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용의 눈물`이라는 사극이 인기를 끈 적이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이전의 사극들과는 달리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려고 노력했고, 각 세력 사이의 이해 관계와 투쟁을 사실적으로 그리려 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를 본받으려고 하는 사극이 많이 이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문제점 역시 간단하게 넘길 것은 아닙니다. 이 드라마는 권력 투쟁의 원인과 배경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그 과정과 결과에만 주목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강한 자, 현실의 투쟁에서 승리한 자가 곧 진리라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에서 이방원은 온갖 어려움과 역경을 만날 때마다 술수와 투지로써 극복해 내어 마침내 왕위에 오르는 사람입니다. 그를 제거하려는 정도전과의 투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복 동생들을 죽일 뿐만 아니라 형을 꼭두각시로 이용하고 아버지를 쫓아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그의 투쟁 과정을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매력적인 모습으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권력이란 으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차지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반대의 측면에서도 나타납니다. 이 드라마는 현실 정치에서 승리한 강자를 미화하면서 동시에 패한 사람들을 감상적으로 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방원에게 패배한 정도전을 진정한 개혁주의자로 그리는가 하면 승패가 뒤바뀌었다면 우리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갖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몽상가들의 몰역사적인 사고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정도전을 어린 세자를 앉혀서 왕권을 조종하려고 했던 사람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뒤죽박죽의 평가를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과연 이방원과 정도전은 무엇 때문에 싸운 것일까요? 그리고 정도전은 왜 패한 것일까요? 그리고 그것은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요?
 
정도전은 조선 왕조 수립의 일등 공신으로서 다른 개국공신들과 함께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유교에 뿌리를 둔 왕도 정치를 이상으로 갖고 있었습니다. 왕도 정치는 중국의 고대 성왕들인 요, 순, 우임금, 주나라 문왕, 무왕의 정치를 재현하는 것으로서, 왕이 덕을 근본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이상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상은 왕권이 여러 부족들 사이에서 권한을 조정하는 위치를 넘을 수 없기 때문에 그다지 강하지 않았던 고대의 시대 조건을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상이 조선 왕조에 적용된다면 자연히 왕권은 상당히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이상은 자신들의 현실적 이해와도 맞아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왕권이 제약을 받을수록 이들의 권한은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개국공신들은 최고 정부 기관인 도평의사사를 중심으로 실권을 휘둘렀습니다. 이들은 왕권을 도평의사사의 결의를 재가하는 권한만으로 제한하고자 했습니다. 이들이 이러한 의도를 내비치자 왕실과 충돌을 빚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려 왕조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대안으로서 새로이 들어선 조선 왕조는 더욱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이룩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는 곧 강력한 왕권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명분이 약한 역성혁명을 거쳐 새로운 왕조를 세운 조선 왕조의 처지에서 왕권의 약화는 곧바로 왕조의 위기로 직결될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도 개국공신들이 왕권을 제약하려고 하니 자연히 강력한 왕권을 필요로 했던 조선 왕조의 시대적 요구와 갈등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왕권을 제약하려는 개국공신들의 구심점은 정도전이었습니다.
 
조선 왕조의 초대 임금인 이성계는 개국공신들이 왕권을 제약하려고 할 때 이미 늙었고, 자신을 왕으로 옹립해 준 개국공신들과 싸우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조선 왕조를 세우는 과정에서 계속되었던 권력 투쟁은 이성계보다는 오히려 그의 아들인 이방원이 도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성계는 뛰어난 무예와 지도력에다 무인다운 기개와 추진력을 갖춘 사람으로서 정변을 일으켜 새로운 왕조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잡한 정치적 관계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내부 권력 투쟁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달리 그의 아들 이방원은 강경 개혁파와 온건 개혁파의 투쟁에서 정몽주를 회유하다가 잔인하게 제거한 일로도 알 수 있듯이 현실 정치의 권모술수와 정치적 계산에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조선 왕조를 세우기 위한 정변에서는 이성계의 지도력과 결단이 성공의 원동력이었다면, 새로운 왕조로 바꾸기 위해 걸림돌을 없애고 그 토대를 닦는 과정에서는 이방원의 정치력이 거의 절대적인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러한 이방원이 왕권을 제약하려고 하는 개국공신들을 호락호락 보아 넘길 리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이방원과, 왕권을 제약하고자 하는 정도전 사이의 한판 승부는 필연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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