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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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어두운 길을 인도하는 유일한 지팡이는 양심이다. - 하인리히 하이네


 중학교 3학년, 집이 가난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나는 수업이 끝나면 학교 도서관으로 갔다.

 그때 읽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소송’, 어떤 알 수 없는 막막함이 지금도 내 가슴에 깊이 남아 있다.

 2년 전에 독일에서 잠시 온 큰 아이와 병원에 갔었다. 간호사가 큰 아이와 내게 다가와 체온을 쟀다.

 체온계를 보던 간호사가 내게 다시 검사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체온이 37도가 넘는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검사도 체온이 37도가 넘었단다. “밖으로 나가셔야 해요.” 나는 큰 아이를 혼자 두고 병원 밖으로 추방되었다.

 나는 이마를 짚어보았다. 그다지 열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평소에 강의실에 갈 때마다 검사를 하면 항상 정상이었는데, 오늘은 웬일이지?

 나는 병원 입구 계단에 앉아 큰 아이를 기다리기로 했다. 몇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모 고등학교에서 아이들 인문학 강의를 하기 위해 ㄷ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간호사가 혈압이 높다고 했다.

 몇 번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혈압 치료를 하기로 약속하고 통과시켜 주었다. 하지만 다른 병원에 갔더니 혈압이 정상이었다.

 의료기계 앞에서 심사를 받아야 하다니! 기계가 잘못 되었으면 누구한테 항의해야 하나?

 그런데 기계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나를 가로막는다면? 아무리 말해도 그들은 같은 말만 반복한다면?
 
 세상의 길목마다 우리를 가로막는 사람들, 그들은 우리를 가로막는 임무만 부여받았다.

 그들의 손에 한번 걸려들면 우리는 그들의 손을 돌고 돌아 결국엔 죽음에 까지 이를 수 있다. 
  
 서른 번째 생일 날 느닷없이 나타난 사내들에게 체포된 소송의 주인공 요제프 K, 그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던 잠자리가 거미줄에 걸려드는 순간, 잠자리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는 체포되기 전까지는 은행의 간부였다. 확실한 신분이 있었다. 하지만 사법기관에 의해 체포되는 순간, 그는 피고인이 된다.

 촘촘한 법망은 그의 숨통을 옥죄어 갈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왜 체포되었는지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체포하러 온 한 사내는 말한다. “우리는 모른다. 그건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우리는 주어진 임무만 수행할 뿐이다.”

 그들은 요제프 K가 죄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관심이 없다. 더더구나 요제프 K의 마음에 대해서 누가 생각이나 하랴?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천지자연은 무심하다. 서로의 생명을 나누며 살아가는 게 모든 생명체의 삶의 원리가 아니던가?

 그런데 요제프 K는 왜 법의 거미줄에 걸려 발버둥을 치다 죽어가야 하는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게 뭇 생명체가 서로 먹고 먹히는 것처럼 자연스런 일인가? 인간 사회도 정글처럼 만인과 만인이 서로 적이 되어야 하는가?

 원시인들은 모든 사람은 한 사람을 위하고, 한 사람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살아가던 아름다운 공동체 사회를 이루었다.

 그러다 문명화되면서 인간세상은 잔혹해졌다. 강자는 법의 이름으로 약자를 지배하고 착취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제프 K의 죽음은 부조리다. 조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의 죽음 앞에 온 인류가 함께 눈물을 흘려야 한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말했다.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내 가슴에는 도덕률이 빛난다.”

 인간 사회에서 가중 중요한 것은 도덕률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양심이다.

 그리스의 안티고네는 부당한 왕의 명령을 죽음으로써 거부한다. 그녀는 가슴에서 빛나는 도덕률에 따라 그렇게 했다.

 법조문에 있는 실정법이 아니라 가슴에서 빛나는 도덕률, 자연법이 인간세상의 최고의 법이다.

 요제프 K는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죽음만이 그가 법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가끔 악몽을 꾼다. 깨고 나면 악몽은 더 이상 악몽이 아니다. 죽음은 인간의 마지막 출구일 것이다.  
 

 어쩌면 나도
 이름 석자로 수배중이다
 납부 마감일로 독촉되는 고지서로
 열자리 숫자로 배포된 전화번호로
 포위망을 좁혀오는지도 모른다

 칸 속의 얼굴은 하나 둘 붉은 동그라미로
 검거되어 가는데, 나를 수배한 것들은
 어디서 잠복중일까

 무덤으로 연행되는 남은 날들,
 그 어딘가
 잡히지 않는 희망을
 일망타진할 때까지
 나는 매일 은신처로 귀가하는 것이다.

                                                                             - 윤성택, <수배전단을 보고> 부분 

 

 어쩌다 우리 모두 죄인이 되었을까? 

 언제나 죄의식에 시달리는 우리는, 어느 날 체포되는 순간 순순히 응한다. 죽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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