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함남 북청 출신의 강광 화백과 제주 구좌 출신의 황태년 화백은 남과 북의 비극적인 현대사가 서로 바꾼 미술가라는 생각이 든다.

1.

강광(姜光, 1940~2022) 화백은 1940년 함남 북청에서 태어났다. 이준 열사의 고향이다.

강광 화백은 1965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를 졸업한 후에 입대하여 1년 반 동안 월남전에 참전했다. 이후 1969년부터 1982년까지 제주 오현중‧고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며 고영훈‧강요배‧백광익‧강승희 등 제주지역 작가들을 화단으로 이끌었고, 유신시절인 1977년에는 제주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 ‘관점동인’(觀點同人)을 결성하여 제주의 미술계를 이끌었다. 1982년 군부정권이 김경인 임옥상 신경호 홍성담과 함께 강광 화백을 ‘불온 작가’로 낙인찍고 작품들을 압수했다.

강 화백은 한국전쟁과 월남전, 민주화운동 등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을 자연이라는 소재로 화폭에 담았다. 강광 화백은 1982년 인천대 미술학과 교수로 임용되면서 제주를 떠났고 인천대 부총장과 인천민예총 지회장,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강광 화백은 민중미술의 제1세대이다.

2.

황태년(黃泰年, 1927~1996) 화백은 1927년 3월 15일, 제주도 구좌면 김녕리에서 태어났디.

황태년 화백은 1935년 제주도 김녕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광복직후 함북 청진으로 가서 1945년 10월부터 청진예미사(간판점), 청진제강소, 함경북도미술제작소에서 직관원, 제작원으로 1954년까지 미술 활동을 하였다. 당시 그는 미술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인정받아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한 후, 1955년에 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청진에서 미술가로서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였다. 1963년부터는 조선미술가동맹 개성시위원장으로 있었고, 1970년대 이후부터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미술작품국가심의위원회 개성시 책임심의원으로 활동하였다.

『선죽교와 숭양서원』, 황태년, 1994년, 유화. [사진 제공 - 이양재]
『선죽교와 숭양서원』, 황태년, 1994년, 유화. [사진 제공 - 이양재]
『풍경』, 황태년, 1990년, 유화. [사진 제공 - 이양재]
『풍경』, 황태년, 1990년, 유화. [사진 제공 - 이양재]

황태년 화백은 주제화 풍경화를 많이 그렸는데, 1991년에 근 200여 점의 작품을 가지고 조선미술박물관 소전람실에서 개인전람회를 가졌다. 1991년 4월 30일부터 7월 28일까지는 조선미술박물관에서 개인 미술전람회를 개최하였는데, 3만 2,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는 제주 출신의 유일한 재북화가이며, 공훈예술가의 칭호를 받았다. 북에서 태어난 그의 아들 황호도 미술가이다.

3.

함남 북청 출신인 강광 화벡은 26세에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후, 30세 때부터 미술교사로 미래 제주의 미술가들을 길러냈고, 제주 구좌 출신의 황태년은 28세에 평양미대를 졸업한 후, 36세 때부터 개성의 미술가동맹을 이끌어 갔다.

황태년 화백의 작품과 강광 화백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전시하고 싶어, 5년여 전에 당시 제주도립미술관장 김 아무개 씨에게 제안하니 완전히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그러나 나는 황태년 화백의 작품을 수소문하니, 북경 C컬렉션에 2점, 서울 모 씨에게 3점, 서울 모 개인미술관에도 여러 점 있는 것을 확인하였고, 단동의 모 화랑이 10여 점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북경 C컬렉션의 소장품은 대여해 왔고, 단동 모 화랑의 것 가운데 보존 상태가 양호한 작품 6점은 매입하였다.

현재 내게는 대여품을 포함하여 10점 정도가 있다. 모두 개성을 그린 픙경화이지만 이 10점과 개인 소장의 다른 작품 10점을 더 확보한 후에 강광 화백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풍경화 20점을 대여받아 두 분의 기획전을 추진해 보고 싶다.

4.

나는 제주문화예술재단이나 제주도립미술관이 주도하여, 제주에서 젊은 날을 보내며 제주의 미술계를 키워온 강광 화백과, 개성에서 젊은 날을 보내며 개성의 미술계를 지켜온 황태년 화백의 작품을 확보하여, 그들을 기리는 작은 미술관이 제주에 설립되었으면 한다. 흥미로운 것은 강광 화백은 가나다순으로 거의 앞에 있는 성씨이고, 황태년 화백은 가나다순으로 거의 끝에 있는 성씨이다.

이러한 두 분을 예술가로 기리는 기념관을 제주도의 어느 한 자리에 설치한다면 그것은 제주 미술의 확장성을 의미한다. 제주 출신의 현역 미술가들이 스스로 자신의 개인미술관이 설립되는데 촉매제 역할도 할 것이다.

제주를 문화로 채우려면 여러 확장적인 정책 조치와 작가나 화가 등등의 예술가들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나는 제주에 그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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