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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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내부에서 빛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안에 빛이 있으면 스스로 밖이 빛나는 법이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

 

일본 작가 다나카 기요의 그림책 ‘깜장이’, ‘늘 혼자 집으로 가는 그 길, 담장 위에 그 애가 있었어.’

‘뭐 하는 걸까...... .’

‘다음번엔 봤을 땐,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었어.’

‘아, 오늘도 있네. 이번엔 자세히 좀 봐야지.’

온 몸이 까만 어린 아이, 깜장이. 어린 소녀는 어느 날 용기를 내서 물어본다. “얘, 거기서 뭐해?”

‘그 애는 톡톡톡톡 걸어 내려오더니 탁탁탁탁 앞서 걸었어.’

‘어디 가는 걸까...... .’

깜장이는 담장 틈새로 기어 들어갔다. 문득 넓은 공터가 나타난다. ‘꽃향기. 풀냄새.’

깜장이가 낯선 집의 문을 연다. 어린 소녀는 따라 들어가 깜장이와 함께 탁자 앞에 앉아 차를 마신다.

차를 다 마시더니 깜장이가 조심스레 벽장문을 드르르르르! 연다. ‘어, 텅 비어 있네?’

깜장이와 어린 소녀는 벽장 속으로 들어간다. ‘벽장문을 닫으니, 까만 어둠, 깜장이는 눈을 감고 있는 것 같았어. 나도 눈을 감았어.’

‘그랬더니, 휘이- 휘이- 나지막이 바람 소리가 들렸어.’

깜장이가 다락으로 기어오르고, 어린 소녀도 따라 올랐다. ‘그랬더니... 우와~!’ 별세계가 펼쳐졌다.

어린 소녀는 깜장이가 밀어주는 그네를 타고, 두 아이는 신나게 뛰어다닌다. 큰 나무에도 기어오르고,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온다.

‘깜장이는 쑥쑥 꼭대기로 거침없이 쑥쑥 올라갔어.’ ‘산은 푹신푹신하고 따뜻했어.’ 둘은 깜빡 잠이 든다.

두 아이는 손을 잡고 어둠속을 헤쳐 돌아온다. 드르륵! 벽장문을 열고 그 집을 나온다.

‘잘 있어, 깜장아!’ 어린 소녀는 길에서 퇴근하는 아빠를 만난다. “아, 아빠!” 손에 들고 있던 꽃을 보여준다.

어린 소녀가 깜장이와 함께 벽장을 통해 들어갔던 공터는 실재하는 세상이었을까? 어린 소녀가 잠시 꿈을 꾼 걸까?

한 공무원은 퇴근하면 조용히 자기 방에 들어가 혼술을 한다고 한다. 그 술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말하는 빨간 약, 파란 약 중 어느 것일까?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인생은 연극’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연극이 아닌 세상이 어디에 있단 말이 아닌가?

옛 소설에서는 저승에서 죄를 지은 사람들이 이승으로 귀양을 온다. 그럼 그 사람은 죄가 풀려 저승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건가?

어느 세상이 진짜 세상인지는 우리의 마음이 잘 알 것이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이게 진짜야!’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우리의 감각으로 생생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진짜 세상인 것은 아니다. 우리의 감각이란 실은 우리의 뇌가 느끼는 것이니까.

뇌는 눈에 보이는 것을 자기식대로 해석한다. 깜장이를 만난 어린 소녀는 잘 알 것이다. 어느 세상이 진짜 세상인지를.

그렇다고 어린 소녀는 가짜 세상을 무시하고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 세상도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니까.

다만 어린 소녀는 분명히 알고 살아갈 것이다. ‘가짜 세상을 진짜 세상으로 알고 살아가면 안 돼!’

그래서 어린 소녀는 항상 쾌활할 것이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며 살아가니까.

 

굉장한 일을 한다는 듯이 트렁크 문을 열고
머리를 처박았다가 꺼내며
무슨 굉장한 일을 하는 듯이 트렁크 문을 닫고
요새 사람들의 중요한 일이 대개
그 비슷한 것일진대
정말이지 사람들이여
무슨 굉장한 일이 좀 있어야겠다.

 

                                                                                    - 정현종, <굉장한 일> 부분

 

세상은 무지 바쁘게 돌아간다. 다들 ‘굉장한 일’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한결같이 ‘굉장한 일’을 하는 사람의 얼굴 표정이 아니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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