해온 일련의 대외정책이나 그 지향점은 뚜렷한 일관성을 보여주었다고 본다. 한마디로 냉전 이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북한을 일방적으로 `먹지 않겠다`는 국제적 보장을 받겠다는 점, 다시 말해 북미관계 정상화를 통해 핵심적 외부 위협요인을 감소시키면서 체제생존을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주변국들과의 관계개선을 포함해서.

그래서 북한측은 끝없는 `러브콜`을 보냈다. 그럼에도 의도된 것이든 냉전잔재로 인해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든 간에 북한의 그러한 `합리성`을 외부세력들이 마음대로 왜곡해온 측면이 크다. 미국측을 볼 필요도 없이 우리만 하더라도 북측을 `간신히` 화해협력의 대상으로 설정한 게 몇 년밖에 안되지 않는가.

한반도 문제의 본질은 이러한 동일한 대상물(對象物)에 대한 외부의 평가가 외부 행위자들의 주관적 잣대에 의해 부풀려져 왔다는 점일 것이다.  94년의 제네바 북미합의 이후의 큰 흐름만 보더라도 한때를 풍미했던 `북한붕괴설`, `불량국가`에서 `악의 축`으로, 나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미국의 `NPR 보고서`, 최근에는 미국측이 적에 대해서는 `일방적 선제공격`이 가능하다는 군사전략 발표 등등이 있다. 이쯤 되면 북한이 국가안위를 걱정하는 정상적인 행위자라면, 어떻게 편하게 숨쉴 수 있겠는가?

이번의 핵과 관련한 북측의 "문제제기(問題提起)"(시인, 인정이라는 표현은 맥락상 정확하지 않다) 목적도 명확하다. "핵공격이니 선제공격이니 하는 시점에서, 북측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자구수단으로서 핵을 고민해왔고, 그런 위협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제발 북측에 대한 위협적 행위를 중단하겠다고 하라"고 말이다.

따라서 문제의 해법(解法)도 간단하다. 북측이 도발하지 않는 한, 미국의 일방적 공격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상식적이고 간단한(?) 약속만 하면 된다. 9.11 이후 "아프간 공격 다음은 이라크, 북한"이라는 설이 많지 않았는가. 며칠전 필자의 예측대로 북측은 곧바로 그런 주장을 제기했다. 선제공격 안하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말이다. 적지 않은 시간과 상당한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의외로 쉽게 풀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본다. 

이와 관련한 우리 國會의 단면을 보자. "정부가 사전에 알았다면 왜 공개하지 않고,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느냐"는 그럴듯한 질책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의 `알맹이` 있는 대책은 나올 수 없다. 남북관계와는 무관한 독립변수가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바로 미국이다. 진정 합리적 대응책이라면 북한핵의 근원인 북측에 대한 "무지막지한 미국의 위협"을 축소, 제거하는 것인데, 그들은 우리의 심각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략적으로 북측을 무시, 압박, 위협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지 않은가?

이에 북측도 일방적 무시가 아닌 적절한 관심을 가져올 만한 효과를 생각할 법하고, 이는 국제적인 `호들갑`속에 이미 발휘되고 있지 않은가. 위기속의 새로운 기회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탈냉전 이후 미아(迷兒) 아닌 미아신세로서의 북한이 취하는 국가로서의 최소한의 자구행위란 측면을 좀 더 중층적이고, 다면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미국도 이라크와는 다르다고 인정하지 않았는가. 

가수 이미자 선생의 평양 공연을 보노라면, 평소 남북관계에서의 감성적인 걸 애써 억제하려는 필자의 가슴도 억누를 길이 없다. 저들이 무슨 큰 죄(罪)가 있냐고 말이다. 시원하게 막힘없는 한반도기를 보노라면, 언제쯤이면 지도처럼 장벽이 없어지고, 사회곳곳에서 용미(用美)와는 차원이 다른 `숭미사대`(崇美事大)가 지극히 `정상`으로 치부되는 현실도 깨끗이 청소될 수 있을까 하는 `헛된` 꿈을 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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