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렬(통일연구원 경제협력연구실장)


드디어 북한의 `신사고`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은 최근 가격제도를 정비하여 쌀 판매가격을 종전의 킬로그램당 8전에서 44원으로 올리고 공공요금과 주택사용료 등도 대폭 상향조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임금노동자들의 기본임금이 110원에서 2천원으로 인상되었으며, `생산자 우대의 원칙`을 적용하여 광원들의 기본임금은 6천원 수준으로 책정하였다. 

아직 북한당국이 공식적으로 확인하지는 않고 있으나, 외화와바꾼돈표의 폐지와 현실적 환율의 반영, 생산단위의 경영방식 개선 및 자율권 확대 방안 등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98년 북한 헌법 개정 이후 서서히 가시화되기 시작했던 새로운 경제정책 노선이 상품경제로 구체적 방향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북한은 과연 변하고 있는 것인가?

사실 90년대 이전 북한의 공식배급체계는 전시 비상시기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경우에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세분화되어 엄격하게 관리되었다. 그러나 경제위기로 인해 공식배급망은 붕괴되다시피 했고, 주민들은 암시장에서 식량을 포함한 일용품의 대부분을 구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암시장에서 식량과 소비재가 국정가격의 수십 배에서 수백 배에 이르는 가격에 거래되는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의 근로의욕은 땅에 떨어졌으며, 암거래마저 할 수 없는 취약계층은 생존을 위협받았다. 더욱이 암시장 확산은 공식부문의 물자 유출 현상을 초래하여 계획경제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

그 동안의 북한경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번의 조치는 `적극적 개혁의지`의 표현보다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의 제도적 수용`으로 평가된다. 이번 조치만으로 북한이 시장경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아직 가야할 길이 너무나 멀다. 이번의 단편적인 조치들만으로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확보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그 동안 북한이 취해 온 일련의 경제관리 개선방안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이번의 조치는 긍정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다. 북한은 90년대 말부터 기업관리제도 및 예산수납제도의 개선과 지방경제의 자율성 제고, 적극적인 대외경제관계 개선 모색 등 전향적인 정책 변화를 시도해 왔다.

북한은 경제난을 동유럽 사회주의 시장 붕괴와 미국의 경제제재 등 외부적 요인 탓으로 돌려왔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경제관련 문건에서는 사회주의 경제관리 방식의 미숙함과 상품경제의 긍정적 기능에 대한 평가도 눈에 띈다. 이는 북한이 그 동안 추진해 왔던 계획경제 내에서의 관리방식 개선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서서히 시장거래 방식의 도입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변화로 볼 수 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그 나마 작은 변화는 북한경제의 장래에 희망을 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누적되어 온 북한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 북한이 보여준 변화는 부족하다. 대폭적인 임금 및 가격인상과 배급제도의 축소만으로 암시장 기능을 제도권으로 흡수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또한 가격자유화와 시장의 수요를 반영한 상대가격구조의 조정 없는 일괄적 가격수준의 인상은 `화폐개혁`의 제한된 효과만을 가질 것이다. 통화증가에 따른 물가상승과, 지역과 계층간의 빈부격차 확대도 예상되는 부작용이다.

북한경제는 경제상황 변화에 따른 공급조절 능력이 낮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과연 제한된 가격조정 정책만으로 공식경제부문의 물자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산업가동이 정상화될 수 있을 지 우려된다. 또한 북한의 수출능력 제약과 산업불균형, 그리고 아직 무역회사들이 독점하고 있는 수출권한 등을 고려할 때, 현실적 환율 반영 등의 정책을 채택하더라도 신속한 수출확대는 어렵다. 당분간은 식량과 에너지 부족분을 국제사회의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북한경제의 재정적 어려움과 산업생산의 침체 등으로 인해 신속하고 효율적인 경제정책 변화를 위해 필수적인 투자재원을 자체적으로 조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성공적으로 `우리식 상품경제`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국제환경 조성과 내부경제의 지속적인 변화를 보장할 수 있는 후속조치들이 필수적이다. 필요한 후속 조치로는 가격자유화와 시장을 통한 상품거래의 허용, 기업소에 대한 독자적 경영권 부여, 생산단위의 수출입 허용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다양한 생산수단 소유제도의 도입과 외자의 자유로운 경영활동 보장도 북한경제의 회복에 기여할 것이다. 이와 같은 조치들의 전면적인 도입이 어렵다면 우선 주민들의 일상 생활용품 공급과 관련된 소비재 부문에서라도 실험적으로 시행하고 결과를 보아가며 그 대상 영역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북한경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 어려움을 감안해 볼 때, 북한의 정책변화가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남북한간의 경제협력이 필수적이다. 남한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세계시장 진출 경험과 자본, 그리고 기술을 가지고 있다. 관계 개선을 통한 남북한간 협력사업의 확대는 북한경제의 발전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새로운 경제질서 속에서 남한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다. 경제발전을 위한 북한의 정책 변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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