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 지모고성군란호텔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한중관계에서 마땅히 견지해야 할 5가지 사항을 제시했고, 박진 장관은 북한이 대화를 선택하도록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당부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이 부장은 올해가 한중수교 30주년이라며 공자의 ‘삼십이립’(三十而立)을 인용한 뒤 “중한 관계는 시련과 역경을 겪었고 더욱 성숙하고 자주적이며 안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왕 부장은 "앞으로 30년을 맞이하여 쌍방이 유익한 경험을 종합하고 양국 관계의 발전과 안정의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한중관계에서 마땅히 견지해야 할 5가지 사항을 제시했다.

△독립자주를 견지해야 하고 외부 간섭을 받지 말아야 한다. △좋은 이웃과 우호를 견지하고 서로의 주요 관심사를 돌보아야 한다. △개방과 윈윈 결과를 견지하고 안정적이고 원활한 생산 및 공급망을 유지해야 한다. △평등과 존중, 서로의 내정 불간섭을 견지해야 한다. △다자주의를 견지하고 유엔 헌장 목적과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왕 부장은 “이 다섯 가지 ‘해야 할 것’은 두 민족의 의지의 가장 큰 공약수이자 시대적 흐름의 필연적 요구사항”이라고 말하고 “중국 측은 한국 측과 협력하여 쌍방이 결정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입장을 견지하고 중한 관계의 건전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추진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한미동맹에 치우친 한국에 대해 자주독립을 강조한 것이나,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재편 흐름을 경계하는 내용, 가치 외교를 앞세운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 제기에 대한 내정불간섭 등 중국측의 요구사항을 내포한 5가지 항목을 제시한 셈이다.

외교부의 10일자 보도자료에 따르면 9일 칭다오에서 한중 외교장관은 회담 및 만찬을 갖고, △한중 양자관계, △한반도 및 지역‧국제 문제 등 상호관심사에 대해 논의했다.

양 장관은 양국이 수교 30주년을 다채롭고 뜻 깊게 기념하자는 데 공감 하고, 작년에 출범하였던 ‘한중관계 미래발전위원회’의 경험과 성과를 바탕으로 연례 1.5 트랙의 양측 전문가간 소통 플랫폼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박 장관은 ‘한중 미래발전을 위한 공동행동계획’(이하 계획)을 제안했고, 양 장관은 양측 간 후속 협의와 검토를 거쳐 이를 추진하기로 했다.

‘계획’은 △고위급 전략적 소통 및 현안 관리, △공급망 등 실질협력, △문화인적 교류 활성화 노력, △지역 및 글로벌 평화ㆍ번영 기여 등으로 구성돼 있고, 외교안보대화(2+2), 공급망대화, 해양협력대화, 탄소중립 협력 등이 새롭게 포함됐다.

박 장관은 상호 편리한 시기에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기대한다고 말하고 연내 왕 부장의 방한을 초청했다. 이에 왕 부장은 공감을 표하고 긴밀히 조율해 나가자고 화답했다.

또한 양 장관은 차관급 전략대화를 하반기 조속한 시일 내 서울에서 대면으로 개최하기로 하고, 외교·국방 차관급 대화(2+2)도 연내 추진키로 하는 등 양국 간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전략적 소통을 심화시켜 나가기로 했다.

외교부는 “양 장관은 한중간 촘촘히 연결된 공급망은 양 국민의 일상생활과 기업의 활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공급망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소통과 대화를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전했다.

박 장관은 영화‧방송‧게임‧음악 등 분야 교류를 대폭 확대해 나가자고 했고, 왕 부장은 인적‧문화적 교류 강화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노력해 나가자고 했다. 중국은 이른바 ‘한한령’을 유지하고 있어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음악이나 게임 등의 유통이 제한된 상태이다.

박 장관은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에 나선다면 북한 경제와 주민들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포함 정치·경제·안보적 상응조치를 담은 비핵화 로드맵을 준비중이라고 언급하고 북한이 도발 대신 대화와 외교의 길을 선택하도록 중측이 ‘건설적 역할’을 해 줄 것을 당부했다.

박 장관은 북한이 끝내 도발을 감행할 경우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단합하여 단호하게 대응해야 함을 강조하고, 앞으로도 북핵 문제 관련 한중간 긴밀한 소통을 이어 나가자고 했고, 왕 부장은 중국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가능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북핵 외교에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은 통상적인 주문이지만 실제로 중국이 북한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박 장관은 한중 양국이 보편적 가치와 규범의 정신에 입각하여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 지역·글로벌 평화·번영을 위해 협력해 나가기를 바라며 급변하는 국제환경 속에서 새로운 협력을 모색해 나갈 필요성을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동맹에 치중하면서 견지하고 있는 이른바 ‘가치 외교’를 강조한 셈이며, 이는 중국에게 가치와 규범, 민주주의 면에서 서방의 기준을 요구하는 대중국 압박외교의 일환으로 읽히고 있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 들어 사드(THH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3불정책을 사실상 포기하는가 하면, 한미합동군사연습을 강화하고, 미국이 배후에서 주도하고 있는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에 앞장서는 등 한중 간 갈등은 심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코로나19로 인해 베이징을 피해 칭다오시에서 열린 이날 회담은 양측의 소수인원이 배석한 가운데 진행됐으며, 당초 예정된 1시간을 넘겨 1시간 40여 분 가량 진행됐고, 만찬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