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에는 당사자(2자)회담이 있는가 하면 그를 보장하기 위해 주변국들이 함께 참여하는 다자회담도 있다. 한반도 및 동북아의 안전보장 문제와 관련 종종 3자회담이니 4자회담, 혹은 더 세분화해서 2+1, 2+2회담 등이 회자됐었다. 이는 모두가 당사자와 주변국들간의 역학관계를 반영한다. 그런데 최근 `6자회담`이란 말이 자주 나오고 있다.

◆ 6.15 남북공동선언 이전만 해도, 정작 한반도 문제에서 남북간 당사자회담이 제기된 적은 거의 없다. 북한이 남한을 대화의 파트너로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현실적 명분아래 주로 직접대화나 3자회담(북-미-남)을 선호했다. 3자회담의 경우도 모양만 3자지 남한은 소외되는 형태였다. 따라서 남한은 1996년 김영삼 정부때 미국 클린턴 대통령을 제주도에서 맞이하면서 중국도 포함하는 4자회담을 주장한 적이 있다. 당시 북한은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으나 미국과의 관계상 받아들였다. 그후 몇 번인가 이 4자회담이 `형식적으로` 진행되다가 지금은 유야무야된 상태이다.

◆ 한반도는 남북을 중심으로 놓으면 역학관계상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과 러시아가 대칭구조를 이룬다. 이게 정상적인 구조다. 그러나 과거 3자니 4자는 모두가 북한과 미국을 중심으로 놓는 구조였다. 한미관계가 갖는 주종(主從)관계로 인해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으나 어쨌든 남한으로서는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게다가 3자나 4자는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고자 하는 일본과 러시아도 낄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런데 최근 일본에 의해 6자회담 얘기가 나오고 있다.

◆ 일본은 지난달 말 북일 외무상 국장급회담에서 북한에게 동북아의 안보문제를 협의할 남북 및 미.일.중.러 6개국이 참여하는 `6자협의체` 구성을 처음으로 제의했다. 그래서인지 양국은 공동보도문에서 `쌍방은 조선(한)반도와 그 주변지역의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하며 이와 관련하여 유관측들과의 대화를 추진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6자회담의 뉘앙스가 강하게 풍긴다. 북한도 6자회담에 호의적이라면 이는 북한의 대한반도정책 및 대미전략에 커다란 변화가 있음을 의미한다. 즉 미국만을 상대하고자 했던 3자(4자)회담에서 6자라는 다자 구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미국과의 대화우선` 정책을 포기(보다 정확하게는 유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6자회담이 현실화된다면 한반도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미.일.중.러 주변 열강들이 모두 한반도 문제에 참여하게 된다. 단순 구도에서 복잡 구도로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방적 구도에서 안정적 구도로 가는 것이기도 하다. 즉 한편으로는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는 단순 구도에서 다양한 견해를 거쳐야 하는 복잡 구도로 가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쪽이 판을 좌지우지하는 일방주의에서 어느 한쪽으로도 힘이 쏠리지 않는 안정적인 구도로 가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고 그 선택은 역량과 시기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 그런데 여기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분명 3자(4자) 구도와 6자 구도는 다르다. 3자(4자) 구도는 북미간이 주요 축인데 비해 6자 구도는 남북간이 주요 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6자 구도는 한반도 문제에서 남북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또 그 양자 관계가 흔들림 없을 때에만 가능하다. 6.15 공동선언 이후 그리고 최근 남북관계의 급진전과 그에 따른 새로운 국면으로의 이행이 그 표징일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어쨌든 17일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평양 방문과 김정일-고이즈미 정상회담 결과에서 그 대강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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