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pbpm@chol.com /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6월 29일 서해에서 일어났다는 남북 해군 사이의 무력 충돌에 관한 소식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고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여기서도 집을 떠나 막 한 달간의 여행길에 올라 있던 터여서 신문을 구하기 어려웠고 인터넷에 접속하기도 힘들었지만, 북한군이 먼저 대포를 쏘아 남한군 몇 명이 숨졌다는 내용을 대충 주워들을 수 있었다.
 
3년전과 비슷한 싸움이 벌어지다니.... 내가 마치 그 대포를 맞은 것 같았다.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다. 혹시 꾸민 얘기가 아닐까 싶었다. 엄살도 아니요 과장도 아니다. 난 충분히 그럴 만한 사연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 6월 역시 서해에서 일어났던 남북 사이의 무력 충돌을 지켜보며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만큼은 피하자며 [남이랑 북이랑 더불어 살기 위한 통일 운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3년전 남한 해군의 대포가 이 운동을 시작하도록 이끌었다면, 이젠 북한 해군의 대포가 이에 대해 조금이나마 회의하게 만든다고 할까. 그러나 이럴수록 평화 운동과 통일 운동을 더욱 힘차게 지속시켜야 한다고 다짐하며, 먼저 북한 군부에게 말한다.
 
당신들의 대포질은 남북 사이에 전쟁을 부를 수도 있는 분명한 범죄 행위다. 3년전 남한 해군의 대포질에 인민군들이 물에 빠져 죽은 사건에 대한 복수라면 옹졸하고도 위험한 짓이다.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부르며 폭력의 악순환을 초래하기 마련 아닌가. 미군들이 제멋대로 그어놓은 북방 한계선에 관해 남한 군부가 억지를 부리며 협상에 응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먼저 대포를 쏜 것은 절대로 되풀이 되서는 안될 심각한 폭력이다. 대화의 문은 얼마든지 열려 있지 않은가.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남한 당국이 대화를 거절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남한의 어선들과 해군 함정들이 북한의 영해를 침범했다고 해도, 죄없는 젊은이들을 죽인 일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반인륜적 범죄다. 꽃게를 잡는 게 아무리 중요해도 사람 목숨보다 귀중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에 대해 남한의 호전 세력은 `강경 대응`이나 `전쟁 불사`를 외치는 등 더 끔찍하고 더 큰 범죄를 부추기고 있다. 무슨 사건이 터지면 어떻게 보복할 것인지 선동적으로 호들갑을 떨기보다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차분하게 따져보고 앞으로는 더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에 한나라당 지도부를 포함한 수구 정치인들과 조선일보 간부들을 비롯한 극우 언론인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진정 남북 사이에 전쟁이 터지길 바라는가? 전쟁이 확대되면 당신네들 목숨은 안전하리라 믿는가? 전면전이 벌어지면 남쪽이든 북쪽이든 승자든 패자든 불바다와 잿더미로 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그래도 전쟁 불사를 외치고 싶고 기어코 확전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당신들이 가지고 있을지 모를 미국의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버려라. 정치적 목적으로 보복과 응징을 선동하다 막상 전쟁이 터지면 치사하게 바다 건너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라는 뜻이다. 그리고 당신들이 직접 군복을 입고 총을 잡기에는 너무 늙었다면 당신 아들들이나 조카들 또는 손자들을 반드시 군대에 보내고 이왕이면 말뚝박고 전방에서 장기 복무하도록 이끌어라. 자기 새끼들은 이 핑계 저 핑계로 병역을 기피하게 만들면서 힘없는 백성들의 자식들만 애꿎게 총알받이가 되게 하지 마란 말이다.
 
이제 남북간의 대결보다는 화해와 협력을 바라고 전쟁보다는 평화를 원하는 모든 분들에게 알린다. 난 솔직히 `정전 협정`이나 `북방 한계선`에 관해 깊이 공부하지 못했고 `국제 해양법`에 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기 때문에,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어려운 글을 쉽게 풀어쓰는 것으로 내 주장을 대신하고자 한다.
 
한국 전쟁이 실질적으로는 1953년에 멈추었지만 법적으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53년 7월 27일 맺어진 것은 전쟁을 끝내고 화평을 이루자는 종전 (終戰) 또는 평화 협정이 아니라, 전쟁을 잠시 멈추거나 쉬자는 정전 (停戰) 또는 휴전 (休戰) 협정이다. 3년 동안 싸우고 50년이 흐르도록 쉬기만 한 채 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남한이 전쟁은 했어도 정전 협정에는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화 협정에 떳떳하게 나서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요, 둘째는 평화 협정이 맺어지면 미군들이 남한 땅에 줄기차게 머물러 있어야할 법적 명문이 없어지기 때문에 미국이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전 협정에 부실한 구석이 많은데다 그 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았다. 부실한 구석의 하나가 바로 남북 사이의 경계선 문제다. 땅 위에는 협상에 의해 휴전선도 그어졌고 그 위아래로 군사 분계선도 만들어졌지만, 바다 위에는 경계선이 그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기야 협상에 의해 바다 위에도 경계선이 만들어졌다 할지라도 땅 위에서처럼 말뚝을 세워 철조망을 칠 수도 없고, 어선이나 함정이 그 선을 넘는다 해도 자국이 남는 게 아니어서 말썽이나 분쟁의 소지가 완전히 없어지기는 어렵겠지만.
 
아무튼 정전 협정이 맺어진 뒤 미국은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해에 있는 대여섯 개의 섬을 기준으로 북방 한계선을 그었는데 이는 북한 황해도의 옹진 반도를 침해하게 되고, 북한은 국제법에 따라 12해리의 영해를 주장해왔는데 이는 남한 경기도의 조그만 섬들을 삼켜버리게 된다. 시비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고 분쟁이 그칠 수 없는 사연이다.
 
여기서 1999년 6월과 2002년 6월 남북 사이에 전쟁으로 치달을 뻔했던 무력 충돌의 근원이랄 수 있는 북방 한계선에 관해 한 마디 덧붙인다. 영어로는 Northern Limit Line이어서 흔히 NLL로 쓰이는데, 이는 말 그대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갈 수 있는 한계를 표시하는 미군의 작전 통제선이다.
 
미국은 1952년부터 한국 전쟁에서 발을 빼려고 휴전을 추진하였는데 이에 가장 큰 걸림돌이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그가 북진 통일을 주장하며 휴전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얘기한대로 남한이 정전 협정에 빠지게 된 배경의 하나이기도 한데, 미국은 1952년 휴전을 반대하는 이승만을 극비리에 납치하여 몰아낼 계획을 두어 차례 세우기도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런데 정전 협정이 맺어진 뒤에도 남한 군대가 미국의 허락 없이 북한을 침공할까봐 울타리를 쳐놓았으니 이게 바로 북방 한계선이다. 남한 해군의 북침을 막기 위한 미군의 통제선이 세월이 흐르면서 북한의 어선이나 함정을 통제하는 경계선으로 둔갑한 셈이다.
 
요약하자면 북방 한계선은 북한이나 미국 사이 또는 남한이나 북한 사이의 협상에 의해 그어진 경계선도 아니요, 북한의 어선이나 함정이 그 선을 넘었다 할지라도 정전 협정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서해에서의 분쟁이나 참사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해군의 교전 수칙을 바꾸고 안보 태세를 강화할 게 아니라, 해상 경계선 문제에 관해 진지한 협상을 벌여야 하지 않을까.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남한이 주장하는 북방 한계선과 북한이 주장하는 영해가 겹치는 부분을 남북 공동 어장으로 만드는 게 바람직할 것 같고.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불안하고 불완전한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기고는 `더불어 살기 위한 통일운동 소식지` <남이랑 북이랑> 제41호(2002년 8월호)에 실린 것을 필자가 다소 줄인 것입니다. 통일뉴스에서는 시일은 다소 지났지만 아직 시사하는 바가 많기에 기고 형식으로 다시 게재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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