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번의 실패를 딛고 개발에 성공, 2.16 과학기술상 수상 

 

변학문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2022년 1월 29일 로동신문에 국가과학원 기계공학연구소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신문 한 면의 70% 정도를 차지한 이 기사에서 기계공학연구소의 연구개발 성과, 과학기술계를 향한 북 당국의 정책 메시지, 과학자 우대정책, 청년과학자에 대한 북의 기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이 기사가 소개하고 있는 기계공학연구소의 성과는 안과에 필수적인 인공수정체 생산공정 개발이다. 

기계공학연구소가 개발한 인공수정체 생산설비들 (내나라, 2021.9.29.)

백내장 치료에 필수적인 인공수정체  

수정체는 카메라 렌즈처럼 눈으로 들어오는 빛을 굴절시켜 망막에 상이 맺히게 해주는 투명한 조직으로서, 영어로도 lens라고 한다. 

(동아사이언스, 2020.4.21.)
(동아사이언스, 2020.4.21.)

만약 렌즈 역할을 하는 수정체가 뿌옇게 되면 빛이 제대로 통과하지 못해 시야도 흐려지는데, 이것이 대표적인 안과 질환인 백내장이다. 백내장이 심하면 뿌예진 수정체를 제거하고 인공수정체를 넣어주는 백내장 수술을 해야 한다.

 따라서 인공수정체 생산기술은 백내장 환자 치료에 필수적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다양한 형태의 백내장 치료용 인공수정체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로동신문 기사에서는 인공수정체를'크기가 6mm 정도 되는 볼록렌즈 모양의 투명체에 활의 등처럼 생기고 굵기는 머리카락 정도 되는 다리가 양쪽으로 나와 있다'고 묘사했다. 

아마 북에서는 오른쪽 사진 속 인공수정체와 비슷한 모양의 인공수정체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체식 인공수정체 생산공정 개발

로동신문 기사에 따르면 기계공학연구소가 개발에 성공하기 전까지 북은 인공수정체 수요를 대부분 수입으로 해결해야 했다. 자신들의 기존 인공수정체 기술력이 렌즈 부분과 다리 부분을 따로 만든 뒤 수공업적으로 조립하는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달리 기계공학연구소가 개발한 인공수정체 생산공정은 처음부터 렌즈와 다리를 통으로 가공하는 일체식 인공수정체 생산공정이라고 한다. 

북의 매체들은 매우 높은 형태정밀도와 '정결도'(표면의 매끈한 정도)를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몇몇 나라만 보유하고 있던 일체식 새산공정을 기계공학연구소가 자체 역량으로 개발했다고 주장한다. 

기계공학연구소는 2016년 이 생산공정 개발에 착수해서 2019년 4월에 완성했고, 실제 병원에 도입해서 첫 두 달 동안 수백 명 등 지금까지 많은 백내장 환자 치료에 기여했다고 알려졌다. 김정은 위원장도 여러 차례 열악함을 인정했던 북 보건의료 현실에서 이와 같은 기계공학연구소의 성과는 높게 평가받을 만한 것이었다. 

2021년 이 기술은 북 과학기술 분야 최고상인 <2.16 과학기술상>을 받았다. 

수십 번 실패 끝에 개발 성공

다음으로 이 기사는 기계공학연구소의 개발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과학기술계를 향해'포기하지 말고 성공할 때까지 연구개발을 계속하라'는 북 당국의 요구를 전하고 있다. 

기계공학연구소는 북의 대표적인 안과병원인 류경안과종합병원이 건설 중이던 2016년 6월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이 병원에 설치할 인공수정체 생산공정 개발에 착수했다. 기사에 따르면 기계공학연구소는 1년여 뒤인 2017년 하반기에 생산설비 개발제작을 완료했다. 

류경안과종합병원 (서광, 2017.2.16.)
류경안과종합병원 (서광, 2017.2.16.)

2018년 1월 국가과학원 현지지도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이 설비를 직접 보고 치하하면서 빨리 완성해서 병원에 제공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시운전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드러났고, 특히 인공수정체 표면의 정결도 문제 때문에 수십 번을 실패했다. 

그럼에도 연구진은 포기하지 않고 국가과학원 나노공학분원 나노재료연구소 과학자들과 협력해서 수정체 표면을 정밀하게 다듬을 수 있는 광마(윤내기) 재료를 개발했고 2019년 4월 전체 생산공정을 완성했다고 한다. 

'시제품에 그치지 말고 제대로 개발하라'

북은 2~3년 전부터 시제품 제작이 완제품 개발로 이어지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았고, 이로 인해 과학기술계가 그간 여러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실질적인 발전을 가져오지 못했다고 평가해왔다. 

"일부" 과학자, 기술자들이 시제품만 만들고 만족해서 연구를 중단하거나, 후속 연구개발 과정에서 한두 번 실패했다고 쉽게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북은 과학자들이 시제품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효과를 낼 때까지 연구개발을 계속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로동신문 기사는 수십 번의 실패를 딛고 인공수정체 생산공정을 완성한 기계공학연구소를 그 모범사례로 내세우고 있다. 

연구자 10명의 사진 게재가 과학자 우대정책?

기사에서는 10명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일체식 인공수정체 생산공정 개발에 각각 어떻게 기여했는지 소개하면서 그들의 사진을 기사 하단에 함께 실었다. 

로동신문에서 하나의 연구성과에 기여한 여러 과학자들의 이름을 모두 소개하는 기사가 최근으로 올수록 많아지고는 있는데, 이 기사처럼 사진까지 다 실어주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필자가 본 기사 중에는 처음이다). 

기계공학연구소 관련 기사에 실린 연구자 사진 (로동신문, 2022.1.29.)
기계공학연구소 관련 기사에 실린 연구자 사진 (로동신문, 2022.1.29.)

이러한 변화를 과학자 우대정책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고작 이름과 사진을 신문에 실어주는 게 무슨 우대냐' 할 수 있겠지만, 과거 북은 과학자 개개인을 부각하는 데 인색했다. 

과학기술 중시 정책을 표방하고 과학자 우대정책을 점차 강화했던 김정일 집권기에도 과학자 개인을 띄워주는 면에서는 변화가 매우 느렸다. 

북 대학 선후배의 서로 다른 경험
 
이와 관련해서 북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같은 대학을 다닌 두 명을 동반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해본다. 두 사람 중 선배는 김정일 집권 말기에 그 대학을 졸업한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전(즉, 김정은 집권 전)에 북을 떠났고, 후배는 김정은 집권기에 입학・졸업하고 비교적 최근에 남쪽으로 왔다. 

인터뷰 중 후배가 '대학교수가 큰 상을 받으면 교수 이름이 들어간 축하, 홍보 플래카드를 걸었다'고 하자, 선배가 "대박"을 연발하면서 정말 그런 일이 있었냐고 반복해서 물었다. 자신이 북에 있을 때는 교수가 큰 상을 받거나, 심지어 김정일에게 직접 칭찬을 들었어도 이름을 걸고 홍보해준 적은 없고 입소문에 그쳤다는 것이다. 

이들의 대화는 김정일 집권기 때보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개별 과학자들을 더 부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과를 내면 명예를 높여주겠다는 신호

이와 관련한 제도적 증거로 2016년 신설된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를 들 수 있다. 전년도에 가장 우수한 연구개발 성과를 거둔 과학자, 기술자를 3~6명 정도 선정하여 시상하고, 그들의 사진과 연구성과를 로동신문에 큼지막하게 소개함으로써 그들의 사회적 명성을 높여주고 있다. 

2021년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2022년 3월 선정) 소개 기사 (로동신문, 2022.3.5.)

이 글에서 살펴보고 있는 기계공학연구소 관련 기사는 연구자들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다면 과거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들의 명예를 높여주겠다는 신호로 보인다. 

청년과학자들이 개발 주도 

지난 톺아보기 (2)에서 북의 대표적인 원격 화상회의 시스템 <락원> 개발을 주도한 이들이 20~30대였다고 소개하면서 북이 청년과학자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소개했는데, 이 기사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인공수정체 생산공정의 개발 책임자는 기계공학연구소 산하 공작기계연구집단 실장인 조영철인데, 2016년 개발에 착수했을 때 29세에 불과했다. 김책공업종합대학 출신인 그는 기계공학연구소에 온 직후부터 CNC 원통연마반・양묘장 설비 등 각종 기계설비 제작과 일반 공작기계의 CNC화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20대에 실장이 되었다. 

이후에도 그는 도로 선 그리는 기계, 다양한 양어설비, 현대화된 식료기계설비들을 개발하여 실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인공수정체 생산공정 개발과제를 통째로 맡게 되었다고 한다. 

앞서 본 10명의 사진 속에서 조영철을 필두로 박성준, 백철훈, 김은석, 한군철 등 상대적으로 젊어 보이는 연구자들이 공작기계연구집단 소속의 청년과학자들이다. 

이들은 각종 절삭공구와'지구'(jig, 절삭공구를 정해진 위치로 이끄는 장치) 개발, 소재따내기반과 정밀복합가공반의 정밀도 제고 등 인공수정체 생산공정 연구개발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북의 매체에서는 국가과학원, 대학, 내각 각 성 산하 연구기관들에 속한 청년과학자들의 성과를 담은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가 최우수 과학자, 기술자> 중에도 20대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계속 연구성과를 축적하여 40대 초반에 선정된 사람, 심지어 30대 중반에 수상한 연구자도 있다. 청년과학자에 대한 북의 기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박사.

대학에서 미생물학, 대학원에서 북한 과학사를 전공했고,

북의 과학기술에 기초한 경제발전 전략과 남북 과학기술 교류협력 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북한의 ‘과학기술 강국’ 구상과 남북 과학기술 교류협력」(2018) 등이 있고,

공저로 『김정은 시대 북한의 선택―10년의 변화 10개의 키워드』(블루앤노트, 2022), 『김정은의 전략과 북한』(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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