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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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영백을 실어서 하나로 품고 떠나지 않게 할 수 있는가? 기를 오롯이 하여 부드러움에 이르고 어린아이처럼 같아질 수 있는가? - 노자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끝난다. 

 ‘점심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날이었다.’

 어떻게 해서 억울하게 강제 노동수용소에 갇힌 슈호프가 잠자리에 들며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보냈다고 느낄 수 있는 걸까?

 ‘정신승리법’일까? 실제로는 불행하면서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자신을 마취시키는 자기기만.

 많은 사람들이 ‘행복이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전혀 그렇지 않다.

 행복은 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솟아올라오는 충만감, 희열이다. 밖에서 주어지는 자극, 쾌락과 다르다. 

 그래서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린 게 아니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 없다. 일시적으로는 자기최면이 가능하지만, 곧 거짓이 탄로 나게 되어 있다.  

 그럼 슈호프의 행복의 원천은 도대체 무엇일까? 상상만 해도 영하 수십 도의 강제노동수용소의 삶이라는 게 끔찍하지 않는가?

 말이나 소 같은 짐승을 데려다 시베리아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멀건 양배추 죽만 먹이고 고된 일을 시키면 과연 몇 마리나 살아남을까?

 그런데 인간은 그런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행복하기까지 하게 된다. 

 비결이 무엇일까? 바로 노자의 ‘영백을 실어서 하나로 품고 떠나지 않게 할 수 있는가?’이다. 

 영백(營魄)은 ‘혼(魂)과 백(魄)’이다. 혼은 우리의 정신이고 백은 우리의 육체다.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하라는 것이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알아차림 명상’이다. 자신이 현재 무엇을 하는지를 항상 세심하게 알아차리는 것이다.

 알아차리고 있으면 몸과 마음은 하나가 된다. ‘기를 오롯이 하여 부드러움에 이르고 어린아이처럼 같아질 수 있는가?’가 되어간다. 

 그의 몸은 항상 생기가 가득하게 된다. 몸이 곧 영혼인 사람은 언제나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바로 슈호프가 생지옥에서도 행복하게 된 이유다.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를 한다. 온 마음을 다해, 멀건 죽을 먹고 그에게 닥친 상황들을 맞이한다. 

 일상 하나하나가 수행이 된다. 삶과 수행의 일치. 높은 도인들만이 가능했던 삶이 아니던가?   

 우리의 마음은 쉽게 몸을 떠날 수 있다. 온갖 상상 속으로 날아갈 수 있다. 자신이 대단하다고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몸으로 돌아오면 어떤가? 누추한 몸에 갇혀버린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점점 마음은 몸을 떠나 허공을 떠돌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거나, 소비의 향락에 빠져드는 이유다. 그들은 마음이 몸으로 돌아오는 것이 두려워 잠시라도 고요히 머물지 못한다. 

 현대인들이 천국 같은 풍요로움 속에서도 불행한 것은, 항상 마음이 몸을 떠나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의 집을 찾아가도 그 문가에서 머뭇거리는 것은 우리가 집이라 부르는 그것도 제 집을 멀리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비울수록 무겁고 다가갈수록 멀어라! 

                                                                                         - 이성복, <집> 부분


 우리는 비운다는 말을 쉽게 하지 말아야 한다. 육체의 집을 떠나 허공에 마음의 집을 짓고서 잠시 행복감에 젖을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감은 그야말로 행복하다는 감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감에 젖어 살아간다. 그러다 갑자기 불행의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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