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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북한의 변화와 러시아의 역할 - 정성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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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09.19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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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임(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지금 북한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특히 주목되는 것은 최근 러시아에서 북한의 행보이다.

작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타고 모스크바를 방문한데 이어 올 4월 정부대표단의 극동지역 방문, 그리고 8월 블라디보스똑 북·러 정상회담 등 북한측 인사들이 잇달아 러시아 극동지역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행보는 최근 북한의 경제개선 조치와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 임금 및 물가 인상은 구매력을 높이고 수요를 만들며 이때 필요한 물품이나 자본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인가의 문제가 대두된다.

북한은 러시아에게 그러한 역할을 기대하는 것일까? 왜 하필 러시아, 특히 극동지역일까? 북한은 현재 38억 루블에 달하는 대러 채무국이며 대외무역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4∼6% 밖에 안된다. 그런데도 최근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강화가 특히 경제부문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왜 러시아인가?

북한에게 러시아는 시장경제 전환과정에 대한 학습효과를 얻는 한편, 북한경제의 장단점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극동지역은 지리적으로 가까우며 경제규모나 발전수준에서 여타 지역보다 북한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그리고 가공무역을 통해 별다른 원·부자재 없이도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한편, 물물교환 방식을 통해 북한의 유휴 노동력을 송출하고 필요 자원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지역이다.

또한 북한에게 러시아는 대미 메신저이기도 하다. 그들의 옛 우방은 건재하며 그 우방이 북한의 필요성을 일부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하면서 미국을 압박하는 동시에 러시아의 입을 통해 북한의 대미 관계개선 의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북한은 변화하고 있다

최근 북한변화에 대한 러시아 측의 판단은 대략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중간 간부들의 인식이 아직 그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간 간부들은 여전히 앞서 제안을 내놓는데 주저하고 있으며, 그들과 최고지도자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둘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향후 지금과 같은 변화를 계속 이끌되 조심스럽게 추진할 것이다. 주민들과 사회의 적응능력을 감안한 면도 있지만 부작용을 고려하여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지못해 끌려가는 변화가 아니라 확실한 인식 위에서의 변화이기 때문에 그 전과는 결과가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셋째, 북한은 대외관계에서 무조건적인 수혜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대러 경제관계에서 국가차원이 아닌 상업적 베이스로 접근할 때 양자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정책으로 구체화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넷째, 최근 북한의 경제조치와 관련 러시아는 그들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극동지역의 변화를 둘러보면서 시장경제 전환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는데 일종의 충격을 받았고, 보고 느낀 것을 북한에서 실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은 어떻게 러시아를 활용하려는 것이며 러시아는 그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가?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북·러 경협

북한이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기대하고 있는 것은 자원확보와 외화벌이 사업이다. 특히 임업과 농업부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임업의 경우, 북한의 노동력과 러시아의 자원 및 설비 간에 상호보완이 가능하다. 양국은 1999년 임업협정과 2000년 경제무역협력위원회 회의를 통해 노동자 수를 늘리고 작업 범위와 지역을 넓히는데 합의한 바 있다.

현재 북한의 벌목공은 하바로프스끄주에 약 3천명이 있으며, 아무르주와 연해주에는 그보다 적다. 또한 아무르주 약 3만 헥타르 농지에서 북한 농업전문가들은 쌀, 콩, 야채 등의 재배를 시험중이다.

문제는 북한의 기대만큼 러시아, 특히 지역정부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앙은 북한과의 협력사업에 적극적이지만 지역정부에게 북한은 매력적인 파트너가 아니다. 한 예로 최근 노동자 수를 늘려달라는 북한측 요청에 지역정부들은 난색을 표했다. 우크라이나 등 다른 지역 노동자 활용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농업의 경우도 중국 등은 종자나 농기구 제공 등 여러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즉 극동지역에서 북한과의 경제관계를 중앙정부는 정치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반면, 지역정부들은 철저히 상업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정부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북한이 아닌 한국기업과의 합작사업이다. 

북한에서 북·러 경협

북한에서 양국 경협은 철도문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에너지관련 사업이다. 

그동안 양국은 원유문제 해결을 위해 `승리석유정제공장`(연간 2백만톤)의 현대화 방안을 검토하여 왔다. 가공무역, 합작, 물물교환 방식 모두 가시적 성과를 얻지 못했으나 지난 4월 조창덕 부총리의 러시아 극동지역 방문때 대체적인 합의를 이루었다.

현재 러시아는 보다 유리한 임대조건을 내세우는 반면, 북한은 공동운영을 주장하는 등 다소 이견이 있지만 주변 철로의 침목교환 작업이 한창인 점으로 보아 곧 타결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양국간에는 화력발전소 재건문제가 깊게 논의되고 있다. 양국은 이미 평양, 동평양, 청진, 북창화력발전소 재건에 우선적으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북한측이 동평양과 평양화력발전소 발전설비 재건에 총 2억 달러의 차관을 요구함에 따라 러시아측이 이 문제를 북한의 대러 채무와 연계시키면서 답보상태에 있다. 

북한 경제재건과 관련 양국간에는 채무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며, 사업의 우선순위에도 차이가 있다. 러시아는 주로 한반도종단철도(TKR)-시베리아횡단철도 연결과 관련된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화력발전소 재건이나 경원선 복구비의 일부 부담 제의도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북한의 대내적 경제개선 조치와 러시아와의 관계강화는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향후 북한과 러시아간 경제관계는 이견과 제약 속에서도 강화될 것이다. 이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러시아를 어떻게 `선의의 중재자`로 활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북한의 변화를 확대, 지속시키기 위해 러시아를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러시아 극동지역을 북한의 경제학습지이자 한반도의 자원공급처로 이용할 수 있다면 일석이조일 것이다.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남북한과 러시아 3자 경협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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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이대 정치학 박사
북러관계 전공
현재 육군사관학교 출강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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