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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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 헬렌 켈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오늘도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그들은 지하철 안에서 오체투지를 하면서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의 시위로 시험을 못 봤다는 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그 학생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그래서 많은 시민들이 그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불편하다는 생각을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면, 이만큼 다급한 것도 없지 않은가?

 공부모임에 장애아를 둔 어머니가 온다. 나는 그 어머니와 아이를 보면 막막해진다.

 ‘아, 나라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그 어머니는 해맑게 웃으며 견디고 있다. 아이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다.

 장애아를 둔 부모님들은 바란다고 한다. 아이가 자신들보다 먼저 죽기를. 자신들이 먼저 죽으면 누가 그 아이를 돌본단 말인가?

 내가 어릴 적엔 마을 전체가 장애아들을 함께 돌봤다. 그들은 자라면서 자연스레 마을의 일원이 되었다.

 함께 일을 하면서 반품이라도 받았다. 조금 부족한 점이 있어도 그들도 우리와 같은 마을의 일원이었다.

 이제 마을은 사라졌다. 도시에서는 장애아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다들 집에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면 그들은 우리의 눈을 피한다. 우리도 피하고 그들은 죄 지은 듯 사라져간다.

 이제 그들을 누가 돌보아야 하는가? 국가다. 마을이 사라진 자리에 국가가 들어섰다. 국가는 우리에게 모든 국민의 행복 추구권을 보장한다고 약속하면서 등장했다.

 그런데 국가가 그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있다. 그럼 민주 국가의 시민인 우리는 분노해야 하지 않는가?

 그들이 나서기 전에 우리가 국가에게 장애인들의 권리를 요구했어야 하지 않는가? 이제라도 우리는 그들과 연대해야 하지 않는가?

 학생들이 시험을 왜 보는가? 인간적인 삶을 위한 시험이 아닌가? 학생들은 자신들이 살아갈 세상을 멀리 보아야 한다.

 인생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다. 그들도 언제 장애인이 될지 모른다.

 결혼하여 장애아를 낳을지도 모르고, 그 아이가 언제 장애인이 될지도 모른다. 많은 장애아들이 부모에게 버림받는다고 한다.

 얼마나 힘 들었으면 부모가 자식을 버리겠는가? 우리는 그 부모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야 한다.

 그들이 시위할 때 우리가 조금만 불편함을 참고 견디면, 그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다.

 그들의 인권이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내팽개치고 나머지 양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는 공감이라는 본성이 있다. 다른 사람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외면한다고 아픔이 사라지지 않는다.

 본성에 맞게 살지 않으면 정신질환이 온다. 그들을 내팽개치고 우리는 한평생 정신병원을 들락거려야 한다.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던 옛 마을이 간절히 그립다. 그들의 순한 얼굴들을 다시 보고 싶다.
  

 다라미질하는 아내 곁에서 아직도
 잉크로 원고를 쓰는 사람
 세계는 그를 노벨상 작가라 부르지만

 그를 키운 것 문학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아들이었음을
 어젯밤 뉴스에서 보았다

 뒤뚱거리는 불구아들의 손을 잡고
 험준한 산봉우리 오르는 동안
 장애아들을 이끄는 아버지의
 그 통렬한 힘으로 자신은
 저절로 산봉우리에 올라 있었다
    

                                            - 문정희, <상처를 가진 사람―오에 겐자부로> 부분     

 

 우리가 장애인들을 우리 모두의 부모형제로 품을 때, 우리의 정신은 ‘저절로 산봉우리에 올라’ 있게 될 것이다.

 사람을 키우는 건 상처이니까.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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