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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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삶은 살아야하는 신비이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 장자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그의 저서 ‘호모사케르’에서 인간의 생명을 두 개로 나눠서 설명한다.

하나는 조에(Zoé), 또 하나는 비오스(Bíos)다. 조에는 ‘생물학적 삶’을 말하고 비오스는 ‘정치적 삶’을 말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정치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살기 위해 태어났지만 정치를 통해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국가의 정치권력이 한 인간의 비오스, 정치적 삶을 박탈하면 어떻게 될까? ‘벌거벗은 삶’이 되어버린다.

아감벤은 ‘벌거벗은 삶’을 ‘살해는 가능하되 희생물로 바칠 수 없는 생명’으로 정의했다. 제사의 희생재물로도 쓰일 수 없는 인간인 것이다.

‘살아 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닌 인간’이 되어버릴 때, 인간은 어떻게 될까? 아감벤은 현대정치권력은 ‘벌거벗은 삶’을 통해 인간을 통치한다고 말한다.

언제 직장에서 목이 날아가 노숙자가 될지 모르는 공포. 노숙자가 되지 않더라도 직장이 없는 인간은 세상에서 인간 취급을 하지 않는다.

이 공포로 우리는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면서’ 살아간다. 우리는 자발적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고대 중국의 현자 장자는 말했다. “삶은 살아야하는 신비이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산다는 건, 무한한 신비가 아닌가? 이 사회가 규정하는 ‘정치적 삶’이 없어도 우리는 몸뚱이만으로도 찬란한 삶이 가능하지 않는가?

장자가 복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을 때, 초나라 왕이 대신을 장자에게 보내 자신의 뜻을 전하게 했다.

대신이 말했다. “왕께서는 선생님이 나라의 정치를 맡아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장자는 낚시를 계속하며 뒤돌아보지도 않고 물었다. “초나라 왕은 죽은 지 삼천 년이 된 거북껍질을 상자 안에 넣고 비단으로 싸서 조상의 사당에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고 들었네. 그 거북은 죽어서 껍질이 귀하게 되기를 원했겠는가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자유롭게 노닐기를 원했겠는가?” 대신이 대답했다. “진흙 속에서 자유롭게 노닐기를 원했겠지요.” 장자가 말했다. “그럼 돌아가게. 나는 앞으로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자유롭게 노닐 것이네.”

장자는 인간을 조에와 비오스로 나누는 이분법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그는 세상이 부여하는 비오스에 대한 폭력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장자는 비오스가 없는 ‘벌거벗은 삶’으로 살아갔을까? 그는 지금까지 세상이 알아주는 성인으로 살아 있지 않은가?

비오스를 거부하고 조에로 살았지만, 조에와 비오스 모두 완벽하게 실현한 장자. 그는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현대인에게 온 몸으로 길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세상이 부여하는 비오스, 정치사회적 삶이라는 짐을 거부해야 한다. 비오스의 짐을 잔뜩 지고 한 평생 사막을 오가는 낙타의 삶에서 단호히 벗어나야 한다.

니체가 말하는 사자가 되어야 한다. 등에 짐을 얹어주는 세상을 향해 포효하며 짐을 떨쳐 버려야 한다.

사자가 되면 인간의 정신은 상승한다. ‘아이’로. 니체는 아이를 ‘순수이며 망각이다. 새로운 시작이며 유희이다.’고 말한다. 장자의 경지다.

우리의 정신이 사자를 거쳐 아이가 되어 가면 놀이와 일이 하나가 된다. ‘저절로 굴러가는 바퀴’로 살아가면, 비오스가 저절로 따라온다. 장자처럼.

 

쥐가 꼬리로 계란을 끌고 갑니다 쥐가 꼬리로 병 속에 든 들기름을 빨아먹습니다 쥐가 꼬리로 유격 훈련처럼 전깃줄에 매달려 횡단합니다〔......〕쥐가 물동이에 빠져 수영할 힘이 떨어지면 꼬리로 바닥을 짚고 견딥니다 30분 60분 90분 -쥐독합니다 그래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삶은 눈동자가 산초 열매처럼 까맣고 슬프게 빛납니다

                                                                        - 함민복, 《샐러리맨 예찬》 부분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삶’이 우리의 지상 목표가 되었다. 비오스의 환상 때문이다.

우리는 집단 최면에 결려있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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