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1일 폐막된 브루나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은 마치 한반도를 위한 회담처럼 보였다. 1일 백남순 외무상은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방북, 평양을 방문하기로 미국측과 합의했다`고 밝힘으로써, 북미대화가 새로운 차원에서 전개될 가능성을 높였다. 이번에 미 특사의 방북이 이뤄진다면 이는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후 실질적인 최초의 북미대화로 되는 것이다. 이번 미 특사 방북 합의는 8월중에 있을 남북 장관급회담 재개와 북일 국교정상화 협의재개 등과 함께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주요 일정이 일단 가시권에 들어온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국들과 주변국들간의 대화일정이 예측가능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한반도 상태의 안정감`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로써 지난달 25일 서해교전 사태에 대한 북한의 유감 표명과 남북장관급회담 전격 제의 이래 활발한 대외 행보를 펼치던 북한이 초미의 관심을 모으던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미국 및 일본과 대화재개의 큰 틀을 마련했다는 것은 한반도 정세를 위해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북한의 유감 표명 직전과 결부해 보면 천양지차(天壤之差)라 아니 할 수 없다. 실제로 미국은 작년에 이어 올해 년초부터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았으며, 그나마 4.5공동보도문 합의로 탄력을 받을 수 있었던 남북관계마저 서해교전 사태후 남측 수구세력들에 의해 `전쟁불사론`이 나올 정도였다. 한마디로 최악의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관련국들간의 대화재개 합의는 상황을 반전시켜 모처럼 한반도에 긴장이 완화되고 화해의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일단 한반도 정세는 남북이 4.5공동보도문을 실천하려 하고 또 북미간에 대북 특사 파견을 준비하던 서해교전 사태 이전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아직 단언할 수는 없지만 지금 상황은 서해교전 사태 이전보다 더 호전된 것으로 보인다. 그때는 남북이 합의한 4.5공동보도문에 대해 미국이 마뜩지 않은 모습을 간간히 보였고, 또 미 특사의 방북도 양국의 줄다리기에 미적미적되다가 연기된 터였다. 그러나 최근 1주일 사이에 일어난 북한을 둘러싼 사태의 반전은 뭔가 꼬였던 매듭이 일시에 풀리는 듯한, 아니면 애초부터 잘못 꼬이지나 않았나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그 속도와 파격성에서 보는 이를 현기증 나게 할 정도이다.

돌이켜 보면 지금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당사국과 관련국들간의 대화재개가 가능하게 된 것은 북한의 서해교전 사태에 대한 `유감 표명`과 그에 대한 한.미.일의 `수긍`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북한도 내키지 않을 `유감 표명`을 한 것에 대해 남한을 비롯한 미국과 일본이 `미흡하나 수용`, `긍정적 발전`, `대화재개 환영` 등으로 화답한 것은 한반도 문제의 일각을 차지하고 있는 각 나라들이 `이번만은` 한반도정세의 안정을 바라고 있지 않나, 하는 해석을 하고 싶을 정도이다. 이 와중에 방향감각을 잃은 쪽은 남쪽의 수구적인 야당과 언론들이다. 서해교전 이후 전쟁불사를 외치다가 북한의 유감 표명이 있자, `북한이 뭔가 속사정 있나`, `사과 미흡` 등으로 몰아치다가 국제정세의 급변에 너무 나간 발을 빼지 못한 채 엉거주춤해 있다. 남한의 수구 야당과 수구 언론들이 계속 방향설정을 못한다면 한반도문제와 민족문제에서 끈 떨어진 연(鳶)처럼 영영 구천을 헤매게 될지도 모른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한반도에 찾아온 모처럼의 화해 분위기를 살려 관련국들은 상호간 관계복원은 물론 새로운 관계로까지 발전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우리가 이번 한반도 정세를 반전시킨 북한과 한.미.일간의 대화재개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번 대화재개가 한반도에 화해 분위기를 싹트게 했다는 점 못지 않게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그 합의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한 흔적이 돋보였다는 점이다. 이는 그간 이들 나라들간의 관계에 있어 보기 드문 점이기도 하다. 북한과 관련국들간의 `양보와 수긍의 미덕`으로 불릴 수 있는 이번 과정이 향후 한반도 정세의 안정화와 관련한 어떠한 난관이 오더라도 그를 타개해 나갈 수 있는 교훈으로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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