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혁(남서울중학교 교사)


나는 군대에서 한 때 이념교육 교관의 임무를 수행했다. 한마디로 우리의 주적인 `북괴`에 대한 증오심과 환멸감을 일상적으로 최대한 고양시켜 각개 병사의 `정신 전력`을 드높임으로써 군의 전투력을 제고하는 것이 그 임무였다.

소위 좌경사상의 범주에 드는 것들을 광범하게 다루고 정해진 논리로 비판한 후 이어서 비난의 총탄을 `북괴`라는 과녁에 집중 사격하면 임무는 끝났다. 그리고 그것을 계속 반복하면 되었다. 질의 응답이 이어지지만 토론은 물론 없었다. 성공적인(?) 임무 수행 후 무사히 제대하여 교단에 선 지 이제 10년이 되어간다.

교무실에 가면 서울 교육 지표가 액자에 근엄하게 넣어져 우리 교사들을 내려보고 노려본다. 어느 날 그 액자를 올려보아 그 중 1번을 오려보니, 과연 햇볕정책을 펴는 시대상황에 걸맞게 제1지표가 `통일교육의 내실화`이다. 희한한 것은 그럼에도 학교에서는 통일교육을 내실화하려는 어떠한 토론이나 강조도 없으며, 통일교육은 여전히 과거의 반공교육의 다른 이름으로 기능하고 있고, 참된 통일교육은 각성된 몇몇 교사 개개인의 의지와 역량에 의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일교육 뿐이랴! `위`에서 우리 교육을 장식하는 화려한 구호는 소박한 실천조차 담보하지 못한다. `아래`에서 가꾸어 온 교사들의 소박한 실천은 `위`로부터 끊임없이 방해받아 왔다. 이것이 오늘의 교육 위기의 모습이다. 이대로는 안된다, 남과 북이 적대하는 한 우리 사회와 우리 학생들의 미래는 없다는 생각이 뇌리에만 박혀 있던 중,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경험했다. 사회의 다음 세대를 양성하는 교사로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전환기에 해야 할 일을 고민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강한 동기가 나로 하여금 뭔가를 하게 만들었다.

교사들이 일반적으로 기피하던 통일교육 연수를 자청했다. 1년에 서로 다른 단체에서 주관한 두 번의 통일교육 연수에 참여하면서, 통일교육 현실의 문제를 근본부터 심각하게 고민하여 보았다. 2001년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의 마각이라 할 7차 교육과정이 중학교에 적용됨에 따라 범교과 학습이 가능하다고 하는 소위 `창의적 재량활동`이 신설되어 교사들을 창의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할 때에, 나는 이 시간을 아예 창의적으로 `이용`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학교의 창의적 재량활동 운영계획에 설계되었던 국제이해교육이라는 주어진 과제를 평소 하고 싶던 통일교육으로 대체함으로써, 통일교육을 소박한 수준이나마 계획적이고 안정적으로 실천할 조건을 확보한 것이다.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하였고 5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영상자료 시청과 퀴즈, 짧은 토론을 통해 통일과 북한, 그리고 한반도 주변 국제관계에 대해 맹목적으로 가지게 된 편견을 학생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사회 현상을 폭넓게 인식할 능력이 부족한 중학생 저학년에게는 어려운 내용이어서 수업 진행이 쉽지 않았지만 동일한 프로그램을 학급을 옮겨가며 반복하는 과정에서 결점이 보완되어갔다.

"증오하는 대상과 결혼이 가능할까요? 증오하는 대상과 통일이 가능할까요? 맑은 눈으로 북과 남을 공정하게 한 번 봅시다. 천사도 악마도 아닌 인간을 봅시다."

지난 한 해 우리 학교에서는 통일교육의 붐이 불었다. 교사의 자각과 자발성을 에너지로 하여 창의적 재량활동뿐 아니라 다른 교육 영역에서 폭넓게 통일문제가 다루어졌다. 연말에 통일교육을 받았던 학생들로부터 가슴 뭉클한 엽서들을 받았다. 마음에 새기며 소중히 간직하려 한다.

이후 통일교육의 열기는 학교 울타리를 넘어가기 시작했다. 관악구와 동작구의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 참여하여 2001년 여름방학 때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청소년 통일학교 `통통`을 열게 되었다. 뜻을 같이 하는 선생님들과 지역단체 일꾼들의 땀으로 일군 `통통` 학교는 처음 하는 것이라 미흡한 점들이 있었지만 통일사랑이 결과한 소중한 열매였다. 지역에서 통일교육에 관심있는 교사들의 소모임이 꾸려져 역량이 축적되면 재개될 `통통`은 더욱 통통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통통` 졸업 직전 북녘에 꽃씨 달린 풍선을 날려보내며 참가 학생과 교사가 서로 손잡고 함께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은 이루어진다! 소원은 성취된다!! 통일은 이루어졌다!!!

통일교육은 사회과나 도덕과의 한 부문을 초월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교과에 녹아 들어갈 수 있으며 모든 교과에 녹아 들어가야만 한다. 통일교육은 교육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소중한 가치들을 내포한 보다 큰 카테고리일지 모른다.

증오가 아닌 화해를, 적대가 아닌 친선을, 전쟁이 아닌 평화를, 힘의 우위가 아닌 공존의 관계를, 종이 아닌 주인의 삶을, 이상 사회에 대해 절망과 체념이 아닌 희망과 가능성을 가르치는 것이 통일교육이라면, 이는 곧 민족교육, 민주교육, 인간화교육이며, 결국 이 시대가 요구하는 참교육이다.

`교사는 진실을 가르치는 자유인`이란다. `진실`은 무엇이며 `가르치는 자유`란 무엇인가? 모순이 많은 사회에서 가르치는 교사에게는 특히 무거운 질문일 것이다. 내 마음을 꿰뚫어 볼 듯한 학생들의 맑은 눈앞에서 나는 진실을 가르치는 자유인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진실을 가르치는 자유인에게는 진실을 말하는 `양심`과 가르치는 자유를 획득할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통일교육은 먼저 교사들에게 그것들을 요구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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