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

흑막을 왜 무더두려는가

불란서 혁명시의 정열적인 계몽사상가 「곤드르세」는 감옥에서 스스로의 목숨 줄을 끊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다. 「나는 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에 의하여 심판과 위안을 받고자 한다.」라고. 이는 역사의 음지에서 의롭고 바른 일을 하다가 숨져간 분들과 그리고 지금도 어려운 환경속에서 빛을 찾고 보람을 느끼면서 애써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겐 필요하고도 알맞은 말임에 틀림없다. 

12년 전 철없는 청년장교 독재자의 한 고용병에 의하여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진 겨레의 거성. 백범 김구 선생의 영혼도 이제야 역사에 의하여 위안을 받아야하고 이 혁명지도자를 정치적 음모에 의해 장사 지내는데 한몫 낀 모든 무리들은 냉정한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죽음 있은 뒤까지도 선생을 욕되게 하려던 효창공원의 그 「부르도저」소리도 사라졌고 인민과 애국적 지도자들의 고통과 해골위에 끝없는 영화를 누렸던 폭군도 거꾸러지고 없는 오늘에야말로 여태까지 검은 「베일」에 싸여 온 백범 암살사건과 수없는 정치적 날조사건들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역사에 마저 거짓과 에누리가 있어선 안 되고 또 있을 수도 없는 법이다.

이상두(민족일보 논설위원)

 

선생의 죽음

거룩하게 하라

그는 민족의 횃불

정치적 암살음모의 진상을 밝혀

착한 이에게는 복을 ⋅ 악한이에겐 죄를 주라

 

뛰어난 「마키아벨리스트」요. 현실 정치가였던 이승만이가 집권 12년간에 저지른 가장 큰 죄악들 가운데의 하나는 유능한 정치지도자들을 암살⋅살해한 일이다.

질투의 여신 「헤라」의 심술과 악마의 마음을 가진 이승만은 「제우스」 신의 사랑을 독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의 보좌」를 길이 보전하기 위해서 독 묻은 화살을 정적의 가슴을 겨냥하여 쐈다.

그는 「요르단」 강물을 한숨에 들이마셨다는 괴물인 「비헤모스」같은 거대한 국가권력을 한손에 잡아 쥐고 다른 한손엔 모든 백성들의 생사여탈권을 쥐었다. 「반공」, 「방일」이라는 신화적인 소위 「국시」를 내걸고 그에게 충성을 맹서한 경찰과 검찰, 특무대와 테로단을 동원하여 가장 반동적인 「보나팔티즘」과 「메태르니히 체제」를 확립하여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대중과 지도자를 때려잡았다.

한국판 「메카시 선풍」앞에 공산당과 반역자와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어간 죄없는 백성과 정치인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승만의 이 만행은 이제 산천과 하늘이 증언하고 역사와 인민이 고발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인간 존중의 사상인데 민주주의를 하노라 하더니 이승만=자유당 천하에선 말 못할 정도의 「인간천시」와 「인간학대」가 있었다.

한포기의 화초나 한그루의 나무를 가꾸는 데도 수많은 정성과 비용이 들고 짧지 않는 세월이 걸리는데 식물아닌 한사람의 인간을 기르는데 있어선 더 말할 나위도 없으며 하물며 민족적인 지도자의 경우는 더욱 더한 것이 사실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제 구미에 안 맞는 어린 싹들로부터 자기 영토내에 뻗쳐 올듯하게 보이는 민족적 교목과 거목은 모조리 난벌하고야 말았다.

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 사람을 아낄 줄 모르는 생각,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귀중하게 느끼지 못하는 생각, 지도자를 소중히 여기고 받드는 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이 나쁜 사고야말로 이승만에게서 물려받은 슬픈 유산의 하나이며, 이 그릇된 생각이 나날이 흐름에 따라 우리들의 정신풍토에 뿌리박히고야 만 것이다.

겨레의 거목들의 벌채로 이 땅 정계는 불모지요. 황무지며, 이 지도자 빈곤 때문에 정국은 혼미하고 민중은 끝없는 불행속에서 갈길 몰라 방황하고 있다.

이승만의 죄! 정녕 천추에 길이 남음이 있으리라.

이승만의 「지도자 사냥」은 고 몽양 여운형씨 의 암살로 노골화되었고 백범의 살해로 정점에 달했으며, 죽산 조봉암의 교수로 마지막 장을 장식한 셈이다.

1949년 6월 26일 오후 1시 무지한 육군소위 안두희가 쏜 흉탄에 맞아 74세를 일기로 노투사 백범은 쓰러져 방랑과 투쟁과 눈물과 피로 점철되었던 그의 일생은 끝나고 품은 뜻 못 이룬 채 「단정」의 하늘 아래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날 경교장을 울리던 총성과 백범암살의 비보에 온겨레는 놀라움과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고 분노의 치를 떨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겨레의 설움과는 딴판으로 남몰래 득의에 찬 회심의 웃음 웃는 자들이 있었다. 

혁명투사는 민족주의지도자인 백범을 무엄하게도 거꾸러뜨리고서 정적제거의 계획된 대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쾌재를 부르며 끝없이 기뻐한 무리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망국노들은 자기들도 아무것도 모르는 듯 시치미를 떼었고, 백범암살은 마치 안두희의 우발적인 단독범행인 것처럼 백성의 눈을 속이려는 서투른 연극을 꾸몃다.

백범 암살의 최고지휘자 이승만은 「.... 김구씨를 살해한 동기에 관하여서는 공포하고 싶은데, 물론 반드시 공포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모든 사실을 일반앞에 공개해 놓는다는 것은 나의 생각으로는 그 생애를 조국독립에 바친 한국의 한 애국자에 대한 추억에 불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라고 하여 한 편으로는 가증하게도 그가 백범을 가장 위하고 있는 양하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주려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백범이 나라를 해치는 일을 하였으며 하기에 백범을 암살한 것은 애국적인 행위인 것 같은 느낌을 주려고 하였던 것이다.

최고 원흉이 이러하니 그 밑의 주졸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은 이틀 후인 28일 「이번 범행의 동기가 확실히 개인적 행위였고, 결코 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같은 날 외무장관 임병직은 「... 이런 일은 문명정도가 낮은 데서만 있을 수 있는 것으로서 국제적 불리를 초래한 것이나 국민된 우리로서는 각별한 주의를 해서 또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할 것이며, 다만 이 악한 일을 한 자가 부당한 법적 처단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라고 했다.

이는 애국자의 암살 책임을 낮은 문명에 전가시키고 또 열 번 죽여도 마땅할 범인을 극형에 처해지는 것을 반대하면서 지도자를 죽인 자를 옹호하는 망발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동년 7월 1일 전모 헌병사령관과 김태선 수도경찰청장은 백범 암살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것을 요구하는 국민들에게 공산당의 파괴행위와 비상시국 운운... 위협으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여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김구는 빨갱이다」 「남북협상자는 공산당 앞잡이다」라는 해괴한 삐라가 나붙고 8월 11일 대한청년단을 비롯한 16개의 정당 사회단체의 안두희 석방진정운동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한 평생 조국의 해방과 통일조국의 수립을 위해 목숨 바쳐 애써온 애국자는 역적으로 몰렸고, 애국자를 잡아 죽인 이승만도당들은 끝없는 호사와 영광을 독차지했고, 하수인 안두희는 애국청년처럼 되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이며, 역사에 대한 거역과 모욕이 이에 더할 수 있으랴 (계속)

논단/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

논단/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 [민족일보 이미지]
논단/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 [민족일보 이미지]

論壇


白凡 金九先生의 暗殺

黑幕을 왜 무더두려는가

佛蘭西 革命時의 情熱的인 啓蒙思想家 「곤드르세」는 監獄에서 스스로의 목숨 줄을 끊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다. 「나는 神에 의해서가 아니라 歷史에 의하여 審判과 慰安을 받고자 한다.」라고. 이는 歷史의 陰地에서 義롭고 바른 일을 하다가 숨져간 분들과 그리고 지금도 어려운 환경속에서 빛을 찾고 보람을 느끼면서 애써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겐 必要하고도 알맞은 말임에 틀림없다. 

十二年前 철없는 靑年將校 獨裁者의 한 雇傭兵에 의하여 가슴에 銃을 맞고 쓰러진 겨레의 巨星. 白凡 金九先生의 靈魂도 이제야 歷史에 의하여 慰安을 받아야하고 이 革命指導者를 政治的 陰謀에 의해 葬事 지내는데 한몫 낀 모든 무리들은 冷靜한 歷史의 審判을 받아야 한다. 

죽음 있은 뒤까지도 先生을 辱되게 하려던 孝昌公園의 그 「부르도저」소리도 사라졌고 人民과 愛國的 指導者들의 苦痛과 骸骨위에 끝없는 榮華를 누렸던 暴君도 거꾸러지고 없는 오늘에야말로 여태까지 검은 「베일」에 싸여 온 白凡 暗殺事件과 數없는 政治的 捏造事件들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歷史에 마저 거짓과 에누리가 있어선 안 되고 또 있을 수도 없는 법이다.

李相斗 

 

先生의 죽음

거룩하게 하라

그는 民族의 횃불

政治的 暗殺陰謀의 眞想을 밝혀

착한 이에게는 福을 ⋅ 惡한이에겐 罪를 주라

 

뛰어난 「마키아벨리스트」요. 現實 政治家였던 李承晩이가 執權 十二年間에 저지른 가장 큰 罪惡들 가운데의 하나는 有能한 政治指導者들을 暗殺⋅殺害한 일이다.

嫉妬의 女神 「헤라」의 심술과 惡魔의 마음을 가진 李承晩은 「제우스」 神의 사랑을 獨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權力의 寶座」를 길이 保全하기 위해서 毒묻은 화살을 政敵의 가슴을 겨냥하여 쐈다.

그는 「요르단」 江물을 한숨에 들이마셨다는 怪物인 「비헤모스」같은 巨大한 國家權力을 한손에 잡아 쥐고 다른 한손엔 모든 百姓들의 生殺與奪權을 쥐었다. 「反共」, 「防日」이라는 神話的인 所謂 「國是」를 내걸고 그에게 忠誠을 盟誓한 警察과 檢察, 特務隊와 테로團을 動員하여 가장 反動的인 「보나팔티즘」과 「메태르니히 體制」를 確立하여 民主主義를 壓殺하고 民主主義를 부르짖는 大衆과 指導者를 때려잡았다.

韓國板 「메카시 旋風」앞에 共産黨과 叛逆者와 間諜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어간 罪없는 百姓과 政治人의 數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李承晩의 이 蠻行은 이제 山川과 하늘이 證言하고 歷史와 人民이 告發하고 있다. 民主主義는 人間 尊重의 思想인데 民主主義를 하노라 하더니 李承晩=自由黨 天下에선 말못할 程度의 「人間賤視」와 「人間虐待」가 있었다.
 
한포기의 花草나 한그루의 나무를 가꾸는 데도 數많은 精誠과 費用이 들고 짧지않는 歲月이 걸리는데 植物아닌 한사람의 人間을 기르는데 있어선 더 말할 나위도 없으며 하물며 民族的인 指導者의 경우는 더욱 더한 것이 事實이다. 이럼에도 不拘하고 李承晩은 제 口味에 안맞는 어린 싹들로부터 自己 領土內에 뻗쳐 올듯하게 보이는 民族的 喬木과 巨木은 모조리 亂伐하고야 말았다.

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 사람을 아낄 줄 모르는 생각, 人間의 尊嚴性과 生命을 貴重하게 느끼지 못하는 생각, 指導者를 所重히 여기고 받드는 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이 나쁜 思考야말로 李承晩에게서 물려받은 슬픈 流産의 하나이며, 이 그릇된 생각이 나날이 흐름에 따라 우리들의 精神風土에 뿌리박히고야 만 것이다.

겨레의 巨木들의 伐採로 이 땅 政界는 不毛地요. 荒蕪地며, 이 指導者 貧困 때문에 정국은 昏迷하고 民衆은 끝없는 不幸속에서 갈길 몰라 방황하고 있다.

李承晩의 罪! 정녕 千秋에 길이 남음이 있으리라.

李承晩의 「指導者 사냥」은 故 夢陽 呂運亨氏 의 暗殺로 露骨化되었고 白凡의 殺害로 頂點에 達했으며, 竹山 曺奉巖의 絞首로 마지막 章을 裝飾한 셈이다.

一九四九年 六月 二十六日 午後 一時 無知한 陸軍少尉 安斗熙가 쏜 兇彈에 맞아 七十四歲를 一期로 老鬪士 白凡은 쓰러져 放浪과 鬪爭과 눈물과 피로 點綴되었던 그의 一生은 끝나고 품은 뜻 못 이룬 채 「單政」의 하늘 아래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날 京橋莊을 울리던 銃聲과 白凡暗殺의 悲報에 온겨레는 놀라움과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고 忿怒의 치를 떨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겨레의 설움과는 딴판으로 남몰래 得意에 찬 會心의 웃음 웃는 者들이 있었다. 革命鬪士는 民族主義指導者인 白凡을 무엄하게도 거꾸러뜨리고서 政敵除去의 計劃된 大事가 成功的으로 이루어졌다고 快哉를 부르며 끝없이 기뻐한 무리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亡國奴들은 自己들도 아무것도 모르는 듯 시치미를 떼었고, 白凡暗殺은 마치 安斗熙의 偶發的인 單獨犯行인 것처럼 百姓의 눈을 속이려는 서투른 演劇을 꾸몃다.

白凡 暗殺의 最高指揮者 李承晩은 「.... 金九氏를 殺害한 動機에 關하여서는 公布하고 싶은데, 勿論 반드시 公布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모든 事實을 一般앞에 公開해 놓는다는 것은 나의 생각으로는 그 生涯를 祖國獨立에 바친 韓國의 한 愛國者에 대한 追憶에 不利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라고 하여 한 便으로는 加增하게도 그가 白凡을 가장 위하고 있는 양하는 印象을 國民들에게 주려했고, 다른 한 便으로는 白凡이 나라를 害치는 일을 하였으며 하기에 白凡을 暗殺한 것은 愛國的인 行爲인 것 같은 느낌을 주려고 하였던 것이다.

最高 元兇이 이러하니 그 밑의 走卒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陸軍參謀總長 蔡秉德은 이틀 후인 二八日 「이번 犯行의 動機가 確實히 個人的 行爲였고, 決코 軍과는 아무런 相關이 없는 것이다.」라는 談話를 發表했다.

같은 날 外務長官 林炳稷은 「... 이런 일은 文明程度가 낮은 데서만 있을 수 있는 것으로서 國際的 不利를 招來한 것이나 國民된 우리로서는 各別한 注意를 해서 또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할 것이며, 다만 이 惡한 일을 한 者가 不當한 法的 處斷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라고 했다.

이는 愛國者의 暗殺 責任을 낮은 文明에 轉嫁시키고 또 열 번 죽여도 마땅할 犯人을 極刑에 處해지는 것을 反對하면서 指導者를 죽인 者를 擁護하는 妄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同年 七月 一日 田某 憲兵司令官과 金泰善 首都警察廳長은 白凡 暗殺事件의 眞想을 糾明할 것을 要求하는 國民들에게 共産黨의 破壞行爲와 非常時局 云云... 威脅으로 恐怖雰圍氣를 造成하여 國民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爲한 聲明書를 發表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金九는 빨갱이다」 「南北協商者는 共産黨 앞잡이다」라는 駭怪한 삐라가 나붙고 八月 十二日 大韓靑年團을 비롯한 十六個의 政黨 社會團體의 安斗熙 釋放陳情運動이 展開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한 平生 祖國의 해방과 統一祖國의 樹立을 爲해 목숨 바쳐 애써온 愛國者는 逆賊으로 몰렸고, 愛國者를 잡아 죽인 李承晩徒黨들은 끝없는 豪奢와 榮光을 獨차지했고, 下手人 安斗熙는 愛國靑年처럼 되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이며, 歷史에 對한 拒逆과 侮辱이 이에 더할 수 있으랴 (계속)

[민족일보] 1961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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