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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기> 우리에게 단군의 피가 흐르고 있는가 - 이동희(단국대 교수)- `개천절 민족공동행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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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10.11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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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단국대학교 교수)


▶남.북.해외가 함께한 역사적인 개천절 민족공동행사가 평양 단군릉에서 개최되었다.
[사진제공 - 이동희 교수]

남과 북이 개천절 행사를 공동으로 개최하는 오랜 숙원이 이루어졌다. 분단 57년만이었다. 개천절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와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남북 해외 공동 주최로 `개천절 민족 공동 행사`를 4335(2002)년 10월 3일 평양 단군릉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내년에는 서울에서 개최하며 북측 대표들이 내려와 공동 행사를 갖기로 하였다.

필자는 한국농민문학회 소속 남측의 대표단 일원으로 10월 1일부터 5일까지 4박 5일간의 개천절 민족 공동 행사에 참가하여 단군릉 삼성사 등 유적지를 순례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단군 유적지 순례 답사기를 쓰는 계제에 단군에 대하여 쓰고 있는 글 일부를 덧붙인다.

1. 단군 유적지 순례

단군은 누구인가.
이러한 화두를 오래전부터 이야기하고 그것을 써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있고 이번 방북으로 그런 역사의 수수께끼가 풀리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단군릉 단군굴 단군대 등 간군 유적지를 상상으로 쓴 소설 {단군의 나라}의 사후 답사를 겸한 평양행이었다.

1일 아침 10시 준비위원회 사무실이 있는 종로구 경운동 고합빌딩 앞에 100명의 남측 대표단들이 집결하여 인천공항으로 가기 위해 3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있었다. 그런데 버스에 오르지 않고 잘 다녀오라고 전송을 하는 분이 있었다. 김선적 준비위원회 고문이다. 그는 남북 개천절 공동행사를 위해 95년 안호상 선생과 방북하였다가 구속 수감된 일이 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염원하던 행사가 이루어지는 마당에는 못 가게 되어 전송만 하고 있었다.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한 필자. [사진제공 - 이동희 교수]

2시에 북에서 날아온 고려항공기를 타고 평양 순안 비행장까지 1시간도 안 되어 도착하였다. 참으로 가까운 거리였다. 비행장에는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류미영 회장을 비롯한 여러 북측 인사들이 도열하여 남측 대표단을 맞아 주었다. 평양 시내의 보통문을 지나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강변을 거닐고 있는 대형 그림이 걸려 있는 보통강려관에 여장을 풀고 여기서 4박 5일 동안 지정 좌석이 정해진 버스로만 바깥 출입을 하였다.

2일째 되는 2일 아침 7시에 묘향산을 가기 위해 시내를 벗어났다. 출근 시간이지만 교통 체증은 전혀 없었고 버스와 유궤전차 무궤전차 그리고 지하철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도보와 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2시간을 달려 묘향산에 도착하여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이 각국 사절들에게 받은 선물을 전시해 놓은 국제친선전람관을 먼저 둘러보았다. 곳곳에 김 주석의 교시가 큰 돌비석에 새겨져 있었는데 여기는 시로 새겨놓았다.

만산에 붉은 단풍 만산에 붉었으리/로당당 새 시대에 햇빛도 찬란하니/
단풍도 고와라 더욱 붉게 물들면서/산천에 수놓누나 이 나라 새 력사를

[묘향산 가을날에]의 한 연이다.

때마침 5대 명산 조선 8경 묘향산은 단풍으로 물들어 있어 비로봉(1,909) 아래 묘향천 상원동 만폭동 일대는 만산 홍엽이었다. 향산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11세기 초의 우리나라 건축술을 대표하는 보현사를 찾아 경내의 8각13층탑 만세루 수충사를 둘러보았다. 향로봉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해발 864미터 높이에 있는 단군굴(단군사 또는 단군성동)과 단군대 천주석은 여기서 멀리서 바라보며 설명을 듣는 것으로 발길을 돌리는 대신 망경대와  쑥섬의 통일전선탑 등을 보았다.

▶개천절 민족공동행사에 앞서 제를 올리는 남측 이영재 대종교 총전교.
[사진제공 - 이동희 교수]

3일 개천절날은 아침 8시에 출발해 단군릉으로 갔다. 평양시 강동구 대박산 기슭에 거대한 단군릉을 1994년 개건하여 놓았다. 45정보의 면적에 개건비 구역, 석인상 구역, 무덤 구역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무덤은 집안(輯安)의 장군총 모양의 3배, 높이 22미터 한 변의 길이 50미터의 돌각담 무덤(피라미드)이며 그 속의 묘실에는 단군의 초상이 걸려 있고 단군 내외의 유골을 유리관에 넣어 보여주고 있다. 부분 부분의 유골을 맞추어 복원해 놓은 것이다. 그것을 또 전자상자성 공명법을 적용하여 5011년(1993년 현재) 전의 것이라고 과학적으로 고증해 놓고 있다.

▶개천절 민족공동행사에 참석한 남.북.해외 대표들. [사진제공 - 이동희 교수]

묘실을 돌아보고 난 후 단군릉 앞에서 제를 지나고 개천절 민족 공동 행사를 거행하였다. 남측에서는 우리 대표단 외에 천주교 사제단들 해외 동포들 그리고 북측이 동원한 학생 시민들 치마저고리를 입은 많은 여성들도 참가하여 무덤구역을 꽉 메웠다. 식은 남북 대표의 기념사가 있었고 또 남북 대표들의 연설이 있었다. 하나 같이 민족 분단 이래 57년만에 처음으로 열리는 이번 개천절 공동 행사는 우리 민족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확인하였고 개천절 민족 공동 행사가 온 겨레가 통일의 길을 달려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피력하였다. 행사가 끝나고 개건비 구역 광장에서 음악 무용 공연이 있었는데 아리랑이 연주되는 끝무렵에는 모두들 나와서 춤마당을 이루었다. 이런 것이 통일이구나 하는 소박한 느낌도 들었다.

▶단군릉 앞에서 기념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북측 류미영 단군민족통일협의회 회장.
[사진제공 - 이동희 교수]

대동강 능라도를 바라보는 위치에 있는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고 조선력사박물관을 관람하고 오후 3시부터는 인민문화궁전에서 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역사학자들의 공동 학술회의가 있었다. 남측의 단군학회(회장 윤내현)와 북측의 사회과학원 조선력사학회(회장 허종호) 주관이었다. 양측에서 번갈아  준비한 논문을 발표한 후 토론도 없이 평행선을 가고 있는 남북의 단군 인식에도 불구하고 공동성명문을 한 목소리로 낭독하였다. 단군을 실제인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구원산 삼성사 삼성전을 참배한 남측 대표단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제공 - 이동희 교수]

4일은 황해도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를 참배하였다. 일제가 한일합방이 되자 제일 먼저 불태워버린 삼성사를 2001년 복원하여 원시조인 단군, 단군의 아버지 환웅, 단군의 할아버지 환인 삼성(三聖)의 천진(天眞)을 모셔 놓았다. 아사봉이 바라보이는 옛 아사달 구월산 중턱에도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었고 날씨도 좋아 전형적인 가을 하늘을 연출하였다. 그리하여 이날 삼성전의 단군 할아버지는 마치 우리의 몇 대 할아버지인양 가깝게 느껴지며 민족의 핏줄을 진하게 연결해 주는 것 같았다.

▶구월산 팔담골에서 남측에서 참가한 작가들 오른쪽 두번째부터 송기숙(소설가),
북측 안내원, 구중서(시인), 이동희(소설가), 권숙이(시인), 손병철(시인) 민영이(소설가),
박윤규(시인), 심형찬(수필가). [사진제공 - 이동희 교수]

전날 환영 만찬에 이어 이날 저녁은 청류관에서 환송연이 있었다. 남측 대표인 개천절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 한양원 위원장은 이번 개천절 민족 공동행사는 통일 의지와 우리가 한 민족 한 핏줄이라는 민족 동질감을 확인하는 뜻깊은 행사였다고 평가하였고 남북이 박수를 보냈다.

숙소로 돌아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그리고 이튿날 5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순안 비행장에서 다시 고려항공을 타고 북한 상공을 나르며 <로동신문>을 보며 생각해 보았다. 단군은 누구인가. 민족이란 무엇인가. 핏줄은 무엇인가. 그것은 감홍시가 입 속으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자주 같이 행사도 하고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서먹한 대로 안 통하는 대로 답답한 대로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것이다.

▶개천절 민족공동행사의 식후행사로 열린 공연의 끝무렵 아리랑이 연주되자 남북대표
들이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었다. [사진제공 - 이동희 교수]

하나의 생각이 떠오른다. 지하철 부흥역에서 타고 영광역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였다. 옆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우리에게 손을 흔드는 평양 시민들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한 청년이 손을 잡아주었다. 한 여성도 수줍게 웃으며 손을 잡아주었다. 손이 뜨거웠다. 거기에 뜨거운 우리의 피가 전류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었다. 그것이 민족이었다. 단군의 피였다.

필자는 이 글이 끝나기 전에 서툴게나마 화두를 정리해보려 한다. 단군은 전자상자성 공명법으로 측정되어 확인되는 고대의 화석이 아니라 오늘 남북의 거리를 서성거리는 불특정 무작위의 선혈 속에 흐르고 있는 우리의 의지라고.

2. 단군은 누구인가

▶삼성사 삼성전에 모셔놓은 단군의 천진(天眞).

단군은 인간인가. 신인가. 신인(神人)인가.
단군이 인간이라면 벌써 죽은 지가 오래된 사람이다. 만일 단군이 신이라면 어딘가에 살아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신인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정말 단군은 사람인가. 단군은 사람의 아들인가. 신의 아들인가. 아니 웅녀의 아들 곰의 자식인가. 그래서 우리는 곰의 자손인가.

우리의 국조(國祖) 단군(檀君)에 대하여 확실히 아는 것이 없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단군이 사람인지 신인지 동물인지조차도 구분을 못하고 있다. 역사학자는 단군의 존재를 신화로 돌리고 있고 종교학자들은 단군을 신흥종교나 미신으로 돌리고 있다. 일부 종교인들은 단군의 목을 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먼 옛날의 이야기 전설 속의 할아버지로 희미한 안개 속의 동화로 알고 있고 또 그밖의 많은 사람들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관심이 없다. 우리의 국조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하는 동안에 나라는 빼앗기고 갈라지고 동족상잔, 서로 싸우고 있는 참으로 한심한 백성들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서 왔으며 나의 뿌리는 무엇인가.

그것을 모르고서야 어떻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며 백성이라고 할 수가 있는가. 동물이나 다름없고 미개인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정말 곰의 후예라면 모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니 정말 단군은 사람이 아닌 것인가. 신과 인간과 동물이 합체된 존재인가. 어떤 종교적인 표현대로 삼위일체인가.

삼신(三神)이 있다. 삼신할머니도 있다. 삼신을 환인 환웅 환검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보은 속리산 법주사 가는 길에 조자용(2000년 작고) 선생이 삼신사(三神祠)를 세우고 세분의 삼신을 모셔 왔다. 그것은 황해도 구월산에 있는 삼성사(三聖祠)를 생각해서 세운 것이다. 지리산 자락 청학동에 삼성궁을 만들어놓은 것도 그렇다고 본다. 환인 환웅 단군 세분을 모셔놓은 삼성사는 4244(1911)년 일제에 의해 해체되었다가 4334(2001)년 개건(改建)되었다. 삼성(三聖)에 대한 생각은 우리의 옛 기록인 {삼성기(三聖記)}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환인 환웅 단군의 얘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되어 있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답이 있는데 공연히 어렵게들 생각하고 있다. 단군의 무덤이 있다. 평양에 있다. 대박산 기슭에 단군릉을 거대한 돌무덤으로 개건(改建)하여 놓았다. 개건이란 말 그대로 다시 고치어 세웠다는 것으로 기존의 무덤을 개축했다는 말이다. 유골도 나왔다. 거기에 안호상 선생도 다녀오고 남한의 많은 인사들이 다녀왔다. 필자도 가서 두 눈으로 보고 온 것이다.

무덤이 있고 유골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단군은 신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단군의 이야기는 신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군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단군은 이 땅에 언제부터 언제까지 살았었다는 이야기이고 그리고 언제 어디서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무덤 속에 묻혀 있다. 그 유골을 파놓았다. 유골을 보면 그것이 사람인지 동물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참으로 야박하고 너무나 지독한 이야기가 되는데 우리 조상에 대해서, 아니 우리 조상이라면 이렇게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지만 우리 동족간에 너무 불신이 쌓여 있어 서로의 말을 믿지 않고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이게 도무지 사람의 짓들이 아니다.

좌우간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단군은 사람이었다. 사람의 아들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단군은 죽었다.

너무도 분명한 논리이다. 삼단논법이 아닌가. 연역법 말이다.
또 있다. 어천절(御天節)을 아는가. 개천절(開天節)은 국경일로서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사실은 하늘을 연 개천(開天)의 날은 따로 있고 단군이 이 나라를 건국한 날이 개천절이다. 신시개천(神市開天)의 주인공은 단군이 아니고 한웅이며 단군이 개국하기 1,565년 전의 일이다. 좌우간 단군의 개국 이념을 길이 되새기고자 단군기원에 관한 여러 학설 가운데서 {동국통감}의 당요 무진년설에 따라 서력기원 전 2333년을 단군기원으로 정하고 양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하여 이를 경축해 오고 있는 것이다. 대종교를 중심으로 개천절을 경축일로 제정하여 매년 행사를 거행하자 상해임시정부가 국경일로 제정하였고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이를 계승하여 국경일로 정식 제정하여 경축식을 행하여 오고 있다. 처음에는 음력 10월 3일이던 것을 양력으로 바꾸어 같은 날 거행하여 오고 있는 것이다.

개천절은 그렇고, 그러면 어천절은 무엇인가. 어천절을 아는가. 단군이 붕어(崩御)하신 날이다. 승하(昇遐) 승천(昇天)하신 날이다. 단군이 죽은 날이다.

매년 음력 3월 15일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어천제(御天祭)를 올린다. 대종교에서 주관하고 있다. 다른 여러 단체에서도 태백산 천제단 등 여러 곳에서 어천제를 지나기도 하고 어천절 행사를 연다. 양력 3월 15일로 지키기도 한다. 현정회(顯正會)에서는 매년 3월 15일 사직공원 단군성전에서 제향을 올리고 특별강연을 하여오고 있다. 작년(4334년)에는 [단군은 인간이다]라는 주제로  이항녕 현정회 이사장이 강연을 하였다.

필자도 솔직히 말해서 얼마 전까지 어천절을 몰랐었다. 소설 {단군의 나라}(전 3권, 도서출판 풀길, 2000)를 쓰기 위해 취재를 하다가 알게 되어 플롯을 바꾸었고 그 때부터 어천제에 참가하였다. 금년에도 지난 4월 8일(음 3월 15일) 12시부터 올리는 어천제에 참례하기 위해 마니산 정상에 올라갔었다. 유난히 황사가 많이 날라오던 황해바다와 북한땅을 바라보다 내려왔다. 아래로 내려와서는 대종교 총전교 이영재 선생과 나눈 점심에 반주가 나와 개천절 남북공동개최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오후 3시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단군숭모음악회에 참석하였다. 새천년평화재단에서 주최하였다. [천부경] [율려] 등의 음악 무용 발표회가 있었고, 일지(一指) 이승헌 선생의 주재로 홍익 가정 선포식도 가졌다.

어천절에 대한 얘기였다. 다시 말해서 어천절은 단군이 이 땅에 살다가 죽은 날이다. 단군이 신이라면 계속 살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단군은 죽은 것이다. 제삿날이 있고 무덤이 있다. 단군은 신이 아니고 사람이었다. 사람의 아들이었다. 단군은 실존의 인물이며 단군의 이야기는 실제의 역사이다.

이런 결론에 대하여 동의를 한다면 말할 것이 없지만, 그렇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얘기는 복잡해진다.

단군이 실존의 인물이냐 허구의 인물이냐 또는 단군의 무덤이 진짜냐 가짜냐, 그것을 가려야 한다. 그 둘 중의 하나는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군이 신이며 산신령이며 단군의 이야기가 신화이고 설화이고 전해오는 옛날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단군릉은 거짓이다. 반대로 단군릉이 실제로 단군의 무덤이라고 한다면 단군은 실존의 인물이다. 같은 논리로 단군이 신이라고 한다면 어천제는 앞뒤가 안 맞으며 어천절이 실제로 단군의 제삿날이라고 한다면 단군은 실존의 인물이 되는 것이다.

거대한 화강석 돌각담무덤-계단식 적석총, 피라미드-으로 성역화하여 놓은 북한의 상징물인 단군릉을 부정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의 오랜 전통이 된 어천절을 부정할 것인가. 그 둘 중 어느 하나를 부정할 수 있는 근거를 내놓지 못하는 한 단군은 이 땅에 살다가 죽은 역사적 인물이 된다. 그래서 단군은 우리에게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결론이 되기에는 아직 이르다. 단군의 존재에 대한 하나의 전제와 명제일 뿐이다. 달리 말하면 그러한 결론은 위와 같은 추상적 명제의 삼단논리를 뒤집을 수 있는 근거가 나올 때까지 유효한 것이다. 그 동안 계속 그렇게 내려왔고 그래서 두 주장이라고 할까 견해는 평행선을 걸어왔다. 이 얘기도 그런 하나에 불과하다. 또 그러나 여태까지도 그래왔듯이 우리의 마음 속에 살아 있고 우리의 피 속에 흐르고 있는 단군의 숨결을 몰아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단군의 목을 칠 필요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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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38년 충북 영동 출생
1961년 단국대 졸업 이후 고려대 경희대 대학원 수료, 문학박사
1963년 월간 <자유문학>지 소설 당선
저서 : 장편소설 {땅과 흙} {단군의 나라} {서러운 땅 서러운 혼} 외 20여권
수상 : 한국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무영문학상 단군문화상 국제펜문학상
현재 단국대학교 문과대학장,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회장, 한국농민문학회 상임고문, 계간 <농민문학>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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