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활웅(재미 통일문제 자유기고가)


"해와 바람이 길가는 사람의 외투를 벗기는 내기를 했는데, 바람이 외투를 힘으로 벗기려고 세차게 불면 불수록 그 사람은 외투를 벗기는커녕 더욱 더 꼭 끼어 입었지만, 해가 따뜻하게 비춰주니까 그 사람은 제 손으로 외투를 벗어 버렸다는 이야기 --- 이런 이야기 속에서 혹시 우리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진리를 찾아낼 수는 없을까 고 생각해 본다."

김대중 정부 `햇볕정책`의 한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인들이 활짝 열린 통일의 대로를 마구 달려가던 1989년 11월, 아직도 불신과 대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남북관계를 개탄하면서, 필자가 어느 신문에 실은 글 중의 한 구절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1998년 2월에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을 들고 나왔다. 이제 남북관계에는 획기적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되어, 보수세력은 불안을 느꼈고 통일지향세력은 기대를 걸었다.

취임사의 5분의 1을 남북문제에 할애한 김 대통령은 "이산가족끼리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관계는 조상에게 대해서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설파하면서 이산가족문제의 우선적 해결을 다짐했다. "합리적인 대북식량지원에 인색치 않겠다"고도 했다. 또 남북관계를 "화해, 협력 및 평화정착에 토대를 두고" 가능한 분야부터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북의 무력도발은 절대 용납치 않는다면서 자주적 집단안보(자주는 국민적 단결과 사기 넘치는 강군으로, 집단은 더욱 굳건한 한.미 안보체제로)를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또 2000년의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에 동의했지만 그후에도 대미종속관계와 한미일 3국 공조관계는 더욱 강화해 나갔다. 즉 분단의 본질인 정치.군사적 대립관계는 공고히 유지한 채 교류협력의 추진으로 남북관계를 풀어보자고 했다.

이는 바람은 계속 불게 놔두면서 햇볕을 쪼여준다는 격이니, 그것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의 한계이었다. 그 결과 남북간 교류협력은 미국의 눈치를 봐가면서 단속적(斷續的)으로 진행되었으며 이에 따라서 다소의 성과를 올린 것도 사실이지만, 남한은 여전히 북을 주적(主敵)으로 지목하고 있으며 자주통일은 한낱 빈 구호로 떨어져 버린 것이,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5개월을 남기고 있는 현재의 실태이다.

이런 마당에 한나라당의 이회창 대통령후보는 지난 달 21일 "긴장완화와 교류협력의 병행"을  주창하면서 "교류.협력만 되면 평화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 국민이 전쟁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어 마음 편히 살면서 남과 북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한반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으며, "궁극적으로는 현재의 불안한 정전체제를 공고한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도 했다. 또 남북한 당사자주도가 평화정착의 제1원칙이라고 언명했다.

물론 이 후보의 이런 주장은 아직도 한반도 긴장의 원인과 평화체제 전환의 장애요인이 전적으로 북한에게만 있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따라서 미국의 필요에 의하여 여태까지 유지되고 있는 "불안한 정전체제"가 어떻게 미국을 제치고 남북이 협상을 주도하여 "공고한 평화체제"로 전환될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이미 8월 26일 통일뉴스 칼럼에서 밝혔음으로 다시 반복하지 않겠음)

그러나 교류협력만으로 평화는 오지 않으며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만 평화가 올 수 있다는 주장 자체는, 이 후보가 그것을 무슨 생각으로 했던 간에, 또 그가 과거에 통일문제에 관해 어떤 부정적 언행을 했던 간에, 남북문제 해결의 관건이 정치.군사문제에 있지 교류협력문제에 있지 않다는 점을 정확히 지적한 것이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문제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정치.군사문제

돌이켜보면 1971년 8월 남북적십자간의 접촉이 시작된 이래 31년 동안 남북간에는 적십자회담 뿐 아니라 정상회담, 총리회담, 장관급(고위급)회담, 국회회담, 군사회담, 경제회담, 체육회담, 특사접촉 등 총 400회를 넘는 공식회담과 접촉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듯 긴 세월동안 그 많은 접촉과 협상을 거치고도 남북관계의 기류는 아직도 난조를 보이고 있다. 왜? 그 원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남북사이에 문제의 핵심을 어떻게 이해하고 따라서 그 해결의 역점을 어디에 두는가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북측은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미군을 철수시키면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인적.물적 교류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입장인데 반해, 남측은 정치.군사문제는 당장 해결하기 어려우니 휴전체제를 유지한 채 교류.협력을 추진하면서 신뢰가 회복된 후에 다루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서로가 한치의 물러섬이 없이 팽팽히 맞서왔기 때문이었다.

남북문제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1945년 8월에 미국이 우리도 모르게 우리 땅을 갈라놓으면서 생긴 문제이다. 또한 미국과 소련이 남북에 두 분단정부를 세워놓고 우리를 저들간 냉전의 첨병으로 내세움으로써 더욱 꼬여진 문제이다. 그런데 한국내전에 개입해서 북한과 싸운 미국은 자기군대를 남한 땅에 영구히 두기 위해 대북 적대관계를 풀지 않고 있는데 한국은 이 마당에 미국 편에 서고 있다.

이 현실이 바로 남북문제의 실체이다. 따라서 남북문제해결의 첫째 요건은 북미간 전쟁상태를 끝내는 일이며 그 둘째는 한국의 대미종속을 끝내는 일이며 셋째는 한반도에서 전쟁재발가능성을 완전 봉쇄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남북문제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정치.군사문제이다. 6.15 선언도 정치문제를 다룬 제1, 2항이 그 핵심이다. 그렇다고 교류협력은 전적으로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니다. 교류협력은 물론 정치.군사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체가 정치군사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정치.군사문제를 방치한 채 교류협력문제를 너무 밀고 나가 타성이 붙으면 분단된 평화정착 즉 분단체제의 영속화로 가버릴 수 있다. 미국이 바란다는 한반도의 평화란 바로 이런 상태를 말한다. 반면 정치군사문제가 해결되면 교류협력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된다. 아니 교류협력은 더 이상 문제로 남지 않는다.

남북문제의 당사자가 남북자신이어야 한다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섭이나 협상에서 당사자가 되려면 자기의사를 자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간 한반도의 정치.군사문제의 협상에 있어서 남한은 당사자가 되지 못하였다. 왜냐? 미국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종속관계를 끊어야

이런 상태를 두고 한국이 미국에 예속돼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미국을 이용하는 관계라는 소위 "용미론(用美論)"을 내세우는 논자들도 있지만, 그것은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어리석은 소리다. 미국이 어디 한국에게 이용이나 당하고 있는 나라인가? 가당치도 않는 궤변이다.

한국이 미국과의 종속관계를 끊지 못하는 한 한반도의 정치군사문제의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일 수밖에 없다. 남한이 자주적인 당사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국과의 관계를 대등한 주권국가간의 관계로 재정립해야 한다. 한반도의 긴장해소를 위해서 남한이 떳떳한 당사자로서 북한과 협상하는 것은 그 후에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한반도에서 북한을 향해 부는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가? 서울에서? 그렇기도 하겠지. 그러나 북한으로 하여금 더욱 두터운 외투를 입게 하는 참으로 세찬 바람은 워싱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그 바람은 남북간의 교류협력만으로는 차단되지 않는다. 남북한 3자가 대등한 당사자로서 정치.군사문제를 해결해야만 그 바람을 멈출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가장 기본적인 문제의 논의를 너무나 오랫동안 금기시하거나 기피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이 문제의 논의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내놓고 논의해야 한다. 언론이나 학계에서도 논의해야겠지만 일반 국민도 같이 참여해서 논의해야 한다.

특히 정치권에서 심각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3개월 후로 다가온 대선에 나서는 후보들은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이 핵심문제에 대한 자신의 인식과 구상과 주장과 결심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대권을 거머쥘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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