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pbpm@chol.com /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여기 미국엔 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언제 또는 어떻게 바그다드를 폭격할 것인가를 넘어 이젠 사담 후세인을 없앤 뒤 누구를 대통령으로 세워 이라크를 이끌어갈지 궁리하는 모양이다. 국무부와 국방부 등에서는 이라크의 반정부단체 지도자들을 지난달부터 이미 두세 차례 불러들여 토론을 벌였다.

최근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가 의회 지도자에게 11월 선거 이전에는 이라크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지만, 난 부쉬가 선거를 앞두고 전쟁을 일으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하늘 높이 치솟았던 그의 인기가 증권과 관련된 스캔들 및 경제 상황의 악화 등으로 서서히 떨어지고 있는데 이 상태로 선거를 맞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부쉬를 주춤거리게 만들고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인 모양이다. 첫째는 빨리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 상황이다. 부자지간에 전쟁에는 강하고 경제에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1991년 이라크를 일방적으로 폭격함으로써 90% 안팎의 지지를 받고도 전쟁 후 경기 후퇴로 다음해 대통령 선거에서 클린턴에게 패배했던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마라는 충고를 받는 배경이기도 하다.

둘째는 그칠 줄 모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이다. 이스라엘을 줄기차게 일방적으로 편들자니 중동 국가들의 반미 감정이 고조되고, 국제 사회의 비난을 의식하여 팔레스타인을 조금이라도 생각해주려면 유태인들을 포함한 국내 여론 주도층의 반대 목소리가 너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동맹국들의 반대 또는 국제 사회의 저항이다. 지난 1991년 전쟁에서는 주요 강대국들이 경비를 분담하고 한국을 포함해 거의 30개 나라가 어떤 형태로든 참전하여 미국을 도왔지만 이번에는 영국만 지지하고 나섰을 뿐이다. 유엔은 미국을 은근히 비난하고, 독일은 노골적으로 반대한다. 중동의 가장 큰 동맹국인 사우디 아라비아도 이라크 침공을 위한 기지를 내주지 않겠다고 저항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이라크와의 전쟁이 터지기 전에 부쉬 행정부 안에서 먼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는 파월 국무부장관과 테넛 CIA국장 등은 먼저 이라크에 대해 강력한 봉쇄를 취하면서 동맹국들의 협조를 이끌어낸 다음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공격하자는 것이요, 강경파인 럼스펠드 국방부장관과 체니 부통령 등은 봉쇄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고 동맹국들의 협조도 구하기 힘드니 그냥 밀어붙이자는 것이다. 부쉬 대통령과 콘돌리자 안보보좌관은 이 양쪽 사이에서 저울질을 한다는데 아무래도 강경파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을까 싶다.

강경파들의 전쟁 의지는 전혀 흔들림이 없는 듯하다. 많은 동맹국들이 반대해도 영국만 따라오면 되고, 혹시 영국마저도 거부하면 미국 단독으로 전쟁에 나설 태세다. 사우디 아라비아가 기지를 내주지 않는다면 쿠웨이트, 터키, 카타르 등의 기지만 확보해도 된단다. 하기야 이미 40,000여명의 미군들이 이라크 주위에 포진해 있지 않은가. 요즘 사우디 아라비아 안에서 일고 있는 반미 감정과 관련해서는, 미국이 이라크를 폭격해서 후세인을 잡고 바그다드에 친미 정권을 세우면, 사우디 아라비아와 동맹 관계를 끊어도 중동의 석유 및 군사 기지 확보가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한편 9ㆍ11 참사 1주년이 다가오는데 미국은 알 카에다의 빈 라덴은커녕 그를 감싸주었던 탈레반의 오마르도 못잡고 있다. 그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살았다면 어디에 있는지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으니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목표에 크게 미달인 셈이다. 게다가 FBI가 테러 계획을 오래 전에 알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의혹과 비난에 따라 의회에서 청문회가 열린 데 이어, 백악관에서는 그보다 훨씬 앞서 대책 회의까지 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8월 12일자 {타임}에 따르면, 2001년 1월초 부쉬가 취임하기 직전 백악관 상황실에서 클린턴 안보팀과 부쉬 안보팀이 업무를 인계인수하는 자리에서 빈 라덴의 알 카에다 조직과 싸우는 것에 대해 심도있게 토론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라크와의 전쟁은 이런 불만과 의혹을 묻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야당의 비판과 공격도 잠재워버릴 수 있을테고.  경제 상황에 대한 국민의 불안도 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꿩 대신 닭`이라고 빈 라덴이나 오마르 대신 후세인이라도 잡으면 인기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정당하다 (All`s fair in war)"는 잘못된 서양 속담에서 드러나듯, 예나 지금이나 호전 세력들은 동기나 과정을 중시하지 않는다. 결과에 따른 정치적 이득에만 집착할 뿐이다. 후세인이 빈 라덴처럼 미국을 공격하지도 않았고 테러 조직과 연계되었다는 증거조차 없는데 이라크를 공격하는 것은 국제법에 어긋난다는 소수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일단 전쟁이 터지면 저항의 목소리는 수그러들기 마련이요, 후세인 제거라는 목표를 달성하면 반대 여론도 박수 갈채로 바뀔 것이라고 믿을 테니까.  부쉬와 공화당의 강경파들이 11월 선거 이전에 이라크와 전쟁을 벌일 것 같은 예감을 갖게 하는 배경이다.

여기서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게 있다. 미국의 호전 세력이 이렇게 전쟁을 일으키면, 남한의 호전 세력들도 덩달아 날뛰지 않을까. 마침 대통령은 힘이 쭉 빠져 있고, 국회는 극우 수구파가 이끄는 한나라당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마당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를 포함한 수구 정치인들과 조선일보 간부들을 비롯한 극우 언론인들은 서해에서의 무력 충돌을 기다렸다는 듯, `햇볕 정책`을 버리라며 "전쟁 불사"와 "확전 각오" 등을 부르짖지 않았던가.

이들은 8ㆍ15 남북 공동 행사를 위해 서울에 올 북한 대표단에게 시비를 걸거나 행사에 훼방을 놓지 않을까. 9월 말 부산에서 열릴 아시안 게임에 참가할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행위에 트집을 잡으며 갈등을 일으키지 않을까. 혹시 김정일 총비서가 2차 정상 회담을 하자고 내려오겠다고 하면 김대중 대통령과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며 깽판 놓지 않을까. 이렇게 북한 당국을 자극하며 이른바 `도발`을 유도하고 나서는, 이라크 다음에 북한을 쳐달라고 미국에 굽신거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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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 대표
2002년 현재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방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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