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서해교전 : 분단의 아픈 현실

월드컵 열기로 한반도가 후끈 달아오른 정점에서 우리는 또 다른 측면의 한반도의 현실을 목도하게 되었다. 3.4위전이 열린 바로 그 날 서해 상에서 남북 해군간의 교전이 벌어진 것이다. 꽃게잡이가 한창인 6월이면 늘상 있어왔던 서해 북방한계선에서의 남북간 긴장상황이었지만 2000년 정상회담 이후 처음으로 남과 북이 실제적인 교전을 벌이고 더욱이 양측의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는 사실은 분명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상치 못했던 갑작스러운 돌발사태로 인해 우리 모두는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가 천금같은 목숨을 잃은 병사들에게는 무어라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암담할 지경이다. 월드컵의 유종의 미마저도 이번 서해교전으로 그 빛은 상당히 바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이 우리 분단상황의 현실이고 한반도 긴장상황의 현주소이다.

목소리 높인 감정적 대응

그런데도 일부 언론과 정당은 처음부터 이번 사건을 북측의 의도된 도발로 단정하고 전쟁불사의 격앙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보복과 응징의 강경대응으로 국민여론을 몰아갔다. 사건 직후 6월 30일자 조선일보는 1면 톱 기사 제목을 `북 서해도발, 아군 4명 전사`로 뽑았다. 기사 제목만으로도 이미 조선일보는 사건을 북의 책임으로 단정짓고 적과 아의 명확한 구분을 통해 북한에 대한 적관계를 전제했으며 동시에 전사(戰死)라는 표현으로 지금이 전쟁상황임을 암시했다.

사건의 정확한 진실과 발발원인 및 합리적인 대응책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리 모두는 해군 4명이 사망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불태워야만 했다. 사건에 대해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응하자는 주장은 우리 사회의 일사불란한 애국주의와 과도한 군사주의에 주눅들어 감히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불과 3년 전에 있었던 연평해전과 이번의 서해교전이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우리 사회는 이렇게 흥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측의 일방적인 패배 때문이었는지 해군의 승리를 자축(?)했었다. 연평해전 때도 북측의 북방한계선 월경이나 북쪽의 선제공격은 마찬가지였지만 이번에 우리 언론은 단지 우리 측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확전불사까지 주장하며 대북 적개심 고취에 진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남북교전 사태에 대해 보복과 응징을 외쳐대는 것이 문제의 본질인 한반도 긴장상황 해소에 도움이 되는 일일까?

불확실한 북한측의 의도
 
서해교전 이후 대부분의 언론과 전문가들의 관심은 북한의 도발의도가 과연 무엇인가에 집중되었다. 단순한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에서부터 1999년 연평해전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한 북한내 하부단위의 과도한 애국주의의 소산, 그리고 빨치산 그룹의 세대교체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이에 대한 북한 군부의 정치적 저항이라는 이른바 북북갈등설과 북미대화에서의 우위확보를 위해 남북관계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김정일 위원장 차원의 전략적 고려 등 다양한 분석이 제기되었다.

물론 이번 사건의 의도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은 각각 나름의 배경과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의 우발적 사고라는 분석은 매일 남북한 경비정이 지근거리에서 대치하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예기치 않은 돌발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항존할 수밖에 없다는 데서 연유한다. 또한 북한군의 준비된 설욕전이라는 분석은 3년 전 연평해전을 치욕으로 기억하고 있는 북한 해군과 일부 지휘관에게 남측에 대한 치명적 타격은 언제라도 시도하고픈 달콤한 유혹이었을 가능성에 근거한 것이다.

북북갈등설은 최근 진행된 아리랑 축전이 빨치산과 혁명원로 세대 퇴진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순으로 보인다는 방북인사의 전언에 근거하고 있으며 대미 협상력 강화를 위한 대남노선 변화라는 분석은 북미간 대화시작을 앞두고 한반도의 긴장이 여전히 현실적 문제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미국에게 알리고픈 전략적 속셈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현장의 진실은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고 북한의 의도 또한 쉽게 파악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의 원인을 북한지도부의 고도의 전략적 계산으로만 한정하는 것은 섣부른 일일 수 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남북의 화해무드가 지속되고 있고 최근 북한이 아리랑 축전을 통해 체제통합의 자신감과 함께 변화의 시그널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면서 미국의 대북특사 방북을 앞두고 북미간 대화의 기류가 조성되고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이번 사건으로 북한 지도부가 기존과는 다른 대남노선을 전략적으로 채택한 것이라는 설명은 조금 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서해교전 직후 북측 축구협회 회장인 리광근 무역상의 월드컵 축하 메시지 전달과 경수로 북측 안전요원의 남한 방문이 예정대로 이루어진 점, 8월 공동행사 준비를 위한 민간 실무접촉에 북측이 화답한 점 등도 이번 사태가 북한의 최고지도부나 정권 차원에서 준비된 의도적인 `거사`로 보기에는 무언가 불분명함이 있음을 입증한다.

1996년 잠수함 사건과 1999년 연평해전의 교훈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과 북한의 도발행위는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상수(常數)의 가능성이었다. 북에 대한 강경정책을 유지할 때도 북의 도발은 사라지지 않았고 대북 화해정책을 추진할 때도 한반도의 긴장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문제는 긴장가능성이 항상적으로 존재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돌발사태 발생시 현명한 대응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었다.

가까운 예로 1996년 동해 잠수함 침투사건이 터졌을 때 우리의 대응은 분노를 앞세운 보복과 응징의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잠수함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대되어 진행중인 남북경협의 전면중단과 함께 일체의 대북대화 중지라는 초강경 대응으로 귀결되었다. 그 결과 남북관계는 파탄되었고 한반도의 긴장은 오히려 확산일로로 치달았다. 그후 북한의 대남도발이 원천적으로 해소된 것도 결코 아니다.

그러나 1999년 연평해전이 발생했을 때 우리의 대응은 이와 달라서 남북한간 교전이 곧바로 남북관계의 전면적 중지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서해에서 총격전이 있던 바로 그날에도 동해에는 금강호가 장전항을 향해 출발하고 있었고 이미 예정되었던 북경에서의 남북 차관급회담은 그대로 개최되었다. 교전사태에도 불구하고 대북 화해협력은 흔들림 없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고민해야

또 다시 2002년 남북교전 상황을 맞으면서 우리는 흥분을 앞세워 대북강경 노선으로 회귀할 것인가 아니면 사태해결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남북화해 기조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인가의 선택에 놓이게 되었다. 지금 일각에서 거론되는 금강산 중단과 민간 경협 일시중단 요구는 피해자 가족이 겪고 있는 당장의 아픔을 생각하면 속시원한 일일 수 있겠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면 남북이 상호 에스컬레이트된 강경대응을 촉발하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반도 긴장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부에서 제기되는 우리 해군의 교전수칙 변경방침도 상황발생시 우리측의 피해를 줄인다는 차원에서 제기되는 것이긴 하지만 즉각적인 공격방침이 결국은 교전사태를 더욱 빈번하게 만들어 한반도에 군사적 충돌의 일상화를 결과할 수 있음도 직시해야 한다.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감정을 앞세운 단호한 군사적 대응이 아니라 향후 이같은 불행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해결을 구하는 것이다. 지금의 사태를 놓고 북측과 긴장상황을 지속시키면서 그 연장선에서 남북관계마저 살얼음판을 걸어야 한다면 이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한다는 말도 있듯이 우리는 NLL이라는 분란거리를 제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남북 군사당국간 실무회담을 제의하고 여기에서 남북이 대화분위기를 유지하면서 합리적 해법을 찾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고려해야 할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과거의 경험을 반추하고 미래의 한반도 평화를 감안할 때 우리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이룬 남북화해의 분위기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긴장상황에 대한 강경대응은 또 다른 긴장을 결과할 뿐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가져올 수 없다. 오히려 엄연한 현실로 존재하는 한반도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흥분이 아니라 차분하고 냉정한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더디 가고 어렵지만 남북의 화해만이 결국은 이같은 비극을 종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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