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노 워싱턴 시민학교 이사

 

한국은 하도 자살이 유행해서 이제는 뉴스거리가 못되고 사람들의 관심사도 아니라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자살천국’이라는 말까지 쉽게 들을 수 있다. 연 1만5천 명이 자살해서 수십 년째 세계 자살률 1위 기록 보유자가 됐다. 허나 명색이 경제대국 10위라는 나라가 지구상에서 가장 수치스런 기록을 그토록 오래 보유하고 있다니… 뭔가 한참 잘못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일반적으로 자살과 범죄는 경제사정과 비례한다고 한다. 바로 한미의 경우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는 현상이다.

지구촌이 다 같이 겪는 경제적 고통이긴 하지만, 특히 한미의 각종 범죄와 자살은 선을 넘은 심각한 문제라고 해야 맞다. 한국의 경우 특별히 자살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제 반해, 미국은 각종 강력범죄, 특별히 무차별 총기 난사가 급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금 미국에는 오늘 하루에도 멀쩡한 생사람이 수백 명씩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이게 바로 생지옥이다. 트럼프 임기 말부터 뭔가 불안하다며 총기 구매가 두 배 이상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총잡이로 흥한 자 총으로 망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한국의 자살 유형은 다양하지만, 자살의 대부분이 생활고, 즉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고 각종 통계자료가 말해주고 있다. 여기서 자살의 대표적 예를 몇 개 들어 문제점과 대응책을 모색해보려고 한다. 6월 29일, 지대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정유나 양 가족 3명 실종사건의 실마리가 거의 풀렸다. 가출한지 두 달 만에, 실종신고 8일 만에 10살짜리 유나 양 가족의 시신이 전남 완도의 선착장에서 인양됐다. 이들이 탄 차량이 의도적으로 차가운 바다물속으로 돌진해 세상을 하직한 것으로 보인다.

유나 양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고 증권 같은 곳에 투자를 했다가 손해를 많이 봐서 빚더미를 떠안고 고민을 많이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는 생계까지 어려웠다고 한다. 한때 윤택하게 살던 사람이 졸지에 빚쟁이로 변신하게 됐으니 수치심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걸로 보인다. 대개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의 자살 동기는 남들을 의식하고 열등감에 빠져들어 재기할 용기를 상실해서라고 한다. 사업가들의 자살 특징은 전 가족 동반자살이 공통점이라고 한다.

자살 취약 계층은 주로 저소득층과 무의탁 노약자들이라고 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무의탁 노인의 시신이 유나 양 가족보다 두 주일 전인 6월 15일, 서울시 서대문구에서 발견됐다. 그런데 이 70대 남성 노인의 시신이 두 달이 넘도록 방치됐다는 사실이 알려져 세상이 너무 매정하다며 사람들이 혀를 찬다. 이 노인은 서류상 재산 보유자이고 또한 지역주민이 아닌 걸로 돼있어 복지 혜택이나 기초생활 보조금조차 받지 못했다고 한다. 많은 빚이 있고 외부와 연결도 완전히 끊어진 채 혼자 살다가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고독하게 홀로 살다 굶어 죽은 이 노인은 죽어서도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고 버려졌던 것이다. 그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주변에 파리떼가 하도 요란하게 우굴 거려 같은 건물에 사는 주민이 경찰에 신고를 해서야 발견됐다고 한다. 잘산다는 나라에서 굶어죽다니, 아니 시신이 몇 달씩 방치되는 사회라면 밀림의 동물 사회와 다를 게 뭐가 있나 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오래 방치된 시신을 사람이 찾아낸 게 아니라 파리떼, 고약한 악취, 편지통에 잔뜩 쌓인 독촉장, 그리고 전기 수도세 장기 미납 등이라니 결국 이들이 사람 구실을 한 셈이다.

2014년,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은 온 나라를 슬픔에 잠기게 했던 너무도 끔찍하고 안타까운 비극이라 아직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장애 자식들을 돌봐야 하는 엄마는 본인 건강까지 악화돼 변변한 직장도 가질 수 없어 가난에서 탈출할 길이 없었다. 궁핍한 삶을 살면서도 재기의 꿈을 실현하려고 발버둥쳐 봤으나 모질고 잔인한 세상 풍파를 끝내 이기지 못하고 세 모녀가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마지막 가는 저승길인데도 밀린 방세를 주인에게 남겨서 더욱 우리의 심금을 울린 기막힌 사연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이듬해 2015년 대구에서도 있었다. 30대 장애 언니를 혼자서 돌보던 동생이 한평생 장애 언니를 돌봐야 하는 처지를 비관하고 언니와 동반자살을 하고 말았다. 또, 불과 몇 해 전, 서울 한복판에서 탈북 엄마와 아들이 굶어 죽은 것으로 보인다는 경찰 발표로 세상이 크게 놀란 일이 있었다. 그런데 죽은 지 넉 달이 넘도록 시신이 방치됐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많은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병든 어린 아들을 수발하느라 직장도 제대로 다닐 수 없어 수입은 양육수당 10만 원이 전부였다고 한다.

대게 탈북자들은 저소득층인 데다가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에 소외돼서 실망하고 절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직 순진해서 쉽게 유혹에 걸려 사기를 당하거나 심지어 탈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주로 탈북 남성은 범죄에 연루되고 탈북 여성은 매춘의 길로 빠지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수입이 낮은 탓에 몸을 팔아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매춘행위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같은 탈북 출신인 태영호 전 주영공사는 당시 아사한 탈북 모자에 대해 동정은커녕 악담을 늘어놨다.

태 공사는 이번 사건은 “북당국과 김씨 일가에 책임이 있다”면서 북한이 선전선동에 이를 써먹을 거라고 비난했다. 탈북자들의 열악한 생계뿐만 아니라 인권 및 복지를 위해 혼신을 다하겠다고 해야 정상이건만, 도리어 죄 없는 북한을 물어뜯지 못해 환장하는 모습만 보이니 한심할 따름이다. 피눈물도 없는 잔인무도한 이런 인간이기 같은 탈북자로 의원 뺏지를 달았지만, 탈북동포들이 야무지게 등을 돌리고 있다는 소문이 나도는 게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권리는 하늘이 내린 천부의 권리다. 위의 예를 보듯이 자살은 인재가 분명하다. 따라서 사전 예방도 가능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헛되게 죽었다’, ‘지가 못나 죽었다’, 또는 ‘팔자소관’이라고 비난하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최소한 아까운 생명을 살려내는 데에 뭔가라도 좀 기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느끼는 게 바람직하다. 한강다리에 “잠깐만! 참으세요!”라는 팻말을 걸어놓고, 동회에서 무료로 쌀바구니를 나눠준다고 자살이 해결된다는 생각은 너무 근시안적이다.

제도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걸친 총체적 개혁이 선결과제다. 물론 누구나 원하면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보장돼야 한다. 국민의 정신상태를 썩고 병들게 하는 군사문화의 고질적 병폐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게 문제의 가장 큰 화근이다. 좀 더 깊이 드려다 보면 포악한 통치술이나 악성 병폐의 유전자(DNA)는 일제→군사정권→한나라당→국민의힘으로 계승돼 오늘에 이르렀다. 돈이 최고라는 황금만능주의, 일약천금을 노린 한탕주의, 그리고 특히 빈부 격차 양극화는 따뜻한 사회를 저해하는 악성 종양이다.

이 지구상에 자살이 없는 나라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북녘에는 자살이 없다는 걸 믿고 싶다. 나는 운이 좋아 2008년 2월, ‘뉴욕필하모니’ 동평양대극장 공연을 관람했다. 나는 워싱턴의 최장길 원로 통일운동가와 방을 같이 쓰게 됐다. 고맙게도 최 선생의 조카딸 최영옥 씨(평양 거주 당시 25세)가 저녁에 자기 일이 끝나면 떡이랑 과일 같은 걸 싸가지고 우리를 방문하곤 했다. 매일 세탁물을 가져가서 빨아오곤 했다. 심지어 2월이라 춥다면서 내복까지 시장에서 사가지고 왔다.

이제 친해져서 마음먹고 많은 질문을 하기로 했다. 자살에 관심이 많은 나는 가장 먼저 북녘의 자살 유형을 물었다. 우선 자살 원인과 일 년에 몇 명이나, 그리고 본인이 직접 목격했거나 들은 바 있는가 하고 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겠단다. 그래서 부연 설명을 했다. 연애에 실패하거나, 김일성대학에 낙방하거나, 가난을 이기지 못해 죽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예를 들었다. 근대 이번에는 자살할 필요가 없는데 왜 죽느냐고 되묻는다. 자살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니…

그리고는 연애하다 실패해도 길거리에 쌓이고 쌓인 게 게 처녀 총각인데 라며 웃는다. 가난 때문에 죽는 일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콩 한 조각도 나눠먹는 우리 사회는 죽게 내버려두질 않습니다”라고 한다. 그리곤 “하나는 전체를, 전체는 하나를 위해”라는 철학이 몸에 무장돼서 서로 돕는 데에 앞장선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상호 밀접하게 연계돼 있어서 직장이나 소속 단위에서 어떤 문제도 풀어낸다고 한다. 더구나 예방 차원 ‘의사담당 구역제’가 있어서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라면 더 철저하게 관리된다고 한다.

평양 호텔에서 최영옥 씨와 나눈 대화는 후일 자살에 대한 나의 관점을 바로 세우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은 자도 우리 민족 성원이고 사회의 구성원이다. 이웃에 속하고, 반상회에도, 동네에 속해있다. 나아가 사회가 있고 국가도 있다. 시신이 몇 달씩 방치된다는 건 정상적인 사회에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누구나 큰 희망을 안고 신명나게 일하는 사회라면 인정과 사랑이 넘쳐나고 자살할 꿈도 꾸지 않을 것이다. 일자리 보장은 정부의 책임이고 남북 교류 협력이 이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도다.

남북이 굳게 합의한 이 엄중한 역사적 약속을 이행하지 못해 남북 관계가 꼬이고 일자리가 없고 자살자가 늘기만 한다. 자살 책임을 죽은 자에게 돌려선 안 된다. 산 자의 책임인 동시에 산 자가 풀어내야 할 과제다. 남북 합의 선언을 반드시 이행해야 자살도 없고 살맛나는 신명나는 세상이 펼쳐질 수 있다. 그래야 우리 민족 최대의 숙원 통일을 앞당길 수 있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가련한 넋들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흥노 / 재미동포, 워싱턴 시민학교 이사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