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안부두에서 데모크라시호를 타고 4시간을 꼬박 가면 서해 6도의 맨 끝섬 백령도다.이남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북쪽이자 가장 서쪽이다. 서해에 왜 섬이 5개밖에 없으랴만 `서해5도`는 정전협정 과정에서 생긴 이름이다. 황해도를 포위하고 있는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소연평도, 대연평도, 우도 이렇게 6개 섬은 북쪽의 영해에 속하면서도 그전까지 남에서 관할하던 섬임을 인정하여 정전협정상 유엔군의 관할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배는 법적으로 이북의 영해를 지나온 셈이다. 그러니 이북의 땅을 밟아보진 못하지만 이북의 바다는 밟아볼 수 있는 곳이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 5도이다. 용기포에 발을 내리면서 보이는 백사장은 전세계에 단 둘뿐이라는 천연비행장, 사곶 백사장으로 군용 짚차가 거침없이 질주한다. 이런 섬에 비행기가 뜨고 내릴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전쟁 때 처음 비행기의 방문을 받아봤으니 사곶 백사장은 전쟁이 알려준 비행장인 셈이다.

콩돌 해수욕장과 두무진의 장군바위까지, 그래도 서해5도중 이만한 구경거리를 가진 곳은 백령도 밖에 없다. 백령도가 황해의 끝으로 중국과 맞서고 서 있으니 두무진의 바위들을 장군들이 작전회의를 하는 형상으로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 대상이 바뀌어 북을 향하는 것처럼 되면서 두무진의 장관은 아픔이 되었다.

최근엔 또 하나의 관광거리가 만들어 졌으니 심청각이다. 심청전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판소리 소설인데다 애절하여 나이가 들수록 들어도 들어도 눈물을 자아내는 이야기중의 하나다. 백령도 서북방향 8㎞ 떨어진 지점으로 지금도 삼각파도가 치는 곳이 있다하니 이곳을 인당수로 꼽는다.

심청은 통일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우선 통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일부터 해야겠다. 통일을 분단극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정치적 투쟁만이 통일운동의 전부인 것처럼 비춰진 적이 있었다. 이런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었다. 한번은 이태리 사람에게 한국이 50년간이나 분단되어 있어서 받는 고통이 심각하다고 말하자 의외로 껄껄 웃으며 뭘 50년 가지고 그러느냐 우리는 500년이나 분열되어 있다가 통일을 했다.

처음엔 내 말을 잘못 이해한 것 같아 서운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천년 민족사의 내공을 발견한다면 50년 분단쯤이야 훌쩍 넘어설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 통일이 민족성을 복원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분단의 정치적 장벽도 더 투철하게 대중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통일의 목표가 민족이니 민족의 차원에 서면 얽혀 있는 통일의 실타래도 그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분단으로 하여 한반도 최고의 위기의 섬이 된 백령도에서 심청이란 민족적 재부를 만나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심청속에 숨겨진 민족성을 회복하는 일, 그것으로부터 상상력을 복원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심청전의 어떤 요소가 통일과 연관을 가질까?

첫째는 인당수이다. 심청전에서 인당수 찾아가는 길을 보면 중국의 강과 바다를 구석구석 지나 인당수에 이른다. 약간의 과장이 있으나 중국을 내 집 드나들듯 하던 조선의 해양문화를 그려볼 수 있다. 또한 인당수의 묘사에서 바다의 현상이 손에 잡힐 듯 구체적인 것도 심청전의 주인공들이 해양문화의 주도세력이었음을 증거한다. 심청가 중 엇모리의 빠른 가락으로 불려지는 인당수 당도장면을 보자.

한곳 당도하니 이난곳 인당수라
광풍이 대작하고 어룡이 싸우는 듯, 벽력이 나리는 듯
대양바다 한가운데 바람불어 물결쳐
안 개 뒤썩여 자~자~진 날
갈길은 천리 만~리나 남고 사면이 검어 어둑 점그러져 천지 적막헌디
까치뉘 떠들어와 뱃전머리 탕 탕 물결이 우르르르르 출렁 출렁....

우리에게 기마민족, 농경민족이란 말은 그런대로 익숙한데 해양민족이란 말은 왠지 낯설다.

이렇게 된 데에는 분단으로 인해 경기만과 한강 대동강 등의 해양물류망이 갇혀 버린데 원인이 크다. 예로 북쪽의 배는 서해안에서 동해안으로 갈 수가 없고 남쪽은 대륙과 연결될 수 있는 육로가 없어 섬과 같은 존재다. 남은 실크로드를 잃었고, 북은 바닷길을 잃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남도 해양을 잃었고 북도 실크로드를 잃었다. 이 두 개의 길이 같이 복원되어야 민족의 본성이 분단이전의 조건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경의선 경원선과 함께 황해의 뱃길이 중요하다.

인당수는 백령도 뿐 아니라 변산위도와 전남 곡성, 중국절강성 등 황해문화권 곳곳에 존재하며 유라시아대륙 저편에도 있다.

중국과 가장 가까운 바닷길이 한반도의 돌출부인 황해도 옹진반도와 중국의 돌출부분인 산동반도 사이인데, 윤명철 교수팀이 중국으로부터 한반도로 이어지는 뱃길을 탐사한 결과 해류가 남중국해에서 우리나라의 황해안을 거쳐 옹진반도와 산동반도를 끼고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문에 배들은 되돌아갈 수 없고 한 방향으로만 전진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중국상인들의 통로가 되는 곳마다 심청의 무대가 되는 증거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어쨌든 이 황해뱃길이 백령도 근해를 지나가고 그 근처에 인당수 같은 소용돌이 물길이 있는 것이다. 바다의 이런 특별한 장소는 황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는 이런 소용돌이에 원한 품고 죽은 여신 시레느가 그 한풀이를 위해 미성으로 뱃사람을 유혹하는 신화가 여러 변형으로 존재한다. 이탈리아 근해의 백골산이며 라인강의 로렐라이며 희랍의 용장 유리시스가 돛대에 몸을 묶고 그 유혹과 싸워 이겨냈던 시실리섬의 소용돌이가 바로 그러하다. 때문에 인당수는 바다에 익숙한 민족에겐 세계적 보편성을 갖는 소재이다.

아프간 전쟁이후 미국의 패권주의를 막는 게 우리의 통일에서도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는데, 이런 이유에서 미국패권의 최후 승부처인 유라시아 대륙의 단결이 진지하게 모색되고 있다.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항하는 여러 가지 제안이 나왔는데 그중에서 (러시아에서 독립한) 카자흐스탄의 지도자 누리술탄 나자르바예프가 제안한 `유라시아주의`가 있다. 이는 미국의 패권 뿐 아니라 러시아의 `슬라브주의`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고 있다. 유라시아대륙의 단결을 이루는데 경의선과 경원선이 육상벨트의 시작이라면 바다를 통한 해양벨트의 시작은 황해뱃길이다. 민족의 통일과 대륙의 평화를 위한 해양문화 건설에서 우리민족에 잠재되어 있는 해양문화의 가능성을 일깨우는데 심청전은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심청전의 주인공인 심청을 통해서는 어떤 통일의 상상력을 얻을 수 있을까? 심청의 주제의식을 재해석하는 일로부터 시작하자.

어떤 주제와 사상을 내포하는가는 지역특성과 민족정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우리는 심청전을 효의 관점에서 주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심청이 갖는 세계성에 주목하고 동양정신의 정수로 끌어올려 막다른 길에 다다른 서구문명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윤이상이다.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은 심봉사로 대표되는 소외계층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자기희생을 통한 인류구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신의 목숨을 팔아버린 미혹한 민중을 위해 불평없이 자신의 목숨을 던짐으로서 목숨을 건 사랑을 실천한다. 서양의 합리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 숭고한 비극의 세계는 예수의 가장 영감에 찬 가르침인 산상수훈 `원수를 사랑하라`는 구절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윤이상은 자칫 국수주의로 빠질 수도 있는 비합리성의 세계를 냉철히 반성한다. `인신공양만으로는 부친의 눈을 뜨게 할 수 없었다`는 심청의 반성이 극의 큰 기둥을 이루는 것이다.

원래 심청전의 원형인 설화와 심청굿에서는 인당수 투신으로 끝이 난다. 뒷부분에서 봉사들이 모두 눈을 뜨게 하는 대목은 심청굿과 별개로 거리굿의 봉사거리라고 해서 따로 존재하던 얘기다. 보통 사람들의 소원을 풀어주는 영웅이야기가 인당수투신 이후에 붙게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심청은 죽고 난 뒤 하늘나라 선녀로서 옥황상제의 명에 따라 민중의 눈을 뜨게 하는 사명을 갖고 심청으로 거듭난다. 자생적 휴머니즘에 머물 뻔하던 심청은 어머니 옥진의 힘으로 지상으로 보내지고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이전까지 해석의 초점이었던 `효’보다는 하늘에서 부여받은‘저 눈먼 땅의 빛이 되어라’는 임무 즉 심봉사의 개안(開眼)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것이다. 황후가 된 심청이 아버지를 만나 눈뜨게 함으로써 임무를 완수케 하는, 철저한 인과관계를 중심으로 줄거리는 진행된다. 더구나 자신의 아버지 뿐 아니라 모든 봉사들을 눈뜨게 하고 축제가 벌어지는데 이것이 원래 굿판에서 유래한 흔적이다.

심청은 죽으므로서 다시 살아난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이고, 유무상생(有無相生)이다. 윤이상은 내용에서 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이러한 철학적 원리를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안정과 불안정, 이것이야말로 나의 음악언어의 비밀이다`. 그가 강한 인상을 받은 작곡가 존케이지도 `존재와 무`, `음향과 정적`을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복잡한 관계로 파악했다. 그는 내용과 형식에서 동도서기(東道西器)나 서도동기(西道東器)의 방법론을 피하고 도기합일(道器合一)의 세계가 되었을 때만 동양과 서양의 만남도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폐쇄적인 민족의 신화와 전설을 인류를 향한 계몽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그는 보여주었다.

그러나 신화에서 계몽에로의 전환이 가능했던 것은 다른데 있었다. 윤이상은 작곡가와 청중이라는 주체와 객체 설정 이전에 우주 속에 충만되어 흐르는 음의 세계가 있다고 보았으며, 동양과 서양의 예술 이전에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말하길 `작곡가는 그가 살고 있는 세계를 무관심 속에서 바라볼 수 없다. 인간적인 고통, 억압, 그리고 불법... 이 모든 것이 내 생각에 와 닿고 있다. 나는 고통이 있는 곳에서, 불법이 자행되고 있는 곳에서 음악을 통해 함께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저 눈먼 땅에 빛이 되어라`는 윤이상 선생 자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이었다.

심청의 정신과 새로운 방법론을 되새기며 북녘땅이 탕탕히 펼쳐지는 바닷가에 서면 보이지 않는 분단의 야수가 눈앞을 흐린다. 북방한계선이다. 북방한계선이야말로 최근 들어서 우리를 모두 봉사로 만들게 한 소재이다. 두 번의 서해교전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장님처럼 반응해 온 것이다. 연평도에서의 서해교전이 폭발하기 전에 이곳 백령도 바다는 거의 해마다 전쟁터였다.

96년 당시 아직 서해교전이란 말이 생기기 이전 이양호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의원으로부터 4·11총선 후 북한 함정의 서해상 도발에 대한 정부 대응이 소극적이었던 이유를 질문받고, 정확히 다음과 같이 답했다.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은 어선 보호를 위해 우리가 그어놓은 것으로, (북한측이) 넘어와도 정전협정 위반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국방부는 99년 서해교전 이후에는 북방한계선에 대한 입장을 바꿔 북도 이미 북방한계선을 인정해왔기 때문에 실효성의 원칙에 따라 북은 북방한계선을 인정해야한다는 주장을 편다. 북방한계선에 대한 국방부의 자기최면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미국 역시 국방부에 내린 훈령, `북방한계선-관련규정 및 공문`이란 제목의 문서를 찾아보면 "NLL은 유엔사/연합사 교전규칙 S항 `자` 세항 : 북방한계선은 유엔사/연합사 해군 및 항공초계활동의 북방한계를 한정짓기 위해 유엔군총사령관이 일방적으로 설정함." 이라고 씌여있다. 이는 정전협정상 북이 지킬 의무가 없는 유엔사의 일방적 설정임을 뜻한다.

그런데도 미국은 99년 이후 유엔사 교전수칙을 바꿔 북방한계선 월선시 한국해군이 선제 공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자기 최면 역시 99년 서해교전에서 시작된다. 스스로 최면을 걸어놓고 눈을 감은 채 저지르고 있는 폭력은 아직도 신화의 세계로부터 해방되지 못한 분단의식을 반영한다. 

이는 우리민족이 해양민족으로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근시안적 처사이다. 또한 미국의 반테러전쟁으로 한반도에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마당에 북방한계선에 관한 인식이 개명되지 않으면 제3의 서해교전은 또다시 일어날 것이다. 역으로 우리가 분단의 신화에서 벗어나 계몽된다면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그리하여 유라시아단결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획득할 것이다.

심청에게 부여되었던 `저 눈먼 땅에 빛이 되어라`라고 하는 사명을 백령도와 서해5도의 북방한계선에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저 눈먼 바다에 빛이 되어라`

백령도가 민간통일운동에 부여하는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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