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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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감탄과 경외로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의 머리 위에 별이 총총히 빛나는 하늘이며, 다른 하나는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 - 임마누엘 칸트

  
 학창 시절에 ‘괘씸죄’가 가장 큰 중죄라는 걸 알게 되었다. 똑같이 잘못을 해도 누구는 가혹한 처벌을 받고 누구는 설렁설렁 넘어가는 선생님들의 법 집행을 보며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괘씸죄는 인류사 전체를 관통하는 ‘법의 정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다들 이런 소설의 서두가 충격적이라고 하는데, 사실 충격적으로 보는 그 시각이 충격적이지 않는가? 

 뫼르소의 이 생각 때문에 뫼르소는 결국 사형에 처해지게 된다. 법을 집행하는 검사는 뫼르소의 위법행위보다는 뫼르소의 부도덕한 행위에 관심을 집중한다.

 법치주의 국가 프랑스에서 뫼르소는 법을 어긴 죄인이 아니라 부도덕한 파렴치범이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전형적인 괘씸죄가 아닌가? 강의 시간에 엄마가 죽어서 운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 본 적이 있다.

 많은 회원들이 울지 않았다고 했다. 우는 척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렇다. 뫼르소는 우는 척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게 된 것이다.

 프랑스라는 국가 차원에서 볼 때, 우는 척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뫼르소는 가장 위험한 존재인 것이다.

 국가는 겉으로는 법치주의를 강조하지만 결국엔 국가권력에 위험한 존재인가가 처벌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뫼르소처럼 솔직하게 살아가면 국가가 유지되겠는가? 그래서 검사와 판사는 반역의 싹을 미리 잘라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크게 보면 법치주의는 괘씸죄의 유무를 가리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법의 정신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

 근대철학을 새롭게 정립한 철학자 칸트는 말했다. “감탄과 경외로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두 가지.... 나의 머리 위에 별이 총총히 빛나는 하늘이며, 다른 하나는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

 인간의 가슴에는 누구나 별처럼 빛나는 도덕법칙이 있다. 이 도덕법칙을 구현한 사람이 바로 고대 그리스의 안티고네다.

 그녀는 왕 크레온의 법에 맞서 죽음으로 항거했다. 왕은 꽤씸죄에 걸린 안티고네의 오빠를 장례지내지 못하게 했고 그녀는 가슴의 도덕률, 자연법으로 맞섰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실정법, 성문법만 법으로 알기 쉽다. 그런데 안티고네는 법조문보다 더 위대한 우리 가슴에 있는 법을 가장 중시했던 것이다.

 어느 시대나 권력자들은 정의와 법의 이름으로 공권력을 행사한다. ‘괘씸죄’가 되기 쉽다.

 중국 전국시대의 진나라는 법치주의 국가였다. 진시황은 귀족들에게는 법이 적용되지 않고 평민, 노예에게만 엄격하게 법집행이 되는 법 체제를 혁신했다.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하게 집행되는 진나라는 갈수록 강성해지며 결국엔 천하를 통일하게 된다.

 하지만 진나라는 진시황이 죽자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괘씸죄가 적용되며 망하게 된다.  

 현대 민주주의는 법치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법치주의가 괘씸죄를 넘어서야 진정한 법치주의가 될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 모두의 가슴에 실정법, 성문법을 낳은 도덕법칙, 자연법이 하늘의 별처럼 빛나야 할 것이다. 


 친구에 화나는 일이 있었다. 
 내놓고 말하니 화가 풀렸다. 
 원수에 화나는 일이 있었다. 
 잠자코 있으니 화가 자랐다. 

〔......〕

 그러자 나무는 밤낮으로 자라 
 빛나는 열매를 하나 맺었다. 
 원수는 빛나는 열매를 보고 
 주인이 나임을 알아내어서 

 어둠이 세상을 가리었을 때 
 내 뜰에 살며시 숨어들었다. 
 아침이 왔을 때 나는 기쁘게 
 나무 밑에 뻗은 원수를 본다. 

    
                                                   - 윌리엄 블레이크, <독나무> 부분 
           

 우리는 친구에게는 화가 나면 내놓고 말한다. 화는 풀린다. 원수에게는 화가 나도 잠자코 있게 된다.

 화는 자라나게 되어 있다. 언젠가는 원수를 죽이게 되어 있다. 원수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을 죽이게 될 것이다.

 말하면 되는데, 마음을 표현하면 되는데, 괘씸죄가 세상의 하늘 위에 검게 드리우고 있다.

 솔직히 말해도 되는 세상,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세상이 올 때까지 우리는 서로 죽고 죽이게 될 것이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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