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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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미(美)는 어디에나 있다. 그것은 결코 우리의 시야 내에 없을 리 없다. 다만 우리의 눈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 오귀스트 르네 로댕


 TV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나를 추앙하라’고 말한다.

 추앙, 높이 받들어 우러러 본다는 뜻이다. 여자 주인공은 ‘망가진 삶’을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을 ‘인간’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인간은 누구를 사랑할 때, 고결해진다. 자신을 넘어서 더 큰 존재가 된다. 우리 안에는 인류가 쌓아온 지혜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여자 주인공이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은 건, ‘사랑’이라는 단어는 이미 너무나 많이 오염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의 사랑은 주고받는 교환가치다. 사랑 그 자체로 고귀하지 않다.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주고받는다.

 자신을 온전히 내던지는 사랑은 사라졌다. 그래서 여자 주인공은 ‘추앙’이라는 생소한 말을 썼을 것이다.

 그렇다고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정말로 추앙할 수 있을까? 남자 주인공은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시골로 들어왔다.

 상처 받은 짐승이 동굴로 웅크려 들어오듯. 웅크리고 상처가 회복되기를 마냥 기다리듯. 

 하지만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을 추앙하며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자신의 상처만 생각하지 않고 남의 상처를 헤아리는 사람이 되어 갈 것이다.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을 모른다. 하지만 그와 똑같이, 사람에 의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사람에 의한 상처는 사람만이 낫게 할 수 있다. 더 이상 사람에 의해 상처받는 게 두려워 사람을 멀리하지 말아야 한다.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 한 사람을 추앙하며, 온 인류를 추앙하고 나아가 삼라만상을 추앙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을 추앙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심층신리학자 융이 말하는 ‘개성화’다.

 개성화는 자기실현이다. 자신 안의 영혼, 자기(自己 self)를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삶은 자신의 영혼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름답다.

 그의 안에 있는 ‘미의식(美意識)’이 깨어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타고난 미,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있다.

 좋은 것을 보면 아름다움을 느끼고 좋지 않은 것을 보면 추한 것을 느낀다. 이것은 본능에서 나온다.

 인간은 자아(自我 ego)가 있는 존재라,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끝없는 탐욕을 부린다.

 하지만 미에 대한 의식이 있어, 탐욕을 부리는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차마 부끄러운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

 물론 ‘생각하는 동물’로 살아가는 인간은 부끄러운 짓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지만, 그의 무의식에 있는 미의식이 그를 그냥 놔두지 않는다.

 그의 꿈은 늘 뒤숭숭하고 죽음 앞에서는 절망한다. 죽은 후 지옥에 가게 된다.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된다.) 

 어릴 때는 이런 미의식이 강하다. 아이들은 ‘쪽팔리는 짓’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중국 명대의 철학자 이탁오는 ‘동심을 고이 간직하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인기를 끌고 있는 건, 우리의 ‘추앙’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움과 혁명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
 아름다움과 혁명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손끝에 있는 것이다. 

                                                            - 체 게바라, <나의 손끝> 부분 
 

 혁명이 아름다움을 잃으면, 혁명 이전보다 오히려 더 퇴보한 세상이 온다.  

 우리는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어버린 혁명가들을 많이 본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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