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


북한은 2002년 7월 1일 노임인상 및 국정가격체계의 개선과 더불어 경제관리에 대한 개선책들을 내놓았다. 먼저 국정가격은 생산원가 및 국제가격을 반영해서 인상하였으며, 이에 따른 생활비를 보장하기 위해 노임도 대폭 인상하였다(생산직 노동자의 경우 종래의 110원에서 2,000원으로 인상, 채취공업 노동자들은 6,000원으로 인상). 그리고 공장·기업소의 독립채산제를 새삼 강조하고 공장의 자율성을 높이는 등 공장관리에 대한 개선책도 내놓았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적어도 이러한 조치들에 대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실은 (단기적으로 볼 때) 1990년대 중반 이후의 `고난의 행군`과 `강행군` 시기에 붕괴되었던 북한의 경제상황에 대한 정권의 대응책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격현실화 조치와 경제관리에 대한 개선책들이 어느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며 어떤 결과들을 가져올지는 현재로선 점치기 어렵지만, 북한이 `개혁`이나 `개방`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설명을 뒷받침할 만한 징후는 이번 개선책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는 북한이 최근 몇 년 동안 진행시켰던 제반 정책적 대응들을 검토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북한은 이미 1998년 헌법을 개정한 이후 본격적인 경제관리 및 공장관리체제의 개선에 나섰다. 이른바 `새 경제전략`이 그것이다. 새 경제전략은 크게 두 단계로 진행되고 있다. 첫 단계는 경제관리체계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이 단계에서는 경제관리에서 당의 상대적 퇴각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경제운용의 주체로서 내각이 전면에 부상(이른바 `내각 중심제`)하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restructuring)이 감행되었다.

이 단계에서는 연합기업소의 해체와 뒤이은 재편이 이루어졌으며 연합회사 체제가 성립되었다. 물론 2002년 현재까지 주요 공장·기업소에 대한 구조조정은 꾸준히 실시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북한의 유리산업의 `어머니 공장`으로 불리던 남포유리공장을 비롯해 여러 개 공장이 시설노후를 이유로 폐쇄되었고 라남탄광기계연합기업소 등은 모범기업소로 판정 받아 일반화하는 사업에 나서기도 했다.

새 경제전략 하에서 진행되었던 두 번째 단계는 2002년 7월을 전후로 해서 이뤄진 조치로서 공장관리에서 노무관리를 개선함과 함께 공장지배구조를 개선하였다. 이 단계에서 노임구조의 변화(임금인상 및 인센티브 조정)와 더불어 공장내 권력관계의 조정, 공장의 자율권 확대 등 기존의 공장관리체제에 상당한 조정을 가한 것이다.

따라서 2002년 7월 이후에 실행되고 있는 개선책들은 이미 1990년대 말부터 착수되어 왔던 경제정상화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의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무너져 내린 공장규율과 노동규율을 확립하고 생산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고육책으로서 제시된 것이다. 즉 노동자들의 임금을 현실화시킴으로써 출근 노동자들의 구매력을 증가시키고 노동자들을 공장에 복귀시키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현재 북한의 공장가동률은 30% 미만에 머물고 있어 이러한 임금인상조치가 전체 노동자의 극소수에게만 구매력을 제공하며 대부분 노동자들은 이로부터 비껴 나있다. 게다가 1990년대 중반이후 약7-8년 동안 가동하지 않아 녹슬고 노후화된 공장시설들이 정상화되어 가동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출근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시킨 이번 조치는 현실적으로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지방분권화와 공장자율권을 확대한다해도 이것을 시장 개혁의 단초로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이는 북한의 현재 재정이 지방을 껴안거나 공장을 직접 관할하여 자재를 충분히 공급할 수 없는 상태(예산규모는 1990년 178억 달러에서 2000년 100억 달러로 급감)를 반영한 재정정상화를 위한 처방이기 때문이다. 공장자율권을 보장하면서 독립채산제를 강조한 것도 이러한 측면에서이다. 사실 공장내 지배구조에서 독립채산제를 강조하고 지배인의 권한을 확대한 것은 1998년 이후 내각 중심제로의 개편에 이미 예고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각 중심제는 당조직과 경제운영 주체를 분리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이에 따라 공장·기업소에서의 당비서보다는 전문경영인인 지배인의 권한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2002년 7월 이후 북한이 경제관리 개선책으로 내놓아 실시하고 있는 일련의 개선책들은 90년대 후반 이후 경제정상화 프로그램(이른바 새 경제전략)의 연속선상에서 실행되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들의 목표는 당연히 난파당한 `경제의 정상화`에 있는 것이지 이러한 정상화단계를 건너뛰어 `시장 개혁`으로 진입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정상화 전략`도 만성적인 공급부족상황(원자재, 전력, 식량 등)과 노동사회에 규율과 통제의 공백으로 인해 그 성공여부가 매우 불투명한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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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및 저서

현재 한국정치연구회 연구위원
학력 : 성균관대 정치학 박사
박사논문 :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정책 : 소련, 중국, 북한의 생산성의 정치", 1999
경력 : 현재 성대, 외대, 충대, 인하대 강사 ; 현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
저서 : 반노동의 유토피아 (2001), 노동의 세기(2000)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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