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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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훌륭하다는 사람을 숭상하지 말라.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없어질 것이다. - 노자

 

한 때 유행했던 노래 가사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산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대입 재수생인 외종 사촌형과 같은 방을 썼다. 그 형은 잠을 자지 않았다. 짬짬이 꾸벅꾸벅 조는 게 잠이었다.

그렇게 공부해서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대학으로 칭송받는 ㅅ 대학에 들어갔다. 그 형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참 독하군,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 대학에 못 들어가도 잠을 자야지.’

현대 철학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의 저서 ‘선악의 피안’에서 말했다. “우리가 ‘보다 높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잔인함의 정신화와 심화에 근거하고 있다.”

최고의 대학에 들어가는 데도 잠을 자지 말아야 하거늘, 하물며 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은 얼마나 ‘잔인함의 정신화와 심화에 근거’하고 있을 것인가?

우리는 생각한다. ‘그들은 그렇게 힘들게 노력을 했으니 그만큼 대접을 해 줘야지.’ 하지만 고대 중국의 현자 노자는 이런 생각에 반대했다.

‘훌륭하다는 사람을 숭상하지 말라.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없어질 것이다.’

원시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들은 사냥을 할 때는 사냥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앞장을 섰다. 하지만 사냥이 끝나면 그는 평등한 부족의 한 일원이 되었다.

전쟁을 할 때는 가장 잘 싸우는 사람이 사령관을 했다. 하지만 그가 큰 공을 세우더라도 전쟁이 끝나면 그는 평등한 부족의 한 일원이 되었다.

우리는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럼 그들이 세운 공은 어떻게 되는 거야?’ 문명인인 우리는 원시인들의 삶이 뭔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누가 공을 세울 때마다 그를 떠 받들게 되면 공동체 사회는 어떻게 될까?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사는 세상’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들은 서로 사분오열되어 서로를 적대시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들의 하늘에 가득 서려있던 사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사는’ 우리 사회는 어떤가? 갈가리 찢어진 우리의 마음은 서로에게 칼날이 되고 있지 않는가?

사람은 각자 다양한 재능을 타고 태어난다. 사람은 그 재능을 활짝 꽃피워야 한다. 하지만 그 꽃의 향기는 모두 함께 맡아야 한다. 열매도 같이 나눠야 한다.

우리 사회가 살기 힘든 이유는 어느 특정한 재능만 키우게 하고, 그 재능을 활짝 꽃 피운 사람들의 향기와 열매를 자기들끼리 독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다 불행하다. 사람은 ‘유적존재(類的存在)’다. 타고나기를 더불어 함께 살게 되어 있다. 끼리끼리 사는 사회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잔인하게 꽃 피워가야 한다. 그러면 더 나은 사람에게 복종하고 싶어진다. 더 나은 사람에게 지배를 받지만 그것은 사랑의 손길이다.

니체는 약자가 스스로 약자임을 인정하지 않고, 강자를 악한자로 만들고 자신들을 선한자로 포장하는 약자들의 정신승리법을 비판한다.

사람은 타고난 재능이 다 달라, 상황에 따라 강자와 약자가 바뀐다. 그는 강자는 약자를 지배하고 약자는 강자에게 복종하는 문화를 ‘보다 높은 문화’로 본다.

강자가 약자를 폭력적으로 지배하고 복종시키는 현대사회는 강자와 약자의 아름다운 지배와 복종이 있는 원시공동체사회에 비해 ‘보다 낮은 문화’일 것이다.

‘지배와 복종’이라는 단어가 우리 귀에 거슬리는 건, 우리가 그만큼 모래알처럼 흩어져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 한용운, 《복종》 부분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지독한 나르시스트다. 그는 곁눈으로 슬쩍 슬쩍 훔쳐본다. ‘누가 나를 알아봐주지 않나?’

현대자본주의는 고도의 생산을 한다. 또한 그만큼의 고도소비를 부추긴다. 우리는 각자 고도의 소비를 즐기며 자유롭게 산다는 착각을 한다.

다들 홀로 잘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서로 지배하고 복종하는 생명체의 오묘한 신비를 잃어버렸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만인이 만인의 적인 생지옥이 되어버렸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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