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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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법의 형태가 아닌 그 정신이 정의를 살아있게 한다.      - 얼 워렌

 

‘정의는 강자의 이익’에 불과한 것이라는 소피스트에 맞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정의를 세우려했다.

철기시대였다. 부족을 넘어서 국가가 건설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국가에 걸 맞는 정의는 서있지 못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 내면에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항상 아고라 광장으로 갔다.

그는 마주치는 사람들과 정의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며 상대방의 내면에 있는 ‘이성(理性 logos)’을 스스로 깨닫게 했다.

그는 소리쳤다. “너 자신을 알라!” 너의 내면에 진선미(眞善美)를 알 수 있는 힘이 있다. 너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알아라!

그는 정의는 어떤 율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아테네 시민의 깨어 있는 정신만이 정의를 살아있게 할 수 있다!’

예수도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율법을 깨러온 게 아니라 세우려왔다.”

굳어진 율법에 얽매인 기존 교단에 의해 예수는 결국 율법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십자가에 매달리게 되었다.

법만 있고 시민의 정신이 없는 사회에서는 지식장사꾼 소피스트가 말했듯이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 되어버린다.

인도의 경전 ‘마하바라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힘은 정의에 우선한다. 정의는 힘에서 비롯된다. 정의는 생명이 흙에 의지하듯 힘에 의지한다.’

마하바라타가 씌어 진 시기도 철기시대다. 부족들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 시기에 정의를 세우는 법에 대해 말한 것이다.

‘국가 구성원들이 힘을 갖지 못하면 정의는 세워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도덕률들을 보자.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등등.

이런 도덕률들을 어기고도 법망을 피해가는 강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을 어떤 법으로 막을 것인가?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끝까지 인간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독배를 마셔야 하는 형벌에 처해져서도 아테네의 법과 제도를 존중하며 태연히 죽어갔던 것이다.

그는 죽어서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 네 안에서 항상 이성의 빛이 비치고 있음을 잊지 말라!

스승의 죽음을 목도한 플라톤은 조국 아테네를 떠나 천하를 떠돈다. 그러다 수학자 피타고라스를 만난다.

그는 수학을 통해 인간의 정신을 깨우리라는 믿음을 갖고 아테네로 돌아온다. 아카데미아를 세우고 시민들의 이성을 깨우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법으로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위험한 생각이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장을 지낸 얼 워렌은 말했다. “법의 형태가 아닌 그 정신이 정의를 살아있게 한다.”

깨어있는 시민이야말로 정의를 바로 세우는 힘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강자의 이익인 정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정의를 바로 세우는 힘’을 가져야 한다. 코로나 19에서 우리는 어떤 지혜를 얻었을까?

우리는 여전히 ‘정의는 강자의 이익’에 맞서 공동체의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살아남은 자의 슬픔》 부분

 

찰스 다윈은 생명체 진화의 원리를 ‘적자생존’이라고 했다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결국 살아남아 강자가 되는 건가?

우리의 깊은 내면에는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래서 살아남아도 부끄러운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이 우리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힘이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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