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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간다는 신념의 사람들 - 곽인석<비전향 장기수 북송 2주년 특집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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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09.04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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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석(양심수후원회 기획위원)


1990년 2월11일, 온 세상은 환희로움과 경외로움으로 전율했다. 장장 28년간의 세계 최장기수로서 생애를 다해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해방투사 넬슨 만델라가 72세로 악명높은 폴스무어 감옥에서 석방되었던 것이다.

허나 그 시각 지구 저편의 자랑스런 대한민국에서는 그보다 10년도 더 넘게 30여년 심지어 45년 동안 인간한계를 넘는 고문속에 살아온 사람들이 존재해 있었다. 이름하여 `비전향장기수`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햇볕정책의 영향이라고 떠들어댔지만 안팎의 목소리에 눌려 1999년 2월25일 41년을 복역한 우용각 노인 등 19명이 석방되었고, 그해 12월31일 신광수, 손성모 노인이 석방되면서 모든 장기수가 석방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동안 전향강요로 인한 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얼마인지...... 또한 때리고 찢고 지지고 붓고 하여 본인의 의사와는 정반대로 강제전향 시켜놓고는 병든 몸들을 내팽개쳐, 이 사회의 이방인으로 살아왔던 이들은 또 몇이련가?

어느 사람은 "이 노인들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가?"고 반문한다.

어려운 철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도대체 인간의 양심은 무엇이고, 인간의 행복추구권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고 한 번쯤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었던 20세기 우리의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 노인들을 후원하는 양심수후원회의 일원으로 몇 년간 이 분들을 송구히 만나 오고 있다. 나는 이 장기수 노인들을 처음 만나기 전에 선입견으로 피도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강인한 인상의 투사, 철의 심장을 가진  또 다른 사람들일 것이라고 지레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가 그분들을 만나면서부터 `인간적이다`, `휴머니즘` 이란 말의 실천적 의미를 비로소 깨달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다함없는 인간의 드리운 정이 어떻게 수십년 간 형자의 길에서도 오롯이 남을 수 있었단 말인가.

그리움에 지치다 지친 미소는 차라리 경외로왔다. 전화도 걸 줄 모르고 지하철도 탈 줄 몰랐던 사람들이었건만......

막상 석방되고 나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스산한 고민이 스며들었다고 한다. 수십년  단절의 세월을 쇠약해진 육신만이 그를 증언해주고 있었을 뿐이었다. 단 한 번의 면회조차 없었던 고립무원의 0.75평 독방은 차라리 무덤속의 고요였으리라.

송구하게도 불혹이라는 나이를 여러 해 넘긴 사람이지만 언젠가 막 출옥한 어느 장기수 분과 말씀을 나누다가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그 분이 감옥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내가 어머니의 자궁속에서 숨쉬고 있었음을 한참 멍하니 바라보다가 깨달았던 것이다. 오랜 잠에서 깬 듯, 부는 바람이 피부에 와 닿지를 않았다. 내 기억 속에도 없는 이전의 세상에서 지금 홀로 나와 있는 이들을 어림할 수 있겠는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돈을 벌어야 연명할 수 있다고 들었고 또한 냉전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대할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허나 70-80이 넘은 할아버지들은 헌책과 고물을 모으고 치과기공소의 물건도 배달하며, 학교식당에서 교실로 식기를 나르면서 바깥 세상에 적응해 갔다. 생존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싸움은 이 낯설은 사회에서  인간임을 지키려는 도덕적 순수함의 지조였다.

2년쯤 전에 일흔을 넘긴 장기수 한 분과 지하철을 탄 적이 있다. 출입문 쪽에 계속 서 계시는 것이다. 안쪽에 몇 안되는 사람이 서 있을 정도로 복잡하지 않았기에 안쪽으로 들어가시라고 하였더니 조용히 다가 오셔서 내 귓가에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앉아 있는 젊은 사람들한테 부담되지 않을까!`

그 노인들 중 63분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의 합의에 따라 그 해 9월2일 원적지 고향으로 송환되었다.

이제 더 아픈 상처가 도지는 노인들이 있다.

도저히 필설로 담을 수 없는 백정들의 놀음굿판, 내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이 수치스러운 동종의 군상들이 저지른 만행은 그야말로 살인적이었다. 이른바 전향공작반의 고문에 의해 불가항력으로 만들어진 문서에 희생된 노인들이 생의 마지막 문턱에서 다시금 외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전향하지 않았다. 모든 문서는 인간의 기본적 천부인권을 짓밟고 조작된 것으로 원천 무효이다. 국제적으로 악명 높았던 사회안전법도 사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요소로 폐기되었고, 사상전향제도 또한 국제인권협약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정부 스스로 없애버리지 않았는가. 우리들을 당장 송환하라!"

2002년 9월2일 명동의 한 작은 교회에서 32명의 노인들이 두 해 전에 먼저 간 1차 송환의 동지들을 그리워하면서 자신들 신념의 역사적 정당성을 설파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13명의 노인은 국제적으로도 그 지위를 인정하는 전쟁포로이다. 전쟁포로에게 전향이라는 문제가 따라 붙는 것 자체가 문명국가들의 웃음거리가 아닌가.

언제까지 이 작은 나라에서만 벌써 오래전에 쓰레기통에 버려진 냉전의 유물을 신주처럼 받드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어야 하는가.

얼마전 `대한민국`의 박수소리가 세계를 뒤흔들었다. 이제 우리가 아닌 그들로부터 박수소리를 들어야한다. 지상에서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 병을 치유하고, 하늘아래 생명의 경외로움이 받들어지고,  양심의 숨소리가 고르게 퍼지는 `타오르는 동방의 등불`이 되기 위해 새로이 떨쳐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 귀머거리, 청맹과니가 된 우리가 먼저 깨어나 인간의 고귀한 가치를 지키고자 아름다운 청춘과 생애를 조국과 후손들에게  바친 저  노인들을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 보내드리자!

그리고 인간으로 떳떳이 살아보자.

그래야 내 아이들에게 성실히 살아라, 사람을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하라,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라고 떳떳이 교육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통일된 조국에서 한민족인 남과 북이 어우러져 덩실덩실 너울대는 춤판이라도 벌이다가 넘어진다면 그 아니 아름다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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