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기(동국대 교수/평화통일시민연대 공동대표)


미국이 대북특사를 파견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부시 정권 등장 이후 중단되었던 북미대화가 재개될 조짐이다. 북미관계 개선이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의 중요한 조건임을 고려할 때, 북미대화 재개는 분명 환영할 일이다.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 변화가 전제돼야

그러나 북한과 미국간에 대화가 설사 재개된다하더라도, 그 앞길은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기존의 입장과 대북 강경정책을 고수하는 한, 북미대화의 전망은 밝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번 대북특사 파견 결정도 정책상의 변화에 따른 결과라기보다는, 국면전환용의 의미가 크다. 미국이 대북특사를 파견하기로 한 것은 우선 미국의 안하무인식 일방주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점증하는 비난을 모면하려는 제스쳐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ASEM에서 북미대화를 촉구하는 정치선언문이 채택되고, 북한이 파격적으로 신의주특구의 설치를 발표함에 따라, 미국으로써는 특사 파견을 더 이상 미루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더욱이 북일관계 개선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반도문제 해결구도에서 주도권을 상실할 우려도 미국이 북미대화의 테이블에 나오게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미국이 제시하고 있는 협상의제 역시 북미대화의 전망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부시는 작년 6월 6일 북미대화의 재개를 선언하면서, 북미대화의 의제로 3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제네바합의문]의 이행 개선(improved implementation), 북한의 미사일 개발사업에 대한 검증 가능한 규제(verifiable constraints) 및 미사일 수출 금지, 북한의 재래식 군비의 감축과 북한군사력의 후방으로 재배치가 그것이다.

게다가 그 후, 핵무기 이외에 생화학무기와 같은 대량파괴무기의 포기와 이에 대한 사찰, 북한 인권문제 등을 추가로 제시하면서 북한을 압박해 왔다. 사실 미국이 제시한 의제들은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미국은 조건 없는 대화를 말하지만, 미국이 제시한 의제 속에는 사실상 많은 전제와 조건이 함축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북미대화가 재개된다면, 현안문제들과 관련해 북한의 파격적인 양보가 예상된다. 북한은 북일정상회담에서 보였던 것과 같은 유연한 자세로, 미국의 요구를 대폭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 과거핵에 대한 조기 사찰을 받아들이고, 미사일의 개발 및 수출문제와 관련해서도 양보할 자세가 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북한위협론 상실 우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의 이 같은 양보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계속 새로운 의제와 조건들을 제시하면서 북한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제네바합의문]의 내용을 벗어난 무리한 요구도 예상된다. 과거 금창리 지역과 같이, 미국이 계속해서 다른 지역과 시설에 대해 핵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에 대한 추가적인 현장사찰을 요구한다면,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논란과 위기는 끝도 없이 계속될 것이다. 게다가 생화학무기에 대한 폐기와 이를 검증하기 위한 현장사찰을 북한에 추가적으로 요구한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하게 꼬일 것이다.

미국이 제기한 북한의 재래식 군비감축문제도 어려운 대목이다. 재래식 군비의 감축과 전전배치 군사력의 후방 이동은 북한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무장해제하고 항복하라는 소리와 똑같다.

또 미국은 탈북자문제를 비롯해 북한의 인권문제를 의제로 들고 나와 북한을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에 대해 인류의 보편적인 기준에 입각해 인권의 개선을 요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인권문제를 북미대화의 의제나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한다면, 이것은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과정에서 1993년 6월 11일에 합의한 [6.11 북미공동성명]의 상호 내정에 간섭하지 않기로 한 약속에 위배된다.

북미대화는 미국으로써는 시급한 문제가 아니다. 북미대화의 진전과 북미관계의 발전은 오히려 "북한위협론"의 효용을 떨어트리는 꼴이 된다. "변화하지 않은 북한", "깡패국가 북한", "테러지원국 북한", "미국의 안보에 위협적인 북한"으로 북한이 남아 있는 것이 미국으로써는 MD계획과 같은 미국의 패권주의적 군사정책 및 군사전략에 명분을 실어주는 것이다.  미국은 북미대화의 채널만 열어 놓은 채, 지금처럼 북한의 일방적인 양보와 "무조건 항복"을 강요하면서 북미협상을 지연시킬 가능성도 있다.

북한체제의 안전보장이 선행돼야   
 
따라서 미국의 자세 및 정책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한, 북미대화의 전망은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북한과 진심으로 대화할 의사가 있다면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첫째,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의 포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해야 한다. 본격적인 북미대화에 앞서, `테러지원국`과 `악의 축`, `불량국가`의 명단에서 북한을 제외시키는 성의를 보여주어야 한다.

둘째, 북한체제의 안전에 대해 보장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특히 한반도군사문제의 해결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셋째, 1994년 [제네바합의문]과 1999년 [베를린합의, 2000년 10월 [북미공동성명]과 같은 기존의 북미간 협상결과와 합의사항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북미협상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이제 미국이 변할 차례다.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은 미국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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