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주적’ 타령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4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차기 정부의 외교안보 원칙을 제시하며 한국의 주적은 북한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인터뷰에서 윤 당선인은 북한을 주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로 △북한이 모라토리엄을 파기하고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한 것 △고조된 북핵 위협 등 두 가지를 들었는데, 다소 엉뚱하다는 생각도 든다. 윤 당선인은 대선 유세 때도 ‘주적=북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어쨌든 철지난 주적론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 주적(主敵)이란 문자 그대로 ‘주가 되는 적’으로, 한 국가에 대한 주된 안보위협국을 말한다. 그런데 주요 국가들은 주적 개념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강대하고 또 그 힘으로 세계의 헌병 역할을 자처하는 미국은 마음에 들지 않는 국가를 언제든지 쳐야겠기에 주적을 가장 많이 쌓아두고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미국은 특정 국가를 지칭해 주적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다만 잠재적 안보위협국가로 분류하고 있는 정도라고 한다. 물론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아들 부시 대통령은 한때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부른 적도 있었다.

◆ 이에 비해 남측에서 주적 논쟁은 유명하다. 1994년 북측의 이른바 ‘불바다’ 발언으로 국방부는 [1995년 국방백서]에서 ‘주적은 북한’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어 노무현 정부 때 주적 논쟁이 일었다가 국방부는 [2004년 국방백서]에서 ‘주적’을 삭제했다. 이후 공식적으로 주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 왔다. 그러다가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 때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주적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금 국방백서에는 북측 주민과 정권·군을 분리해, 북측 정권과 군을 상대로만 ‘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종섭 국방장관 후보자의 기세로 보아 윤석열 정부 국방백서에 ‘주적은 북한’이라는 개념이 다시 담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북측도 얼마 전 ‘주적’ 문제를 들고 나왔다. 4월 초 서욱 국방부 장관의 ‘선제타격’ 발언에 대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우리는 이미 남조선이 우리의 주적이 아님을 명백히 밝혔다”면서 “다시 말하여 남조선군이 우리 국가를 반대하는 그 어떤 군사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공격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남조선을 겨냥해 총포탄 한발도 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굳이 북측이 주적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남측보다는 미국을 겨냥하는 게 맞을 듯하다. 북한은 일찍부터 미국을 향해 ‘철천지 원쑤’, ‘불구대천의 원수’라 불러오지 않았는가?

◆ 사실 북한의 주적이 미국인 적이 있었다. 그것도 최근에. 2021년 1월 초 노동당 제8차대회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사업총화 보고를 통해 “대외정치활동을 우리 혁명발전의 기본장애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시켜나가야 한다”고 발언했다. ‘주적=미국’이라 지칭한 것이다. 그런데 김 총비서는 그해 10월 평양에서 열린 국방발전전람회의 개막식에서는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며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라고 천명했다. 주적이 미국에서 ‘전쟁’으로 바뀐 것이다. 북한도 주적 개념 사용에 있어 고심을 하고 있다는 징표이다. 이런 판에 남측이 ‘주적=북한’이라며 주적 타령을 하면 북측이 어찌하겠는가? 초장부터 윤석열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우려되는 이유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