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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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너 자신이 네 운명의 주인이다. 너의 운명대로, 너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의 충동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 프리드리히 니체 


 현대 중국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쉰의 ‘아큐정전’의 주인공 아큐는 정신승리법의 진수를 보여준다.

 아큐는 성도 이름도 없다. 고향이 어딘지도 분명치 않은 날품팔이다. 그는 자존심 하나로 살아간다. 

 노름을 하다 돈을 잃거나, 길을 가다 이유도 없이 깡패들에게 얻어맞아도,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아들한테 맞은 격이다. 아들뻘 되는 녀석들과는 싸울 필요가 없으니, 나는 정신적으로 패배하지 않았다.’ 

 정신승리법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합리화해 정신적으로 만족을 얻으며 아픈 현실을 외면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혁명이 일어나고 혁명당이 자신의 편이라고 우쭐대다 도둑의 누명을 쓰고 혁명당에 잡혀 총살형을 당한다.

 어제 저녁 부부공부모임에서 ‘아큐정전’의 발제자가 말했다. “아큐정전을 읽으며 차츰 내 자신이 아큐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 우리는 누구나 일정 부분 아큐다. 우리는 세상이 만들어 준, 기존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기존의 세계에서 우리는 자신의 위치가 있다. 높은 사람에게 복종해야 하고, 낮은 사람을 지배해야 한다.

 여기서 생겨나는 마음이 자존심이다. 자존심은 남과의 비교에 의해 나오는 자신에 대한 존중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아큐의 마음이 된다. 당하며 사는 게 힘들 때마다 정신승리법을 쓰게 된다.

 부당하게 당하며 어찌 맨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짐승들 같으면 생각이라는 게 없어 정신승리법을 쓰지 못한다.

 짐승들은 부당한 대우에는 끝까지 대들다 죽어버리든지 도망을 친다. 정신적으로 자신을 속이지 못한다.

 자존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지위가 높건 낮건 불행한 삶을 살다 간다. 한평생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다 언젠가는 나가떨어진다. 

 그런데 인간은 기존의 세계 속에서만 살지는 않는다.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생각하는 인간은 각자 하나의 세계인 것이다.

 기존의 세계의 평가와 관계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밀고 갈 때 자신의 세계가 열린다.     

 처음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말초적이고 향락적일 수 있지만, 차츰 고상한 것을 좋아하게 된다. 

 ‘무엇을 좋아하는 정신’이 깊고 넓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깊은 영혼 속으로 들어가고, 세상을 향해 넓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세계가 크고 강해질수록 그는 고상해진다. 기존의 세계 속에서도 그의 견고한 위치가 생긴다.

 그는 비로소 자존심을 넘어서는 자존감을 갖게 된다. 자존감을 갖게 된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않게 된다.

 자존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보다 못난 사람에게는 우월감을 갖고, 자신보다 잘난 사람에게는 정신승리법을 쓰며 살아가다 가끔 인생의 위기를 맞게 된다.   

 삶의 허무감이다. 이럴 때 우리는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아큐는 내면의 소리를 거부한다. 그래서 허망한 종말을 맞는다. 내면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우리도 아큐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게 된다.


 접시 속 낙지의 몸이
 사방으로 기어나간다
 죽음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신의 
 몸은 힘차다

 몸으로 다다를 수 있는 세계도
 무궁무진하다는 듯
 죽은 정신이라도 이끌고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것은 
 몸뿐이라는 듯 

                                                    - 조은, <낙지> 부분 


 인간에게 정신이라는 게 있어, 많은 인간들이 동물보다 못한 삶을 살다간다.

 낙지는 오로지 몸으로 살아간다. ‘죽음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신’이다. 그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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