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이 남측에 대해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하고 있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 공연
을 두 번씩이나 연장한 것이다. 먼저, 북측은 지난 4월29부터 6월29일까지 두 달간 공연을
통해 남측을 `넌지시` 불렀다. 그러나 남측은 오월 한 달간은 북측의 진의를 파악하느라 그
리고 유월 한 달간은 월드컵 축구를 치르느라 화답하지 못했다. 북측은 6월말에 아리랑 공
연을 7월15일까지 보름간 연장한다고 발표했는데, 6월29일 서해교전 사태로 말미암아 남측
은 또 어떠한 답을 줄 수 없었다. 북측은 며칠전 두 번째로 아리랑 공연을 연장한다고 발표
했다.

그럼 북측은 왜 두 차례나 이례적으로 `아리랑` 공연을 연장한 것일까. 외화벌이 때문에? 이
는 이번 서해교전에서 북측의 선제공격을 기정사실화하고 그 선제공격이 1999년 연평해전에
서의 패배를 보복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만큼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 `아리랑을 꼭 보고
싶어하는 우리(북측) 인민과 세계 인민들을 위해`? 이는 북측의 첫 번째 공식 입장이기도 하
다. 반은 맞지만 온전히 맞지는 않다. 답은 남측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과
연 그런가?

북측은 남측을 함께 `하나의 민족`으로 생각한다. 또한 북측은 남측을 통일의 파트너로 생각
한다. 따라서 `민족과 통일`과 관련된 문제는 뭐든지 남측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북측
은 `조선민족을 아리랑민족`으로 부르고 있다. 그리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5천
년 조선민족의 역사에 거대한 역점을 찍는 역사적, 정치적, 예술적 사변이며 통일강성대국에
로 나아가는 민족의 앞길에 획기적인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는` 공연이다. 그러니 자나깨나
`민족과 통일`만을 생각하는 북측이 `아리랑`을 남측에 보여주고 싶지 않겠는가? 잘하는 것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북측은 `아리랑`을 통해 남측에 뭘 전달하려는 것일까? 첫째 `통일의지`를 밝히려는
것이고, 둘째 `체제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외화벌이나 `세계 인민들을 위해` 등등은
부수적인 것들일 뿐이다. 북측은 남측에 진심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민족과 통일`을 노래하
는 `아리랑`을 통해 `통일의지와 체제 우월성`을 뽐내고 싶은 것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
니다. 따라서 북측의 진심을 남측의 관람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그 다음 문제다. 기대 이
하일 수도 있고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북측으로서는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민
족적 진실`을 같은 동포에게 보이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 혹자는 남측의 월드컵과 북측의 아리랑을 놓고 교차방문 등을 생각했으나 이는 잘못된
발상이다. 북측은 적어도 `상호`방문은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월
드컵은 월드컵이고 아리랑은 아리랑이다. 국제적 차원이기는 하지만 한 때의 일인 월드컵을
민족적 과제인 통일문제를 형상화한 아리랑과 견줄 수는 없다.

이렇게 생각하자. 월드컵과 아리랑, 두 문제가 엉키기에 북측은 처음에는 `원칙상` 남측에 아
리랑 초청을 하지 못했다. 그 다음에 첫 번째 연장하면서는 `체면상` 공식적인 초대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두 번씩이나 연장을 하면서 또 남측을 부르고 있다. 이번에는 `삼고초
려`다. 삼고초려는 상대편이 헤아려야 할 문제다. 삼고초려를 외면하는 것은 동양인의 예의
나 한민족의 정서에 어긋난다. 남측은 어떻게 할 것인가. `북측의 공식적인 초청` 운운 이전
에 `넌지시` 한 삼고초려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이 단순한 한민족의 구애화법(求愛話法)
을 남측이 모르거나 외면해서야 되겠는가? 남측 당국의 조속한 `아리랑` 관람 승인을 촉구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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