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혁 기자(bhsuh@tongilnews.com)


북한이 유럽의 서방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과의 관계개선에는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올초 이탈리아와의 국교수립을 필두로 유럽지역 국가들과 관계개선을 활발히 전개해 왔다. 특히, 지난 6월 평양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개선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쇄신한 것이 유럽국가들의 대북 관계개선 및 정상화 논의를 촉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북한 외무상은 지난 9월 하순, 유럽 주요국가들의 외무장관과 "유럽동맹위원회 대외관계담당위원에게 외교관계를 설정할 것을 공식 제기하는 편지"를 보냈다. 북한 외무상이 이 서신을 보낸 유럽국가들에는 벨기에, 프랑스, 독일, 그리스,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영국, 독일, 네덜란드가 북한과 관계개선 용의를 표명하였으며, 지난 11월 초에는 자크 상테르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수석대표로 한 유럽의회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하여 관계 개선 및 경제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는 일본측의 소극적인 태도를 들어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사실 북-일간의 수교협상은 유럽 국가들의 대북 관계개선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1980년대 말 시작된 북-일 수교교섭은 지난 11월초까지 11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수교에 앞선 양국간 현안에 대한 견해 차이로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조적인 상황과 관련, 북한당국과 관영언론은 일본의 경우 과거 식민통치에 대해 공식 사죄와 보상을 하지 않고 있는 반면, 유럽 국가들의 대북 접근을 양국간 관계 발전은 물론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노동신문>은 11일자 필명기사에서 일본 외상이 최근 "유럽동맹 안보담당 고위대표와의 회담에서 `핵 및 미싸일문제`와 `랍치문제`를 꺼들며 우리나라와 외교관계를 수립하려는 유럽동맹성원국들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어 보려고 획책하였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북한은 일본의 이같은 처사를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이루어 보려는 비렬한 행위"라고 규정하고, 유럽 국가와 북한간 관계개선에 대한 방해 중단을 촉구하였다. 또한 <노동신문>은 일본은 유럽연합 국가와 북한간의 관계개선은 "누가 끼여들어 간참(간섭)할 권리도 없으며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못박고, 일본 당국에 "기본문제 처리"를 촉구하였다.

이와 같이, 북한은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은 상호 자주성에 기초한 호혜적인 것인 반면, 일본의 대북정책은 내정간섭적이고 비호혜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과거청산에 적극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관계개선을 추진하는 일본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자세에서 선을 긋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일본은 지난 11월초 북경 수교협상 이후 과거 식민통치에 대해 공식사과 문서를 북한에 전달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은 일본에 대한 과거청산을 지렛대로 해서, 보상형식으로 대규모 현금 유입을 일본으로부터 추구하고 있어, 이 대목에서 수교협상이 순조로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미국 대선의 후유증이 길어짐에 따라 북한이 대일 수교협상에 다소 적극적인 태도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제12차 수교협상을 빠르면 올 연말에 재개할 의향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자주성은 대외정책의 제1원칙이자 대외협상에서 가장 큰 협상 자산으로 이용되고 있어, 일본이 이를 얼마나 세워주면서 협상에 임하는가가 한반도 정세변화에 뒤쳐진 일본의 향후 외교적 입지를 가늠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