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太白山脈)의 숨결 ⑤

혁명(革命) 한 해가 지났는데...

 

생존경쟁(生存競爭)에 지친 「맹수(猛獸)들」

마법(魔法)의 피리소리에 괴로운 인생(人生)들만 모여

갱구(坑口)하나 뚫리면 마을도 하나

 

광산촌 하늘마다 늦가을 낙엽처럼 지전뭉치가 마구 흩날려든다는 허풍스런 소문은 이 고장에 비단 거지 떼만을 불러들인 것은 아니었다. 「돈이 쏟아진다!」 「땅속에서 노다지가 터져 나온다!」 누구의 입으로부터인지 흘러 퍼진 이 말들은 강원도 땅 깊은 두멧골에서부터 이웃 고을은 물론 멀리 서울과 남해의 여러 지방 농어촌에까지 「마법(魔法)의 피리」를 울려 퍼졌다. 

조상대대 땅을 파먹는 것만을 유일한 천업(天業)으로 알고 있던 수많은 농민의 아들들이 「피리소리」를 따라 괴나리봇짐을 지고 이곳까지 왔다.

태풍 「사라」호와 「카르멘」호 등 정열에 찬 남국 여성의 이름을 가진 이 태풍들이 그들의 토막집 기둥뿌리와 농토의 밑바닥부터 송두리째 엎어놓았을 때, 그들은 조상의 피와 땀방울이 거름이 되어 해마다 오곡을 길러 주던 그 정들인 땅이라도 차라리 원수 같게만 느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농군의 대열과 더불어 사업에 실패한 도시의 소시민, 사랑에 절망한 낭만의 젊은이, 번거로운 시의 온갖 잡음들을 버리고 대자연의 가슴팍을 찾은 「인테리」 그리고 눈에 불이 이는 생존경쟁의 대열에서 지쳐 떨어진 수많은 사내들이 그들의 처자식을 거느리고 황금의 서기(瑞氣)가 하늘 가득히 서렸다는 이 광산촌들을 찾아 온 것이다.

그러기에 광부사택 가까운 소주나 막걸리 도가에 가면 거기 모이는 광부들 때문에 그대로 십三도 사투리의 전람회장이며 알록달록한 「경력」의 「쇼윈도우」같다. 

전라도 지주의 외아들이 있는가 하면 상해(上海) 동경(東京) 바닥은 고사하고 남양군도(南洋群島)에 까지 그 화려한 낭만의 불꽃을 살라본 제 일류 오입장이들도 있다. 경상도 포목전 주인도, 서울의 「어깨」 형님도, 인천(仁川)상륙작전에 참가했던 해병장교도, 백마고지(白馬高地) 작전에서 훈장을 탄 육군대위도 있다. 그 밖에도 남대문시장의 백화상이 무색할 만큼 요란스런 「과거」들을 가진 사람으로 가득 찼다.

그들은 모두 생존경쟁의 피 밴 싸움터에서 물고 할퀴며 아웅 거리는 싸움에 녹초가 되어 상처입은 맹수처럼 조용히 드러누울 밀림 속을 찾아든 곳이 바로 탄광지대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탄광에서 벌어지는 어지간한 「사건」들은 그들에게 그다지 큰 자극을 주지 못한다. 괴로운 일도 쓰라린 일도 모두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니라」고 이미 체험한 그들의 「인생」을 거울삼아 가볍게 판단해 버리는 광부들이다. 

광부들의 이러한 기질은 곧잘 「놀고 보자 먹고 보자」판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낌새를 맡는데 귀신같은 장사치들이 「돈 잘나오고 돈 쓰자는 사람들이 사는」이 탄광촌들을 놓칠 리 없다. 

강원도 땅 깊숙이 자리 잡힌 탄광촌들이 제법 촌티를 벗고 규모 있는 시가지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장사치들의 이처럼 잽싼 계산에서 였다. 하나의 이름 모를 산허리에 한 개의 구멍(坑口)이 뚫릴 때마다 그 구멍을 중심으로 한 개의 시가지가 생겼다.

이렇게 생긴 시가지들은 급속히 모든 유행을 이 산골에 옮겨 오려한다. 

따라서 극도의 소비경쟁이 벌어진다. 삼척군 장성읍(長省邑)1) 의 경우만 해도 1백4십8개의 음식점이 있다. 아홉 개의 다방과 3십2개의 미장원, 2십9개의 여관, 하숙 등이 있고, 심지어는 「?」까지도 이 조그마한 읍에 한 개가 있다. 삼척군내의 모든 접객업소는 3백2십4개 - 이 고장의 풍성거리는 모습을 여기서도 본다. (계속)


1)  현재는 태백시 장성동.

 

김재형(金載亨) 기(記)


(사진 = 강원도 일대의 각 탄광에서 캐어낸 석탄을 실어 나르는 묵호항(墨湖港_. 이 항구는 두메골짜기 구석구석에 산재해 있는 탄광촌에 생명(生命)과 인정(人情)과 소식(消息)을 주고받는 관문이기도 하다)

태백산맥(太白山脈)의 숨결 ⑤

태백산맥(太白山脈)의 숨결 ⑤ [민족일보 이미지]
태백산맥(太白山脈)의 숨결 ⑤ [민족일보 이미지]

[민족일보] 1961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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