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중선(통일뉴스 논설위원)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내몬 죄, 북한 동포를 `괴뢰`라고 가르치며 반통일 교육을 한 죄, 독재시절 유신헌법이 세계최고의 법이라고 가르친 죄 등 너무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뒤늦게나마 저에게 교육받은 학생들에게 사죄합니다."

교직 생활 44년 5개월을 마감하는 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참회의 고별사`에서 이 같이 뉘우치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그가 특히 가슴아파한 것은 북한 동포를 `괴뢰`라고 부르며 웅변, 글짓기, 포스터 등을 통해 적대감정을 강요한 일이라고 했다. "민족 앞에 지은 큰 죄"라고 자책하는 참교육자의 모습이 정년퇴임식 행사 참석자들을 숙연케 했다고 한다.

`민족의 자주와 통일`이라는 시급한 민족적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미군철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통일운동 진영의 주장이 전민족적으로 설득력 있게 확산되고 있는 이 때에도, 미군부대의 이전조차 `전쟁 억지력 상실`을 내세워 이를 반대하는 다수 야당의 행태가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또한 나라밖에서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일방적으로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형국이어서 사뭇 스산한 느낌을 갖게 하는 이 시점에서 `참회의 고별사`는 신선한 느낌과 울림으로 민족화해와 통일을 갈망하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와닿는다.

이처럼 `참회의 고별사`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반세기가 넘는 분단상황에서의 학교 교육이 결과적으로 분단을 유지 존속시키기 위해 적대감을 주입하는 반통일적 분단 교육임을 확인하게 되고, 퇴임교직자가 이에 대해 냉철한 `자기성찰`을 통해 깊이 뉘우치고 있는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어떤 일의 당사자이면서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스스로 반성할 줄 모르는 오늘의 세태풍토에서 `참회의 고별사`는 모처럼 상쾌한 느낌과 새로운 희망을 우리 모두에게 불어 넣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당면한 민족화해 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두 가지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먼저, 우리는 `참회의 고별사`를 통해 분단시대의 학교 교육이 민족화해를 저해하고, 이로 말미암아 민족적 양심을 지닌 교직자들의 심성을 황폐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명분으로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내세우고 있고, 민간과 정부차원에서 여러 형태로 남북간 교류와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각급 학교는 냉전시대의 남북대결적 교육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실정이다.

그 결과는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조사대상 고등학생의 52%가 통일에 관해 관심이 없다거나, 절반 이상의 수도권 대학생이 6.15남북공동선언 합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반통일적 교육내용으로 말미암아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오늘의 대결적 민족 현실은 그것 자체로 그냥 끝나지 않고, 고스란히 민족의 미래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다시 말하면 다수의 청소년들이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 무관심하다면 결국 통일은 무망한 일이고, 민족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또 하나의 교훈은 `참회의 고별사`가 우리 모두에게, 특히 부지불식중에 일상적으로 반통일적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민족적 양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자기성찰`의 자세를 실천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민족주의자 장준하 선생이 7.4남북공동성명 발표 직후에 "지위, 재산, 명예가 진실로 조국통일에 보탬이 되지 않는 분단체제로부터 누리고 있는 것이라면 조금이라도 그것은 나의 것, 우리의 것이 아니며 언젠가 민족 앞에 희생해야 할 것이다. 이것 없이는 통일은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 이라고 갈파했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는 민족화해 시대를 맞아 과연 나의 생각과 행동이 통일을 저해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자기성찰`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아직도 냉전적 분단의식이 잔존하고 있는 우리의 학교 교육 내용을 하루 빨리 민족화해 교육으로 대체하여 청소년들에게 민족화해와 자주 의식을 고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민족구성원 각 개인은 냉정한 마음으로 `자기성찰`을 통해 국가보안법 철폐나 반미투쟁 대열에 서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민족화해와 통일을 촉진하는 일에 걸림돌이 되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는 다짐이 필요하다.

앞으로 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확신하고 민족화해 시대를 살고 있는 각개 민족구성원들의 그 같은 다짐과 실천이 보다 광범하게 이어져야 한다. 그 같은 다짐과 실천이 충족되어야만 지금 진행되고 있는 여러 형태의 남북간 교류와 접촉이 민족화해와 통일을 향해 발전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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