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학문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지난 '톺아보기 (8)'에서 북이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전민과학기술인재화의 의미와 배경, 초중등 과학기술 교육 강화 조치에 대해 살펴보았다. 북은 고등교육과정, 즉 대학의 과학기술 교육과 연구 수준을 높이려는 시도도 계속해왔는데, 종합대학화·학술일원화와 연구형 대학 건설 시도가 대표적이다. 이 중 종합대학화·학술일원화에 대해서는 지난 톺아보기 7에서 확인했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연구형 대학 건설 움직임 대해 다룬다. / 필자 주

연구형 대학 건설은 주요 대학 공통의 과제

2022년 9월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국가 교육사업의 질적 수준이 세계적 추세와 시대적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와 함께 김책공업종합대학을 비롯한 "기술대학"들의 교육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9월 13일 자 로동신문에서 김책공대 부총장 전순정은 대학의 교육역량을 강화하고 연구형 대학 건설에 박차를 가하며 교육-연구-생산의 일체화를 실현하여 교육 수준을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2021년 6월 23일 자 로동신문에는 김일성종합대학 부총장 정만호의 글이 실렸다. 이 글에서 정 부총장은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분야를 다 갖춘 종합적인 성격의 연구형 대학 건설"이 로동당 제8차 대회(2021.1.)에서 제시된 자신들의 과제라고 밝혔다. 즉, 북의 양대 대학이 모두 연구형 대학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연구형 대학 = 연구 중심 대학

북에서는 연구형 대학을 '교육과 연구를 밀접하게 결합해서 창조형 인재를 육성하고 첨단이론과 기술을 창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대학'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말하는 '연구 중심 대학'과 다르지 않다. 단순히 기존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연구를 통해서 새로운 지식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대학, 그리고 이를 위해 학부보다 대학원 중심의 교육을 하는 대학이다. 

로동신문을 기준으로 북에서 연구형 대학이라는 말이 등장한 시점은 2017년경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2017년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책공대 홍서헌 총장이 '교육을 계속 개선하여 창조형 인재들을 더 많이 양성하고, 박사원생(대학원생)들을 국가 중점 연구과제 수행에 적극 참여시켜 김책공대를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형 대학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주요 대학을 세계 일류급 대학으로'

하지만 북은 그보다 몇 년 전부터 주요 대학들을 "세계 일류급 대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그 구체적인 과제로 '교육과 연구의 밀접한 결합', '창조형 인재 양성', '과학이론과 기술 창조 중심' 등을 강조해왔다. 북이 말하는 연구형 대학의 특징과 일치한다. 2017년 9월 27일 자 논설에서 당시 김일성종합대학 1부총장 리국철도 "세계 일류급 대학은 연구형 대학"이라고 밝혔다. 

북은 현시대가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종합적인 국력을 좌우하는 지식경제 시대이기 때문에, 대학들도 적극적으로 새로운 과학기술 지식을 만들고 경제를 포함한 국가 발전에 더욱 많이 기여해야 한다고 본다. 교육과 생산의 밀접한 결합, 연구형 대학의 증가는 세계적인 교육발전 추세이기도 하기 때문에, 북의 대학들도 이런 흐름에 부합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인재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북의 선전화 (조선중앙통신, 2019.1.24.)
인재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북의 선전화 (조선중앙통신, 2019.1.24.)

북은 연구개발 역량이 가장 높은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대, 리과대학을 필두로 한 주요 대학들을 연구형 대학으로 전환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대학들을 먼저 세계적 수준의 연구형 대학으로 만들고, 이곳들을 본보기로 삼아서 다른 대학들을 발전시키겠다는 의도이다. 

그간 북은 연구형 대학을 만들기 위해 전공·학과 개편, 대학원 교육 강화, 연구소 신설, 첨단제품개발기지 건설, 대외 과학기술 교류협력 확대 등의 조치를 취해왔다. 이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전공, 학과 개편 

북은 대학들이 세계적인 과학기술 발전 추세에 맞게 교육과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IT, 나노, BT, 신소재, 우주기술과 같은 첨단 분야와 기초과학을 중심으로 학과들을 통합, 신설, 확대해왔다. 예를 들어 2019년에는 정보보안·나노 재료·로봇공학 관련 학과들을 신설했고, 2020년에는 인공지능·빅데이터 관련 학과와 강좌를 확대했다고 한다. 그리고 경계과학(융합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연과학, 사회과학, 공학 등이 결합된 학과들도 개설했다고 알려졌다. 

북 대학생들의 로봇 축구 (조선의오늘, 2019.10.2)
북 대학생들의 로봇 축구 (조선의오늘, 2019.10.2)

대학원 교육 강화

북은 고급 연구인력을 더 많이 양성하기 위해서 우리의 대학원에 해당하는 박사원 정원을 늘리고, 학부를 졸업한 뒤 바로 박사원에 진학해서 계속 공부하는 연속교육체계를 확대했다. 과거 북에서는 대학을 졸업한 뒤 바로 박사원에 진학하는 경우는 극소수였고, 대신 직장이나 연구소에 배치되어 근무하다가 좋은 성과를 내면 논문으로 발전시켜서 학위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연구 역량이 높은 젊은 시절에 연구에 매진하지 못하고 학위도 늦게 받았다.

북은 연속교육체계를 확대함으로써 젊은 나이에 연구에 더욱 몰입하고 학위를 빨리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체계에서 교육받는 청년 과학자들에 대한 기대감을 자주 드러내고 있다. 

강좌를 연구소/연구실로 전환

북의 대학에서 강좌는 학과목 하나 또는 연관 과목 몇 개를 합친 일종의 세부 전공, 작은 학과이다. 강좌는 명목상 교육과 연구를 병행한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교육에 더 중점을 두어왔다고 한다. 

북은 주요 대학들을 연구형 대학으로 전환하기 위해 강좌를 연구소나 연구실로 개편하고 연구의 비중을 더 높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이다. 이곳은 작게 쪼개져 있던 강좌와 연구실들을 통합해서 이론물리연구소, 빛전자연구소, 응축상태물리연구소를 만들었고, 각 연구소 소속 교원과 연구사들 모두가 교육과 연구를 병행하게 했다.

이를 통해 최신 과학기술 성과들이 교육 내용에 반영될 수 있게 됐고, 학부생들과 박사원생들이 연구개발에 참여할 기회가 확대되었으며, 그만큼 연구소의 연구 역량도 강화되었다고 한다. 
(빛전자연구소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 실습 장비 (로동신문, 2021.5.17.)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 실습 장비 (로동신문, 2021.5.17.)

첨단제품개발기지 건설

북이 연구형 대학을 건설하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경제 발전에서 대학의 역할, 나아가 과학기술의 비중을 높이기 위함이다. 즉, 연구형 대학의 기본 특징인 교육과 연구의 밀접한 결합은 무엇보다 교수, 연구사, 학부생, 박사원생 등 대학의 모든 구성원이 연구개발에 참여해서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북은 교육-연구-생산의 일체화를 반복적으로 강조해왔다.

이를 위해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대는 2017년부터 각각 첨단기술개발원과 미래과학기술원의 새 건물을 건설하기 시작해서 2019년에 준공했다. 이곳들은 모두 최신 설비와 연구 기자재를 갖추고 그간 교내에 분산되어 있던 산하 연구소들을 결집해서 교육-연구-생산의 일체화를 집중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단위들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첨단기술개발원(좌)과 김책공대 미래과학기술원(우) (로동신문, 2019.11.29, 6.25)
김일성종합대학 첨단기술개발원(좌)과 김책공대 미래과학기술원(우) (로동신문, 2019.11.29, 6.25)

아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첨단기술개발원과 미래과학기술원은 산하에 다수의 응용 연구소를 두고 다양한 연구개발을 수행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교수, 연구사뿐 아니라 박사원생, 학부생까지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첨단기술개발원과 미래과학기술원 산하 연구소 현황
첨단기술개발원과 미래과학기술원 산하 연구소 현황
김일성종합대학 첨단기술개발원이 개발한 이산화염소발생기(조선의 오늘, 2020.5.7). 이산화염소는 코로나 19를 비롯한 각종 미생물 살균 소독수의 원료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첨단기술개발원이 개발한 이산화염소발생기(조선의 오늘, 2020.5.7). 이산화염소는 코로나 19를 비롯한 각종 미생물 살균 소독수의 원료이다.

 
대외 과학기술 교류협력 확대 시도

북은 주요 대학들이 세계적 수준의 연구형 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국제학술교류의 거점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과학기술 교류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예를 들어 김일성종합대학은 2012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8년 8월 또는 9월에 국제학술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들에는 중국, 러시아, 몽골, 베트남 등은 물론이고 독일, 영국, 프랑스 학자들도 참가했다고 알려졌다. 김일성종합대학 창립 70주년이었던 2016년에는 5월에도 국제행사를 개최했는데, 노벨상 수상자 세 명이 참가했다. 

김일성종합대학 창립 70주년 기념 노벨상 수상 과학자 초청 강연 (elufatv, 2016.10.27.)
김일성종합대학 창립 70주년 기념 노벨상 수상 과학자 초청 강연 (elufatv, 2016.10.27.)

북은 2011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과 시작한 "캐나다-조선 지식교류협력 프로그램" (Canada-DPRK Knowledge Partnership Program, KPP)도 지속했다. 이 프로그램 초기에는 경영, 경제 분야 교수가 해마다 6명씩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에서 6개월 동안 연수했다. 그러다가 2018년 경제 3명, 산림과학 분야 3명, 2019년에는 환경학 두 명, 산림학 네 명 등 이공계 분야로도 확대되었다. 2018년 10월에는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대를 포함한 6개 대학의 총장 또는 부총장이 4박 5일 동안 브리티시컬럼비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을 방문한 북 대학의 총장, 부총장들 (jtbc, 2018.11.8.)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을 방문한 북 대학의 총장, 부총장들 (jtbc, 2018.11.8.)

북은 외국에서 열리는 학술행사에도 학자들을 종종 파견해 왔다. 물론 최근으로 올수록 제재의 영향이 더 심해지고 코로나 19에 대응해 북이 자체 봉쇄를 취하면서 직접 대면 방식의 대외 교류는 거의 없다시피 한 상태이다. 

대신 북 학자들의 해외 논문 투고는 꾸준히 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직후 연간 30-40편에 불과했던 해외 발표 논문이 2019년에는 190편 가까이 늘어났다. 물론 이는 연간 수만 편 이상의 SCI급 논문이 나오는 남측과 비교하면 극히 적은 수이지만, 북의 과거와 비교하면 많이 높아진 수치이다. 지금까지 북의 해외 논문 발표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이 절반, 김책공대가 1/4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최근까지 파악된 추세를 보면 앞으로도 북 학자들의 해외 논문 발표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북의 대학들은 소속 교수들의 해외 발표 논문을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예를 들어 김책공대 홈페이지에는 소속 교수들의 SCI 논문을 소개하는 페이지가 있는데, 논문 원문을 바로 볼 수 있도록 링크까지 만들었다. 

김책공대 교수들의 해외 발표 논문을 소개하는 페이지(위). 박지민 1부총장의 논문 제목을 클릭하면 논문 원문(아래)으로 연결된다. 
김책공대 교수들의 해외 발표 논문을 소개하는 페이지(위). 박지민 1부총장의 논문 제목을 클릭하면 논문 원문(아래)으로 연결된다. 

정면돌파전 결정 이후 더욱 강조

북은 2019년 12월 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고 대북제재를 자력으로 극복하겠다는 이른바 "정면돌파전"을 결정하였다. 이때 북은 대학들이 교육과 연구뿐 아니라 사회경제발전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며, 이를 수행하기 위해 연구형 대학, 일류급 대학 건설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2021년 1월 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도 연구형 대학 건설이 주요 대학들의 핵심 과제로 제시되었다. 이 대회에서 북은 "과학기술 발전이 핵심 과제이자 최선의 방략"이라고 하면서 과학기술에 기초한 자력갱생 기조를 강화했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학들이 교육의 질을 대폭 높여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들을 더욱 많이 배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의 연구형 대학 건설 움직임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박사.

대학에서 미생물학, 대학원에서 북한 과학사를 전공했고,

북의 과학기술에 기초한 경제발전 전략과 남북 과학기술 교류협력 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북한의 '과학기술 강국' 구상과 남북 과학기술 교류협력」(2018) 등이 있고,

공저로 『김정은 시대 북한의 선택―10년의 변화 10개의 키워드』(블루앤노트, 2022), 『김정은의 전략과 북한』(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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