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령(경희여자고등학교 교사)


"국경일인 오늘 태극기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월드컵 기간 나타났던 뜨거운 태극기 사랑이 국경일에는 부족했습니다. …… 월드컵 때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 손에손에 펄럭이던 태극기는 시내에서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공공기관에서 내건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상점이 태극기를 달지 않은 것입니다. 월드컵을 계기로 국민들에게 한층 가까워진 태극기가 정작 주인공이어야 할 날에는 외면당했습니다."

지난 7월 17일 모 방송사가 보도한 뉴스 내용이다. 제헌절을 맞이하여 아파트 전체 가구의 10%만이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을 본 기자의 태극기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놀라운 관심이 돋보이는 보도였다.

맞다. 불과 며칠전 월드컵 기간동안 전 국토를 휩쓸던 태극기 물결은 어디로 갔을까? `민족성`을 운운하며 항상(?) 우리 민족을 걱정하시는 인사들의 주장처럼 `냄비 근성` 때문에 태극기에 대한 그 뜨겁던 사랑이 갑자기 식었을까? 그러나 아무리 바닥이 얇아 그냥 식는 냄비라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식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들이 7월 17일이 무슨 날이었는지를 모르고 지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모두 그 날이 제헌절이고 국경일임을 잘 알고 있다. 제헌절은 1948년 7월 17일 대한 민국의 통치체제의 기초를 정한 헌법을 공포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가 정한` 국경일(國慶日)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매년 숨막힐 정도로 엄숙한 식장에서 정부가 주관하는 기념식을 늘상 아주 멀리 TV에서 지켜보았고, 재탕 삼탕의 특집 외화 보너스에 감사하며 방바닥에 늘어져 지냈던 것 아닌가?

지난 달 우리가 태극기를 휘두르고 거리를 누볐던 것은 우리의 행사였고, 우리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배제되어 어떤 의도로 어떤 과정을 거쳐 제정되고 개정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제헌절에 갑자기 우리더러 주인이 되어 기뻐하라니 도대체 내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모름지기 잔치는 그 참가자들이 주인이 되어 시작되고 진행되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축제는 참가자들의 일상의 일시적 일탈이고, 그 일탈을 통해 현실을 뛰어넘는 미래의 꿈과 희망을 담는 것이다. 제헌절이 우리의 잔치가 되어 태극기를 휘날리게 하려면 헌법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만 한다. 그 날 뉴스를 보도한 기자도 빈 게양대를 탓하지 말고, 제헌절을 우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옳았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남북한이 모두 통일의 염원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요즘.

여전히 우리 모두의 통일을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일파만의 입지를 우선하는 통일을 주장하는 이들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다. 남아도는 쌀을 가축의 사료로 먹일지언정 북한 동포에게는 못 주겠다는 사람, 퍼주기식 대북정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사람, 햇볕정책이 한계에 봉착했다며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사람.

이들이 주장하는 통일은 안 된다.

우리는 통일된 그 날에 온 민족이 거리에 어깨동무를 하고 목이 터지도록 소리치며 잔치를 즐기고 싶지, 높은 분들끼리 엄숙한 식장에서 진행하는 `통일절` 행사를 또 다시 밖에서 지켜볼 수만 없기 때문이다.

남북은 오는 8월 15일 서울에서 민족공동행사 `8·15 민족통일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북쪽 대표단이 14일 남북 직항로를 통해 서울에 도착하여 15일과 16일 민족통일대회를 함께 치르고 3박 4일 동안 머문 뒤 17일 돌아갈 예정이라 한다. 비록 서해교전 등 걸림돌도 많았지만, 그리고 집요하게 우리들의 잔치에 딴지 거는 이들도 많지만 이번 대회를 우리 모두의 잔치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젠 월드컵이 아닌 통일잔치로 우리 모두 거리의 축제를 즐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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