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화섭(오륜중학교 교사)


이번 여름 방학 때 오륜중 교사, 학생 36명은 4박 5일간 중국을 통해 백두산에 올랐다.

학기초 통일사랑반을 만들 때 참여하는 아이들을 뿅가게 하는 그 무엇이 없을까 고민하다고 생각한 것이 백두산 천지에 가보는 것이었다. 백두산기행을 처음 진행하다 보니 여행계획이 번번이 변경되기도 하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방학한 다음날 7월 22일 우리는 드디어 중국 심양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심양에 도착하여 잠깐 관광을 하였는데 이곳은 한때 청나라의 수도로서 고궁과 북릉공원을 통해 그 당시의 문화와 도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후 늦은 밤에 고구려 유적이 있는 집안을 가기 위해 우리는 통화행 기차를 탔다. 앗!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타기로 한 기차의 객실 1. 3호차가 옆에 있지 않고 맨 앞과 맨 끝에 있었다. 아뿔싸! 차는 출발하려고 하지 3호차는 안보이지 우리는 긴급하게 6명의 여학생을 데리고 아무 곳이나 올라 3호차를 찾아나갔다.

기차안은 비용에 따라 허름한 곳, 비싼 곳이 있었고 맨 끝이 3호차였다. 불은 꺼져있고 6인용 침대차는 기대와는 달리 창문이 없이 간단한 매트를 3층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거기에다 주변 중국인 남자들은 웃통을 벗고 자고 있었다. 나와 여학생들은 첫 번째 칸 침대에 앉아 한숨을 쉬며 새벽을 기다렸다.

새벽에 통화에 도착하여 곧장 집안으로 갔다. 집안에서는 괜찮은 호텔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밤 피로로 오전에는 휴식을 취하고 점심을 먹고 나서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였다.

이후 사진과 비디오로만 본 광개토대왕릉비를 보며 광활한 대지를 품어안았던 광개토대왕의 힘을 보았고 호묘와 장군총을 들러 고구려문화를 살펴보았다. 이후 고구려가 쌓은 국내산성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다. 저녁에는 밥먹고 남학생들끼리 호텔 앞에서 축구공으로 발배구 시합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행 3일째 우리는 환도산성을 둘러보았다. 이후 고구려 귀족들의 무덤떼를 보러 가는 사이 또 사건이 생겼다. 이번 여행동안 대부분 고구려유적은 촬영을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실력껏 살짝 살짝 비디오를 찍었는데 이날 안내인에게 걸려 무려 50만원 가까이 벌금을 낼 뻔하였다. 사정, 사정을 해서 벌금을 깎아 22만원을 주었다.(이후 여행사를 통해 대부분 돈을 돌려 받았다)

여행도중 이런 일이 생기니 마음이 심란해지고 머리속이 헝클어졌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 생길수록 서로 지혜를 모으면 좋은 수가 있음을 알고 있기에 학생들에게 자초지종을 말하니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많은 성금을 모아 내게 주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압록강으로 나아갔다. 실제 중국과 북한의 경계는 강 하나가 전부였다. 강 건너 저곳이 북한이라니, 마음이 찡해졌다. 우리는 6명씩 쾌속보트를 타고 압록강을 돌았다. 배가 출발하자 우리는 북한쪽에 사람이 있을까 싶어 두 눈에 불을 켜고 북한 사람을 찾아보았다.

드디어 북한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농사짓는 농부, 길 걷는 아저씨 등 우리는 소리를 치며 그분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들도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아! 나라가 외세에 의해 갈려진지 57년! 너무나 긴 세월동안 얼마나 떨어져 지냈는가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지기도 하였다.

배를 탄 후 우리는 압록강에 발을 담그고 있다가 압록강 `조중철교`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북한의 혜산이란 곳이 눈앞에 펼쳐져 있고 큰 구호판이 산 정상쪽에 쓰여 있었다. `조중철교`는 500m정도 되는데 양쪽에서 250m씩 관리한다고 한다. 중국쪽의 철교를 따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니 중국쪽에서 관리하는 끝이 나오고 이어 북쪽 관리란다. 50m전방에 북한 관리병사가 지키고 있고 우리가 손을 흔들었으나 반응이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둘러 호텔로 와서 짐을 꾸려 다시 통화로 이동하였다. 이제 내일이면 우리 여행의 최종목적지 백두산 천지에 오른다.

통화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중국뷔페 음식에 들어가 폼을 잡았지만 막상 중국 음식 앞에서는 다들 수저 놀림이 둔하였다. 이후 첫날 기차여행의 어려움을 십분 감안해서 이번에는 사전에 대처를 잘해서 모두 함께 백두산으로 가는 이도백하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여행 4일째 이도백하로 향하는 기차에서의 아침은 우리를 긴장시켰다. 밖에 비가 오다니! 아 백두산천지를 과연 볼 수 있을까 싶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4개월 동안 준비를 했는데!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자는 다짐도 해보고...

연변대학을 갓 졸업한 현지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비오는 백두산 입구에 들어섰다. 많은 찝차가 줄을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옷을 사서 입고 6인용 찝차에 올라타 백두산으로 향하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백두산은 역시 남한에서 본 산과 다르게 웅장하였다. 차의 양쪽 유리에 비친 백두는 한쪽에서는 안개와 구름으로 가리고 한쪽은 광활한 목장을 연상케 하였다.

20여분을 달린 찝차는 우리를 천지 앞에 내려다 주었다. 백두산 정상은 바람과 비가 섞여 우리를 정신 못차리게 하였다. 가이드를 따라 천지로 나아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천지에는 안개로 가리워져 있었고 천지아래에서는 강한 바람이 불어와 우리의 접근을 막았다.

아이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아쉬운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몇몇 학생이 `천지가 보인다`고 소리쳤다. 아니나 다를까, 단 몇 초 사이에 천지는 우리 학생들을 위해서 자신의 일부를 드러내주었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이들은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백두산에서의 30분 시간을 다 사용하고 온 길을 되돌아 백두에서 내려왔다. 이어 그 유명한 장백폭포를 보고 연길로 돌아와 비행기로 심양에 도착하였다.

다음날 수속을 마치고 2시간의 비행을 끝내고 인천국제공항에 내렸다. 4박 5일 동안 짧았지만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보았다. 고구려 유적, 압록강에서 북한을 본일, 백두산 천지에 오른 일.

이번 여행은 아이들이나 나에게 인생에서 참으로 기억될 만한 여행으로 기억되리라. 하루빨리 통일이 다가와 북한을 통해 백두산을 오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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