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우 / 사진가

 

지난 12월 20일 윤석열 후보의 백골OP 방문에 대해 유엔사는 12월 22일 심각한 성명을 발표했다.

‘전방사단이 법적지시를 준수하지 않고…유엔사승인을 받지 않은 추가인원들이 비무장지대를 출입하도록 했다’며 ‘유엔사령관은 해당위반사건의 근본원인을 파악하고 한국정전협정준수를 저해하는 행위와 민간인을 필요이상의 과도한 위험에 처하게 하는 행위의 재발방지를 위해 조사에 착수하고’ ‘조사가 완료되면 정전협정 및 대한민국정부와 체결한 기존합의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윤 후보는 눈앞의 북한이 아닌 등 뒤의 유엔사에게 얻어맞은 꼴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윤 후보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대선후보들의 전방시찰은 예외없이 이뤄지는 필수일정 중의 하나이므로 모든 후보들이 이같은 꼴을 당할 것이다. 이미 전 통일부장관의 GP 방문을 불허하고 기자들의 판문점취재를 가로막았던 유엔사가 결과적으로 정치판에 뛰어든 것이다. 유엔사의 주권침해가 점입가경이다.

1. 유엔사가 주장하는 ‘법’

유엔사는 백골사단이 자신들의 ‘법적지시’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했다. 2018년 6월 10일 미 합참은 유엔사에 한국군에 대한 정전관련 ‘지시’권한을 하달했다.1) 한국군을 지휘관계에 있는 것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가짜‘유엔사’해체국제캠페인」의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대한민국은 ‘유엔사회원국’이 아니며, 한국합참과 유엔사는 상호지원 및 협조관계일 뿐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2) 국군은 유엔사의 ‘지시’관계 하에 있지 않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입장은 유엔사측에도 이미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3) 그런데도 2019년판 『유엔사규정551-4』에 한국군에 대한 ‘지휘권자’4)라고 명시한데 이어 이번에도 ‘지시’운운한 것은 국방부에 대한 노골적인 도발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번 유엔사성명에서 주목할 점은 ‘지시’의 성격을 ‘법’적이라고 규정한 점에 있다.
법률은 국민전체의 권리와 의무를 창출하는 헌법수단이다. 군대조직이 법을 제정할 수 있는 것은 계엄하에서 뿐이다. 더구나 외국군대인 유엔사에 ‘법’제정권한을 한국헌법은 부여한 적이 없다. 이는 유엔사가 헌법을 중단시키는 점령상태에서나 가능하다. 그러니 ‘법적지시’를 할 권한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유엔사가 말하는 ‘법적지시’는 비무장지대에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비무장지대가 유엔사의 법적지시에 의해 관할되고 있는 곳이라면 유엔사는 한국헌법을 유린하고 독자적인 관할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반국가단체란 말이 된다. 설마 그럴리야 없겠지만 그렇게 오해받을 만한 표현을 한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해명해야 할 것이다.

비무장지대는 정전협정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한국정부는 이에 서명한 바 없다. 국제법은 국내법으로의 전환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국내에서의 법적지위는 부존재 한다. 그래서 국제법은 결과적으로는 국내법인 것이다. 정전협정은 법규형식상 조약이 될 수 없고, 국내법으로 비준된 바도, 비준될 수도 없다. 국내법으로의 변형과정이 없었으므로 그에 따른 이행법령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지금까지 정전협정에 대해서는 오직 한국군의 자발적 협조가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2019년 판 『유엔사규정551-4』는 한국군과의 협력을 강화한다며 정전협정위반조사부분을 완전히 새롭게 개정하기까지 하였다. 사안에 따라서 한국군에게 조사권을 주는 내용이다. 그런 한국군을 조사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한국군으로서도 황당한 상황이다. 한국군이 자발적 협조를 중단하면 정전협정과 한국군 간에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게 된다. 그런데 이같은 현실을 오인하고 유엔사는 정전협정이 법이라고 착각한 모양이다. 착각은 자유이나 말로 내뱉어 졌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다면 정전협정 자체를 살펴보자.
정전협정 제8항에 의해 유엔사령관은 모든 군인과 민간인에 대한 비무장지대출입 허가권을 가지고 있으며 제13항 ㅁ목에 의해 정전협정위반에 대한 처벌권을 갖는다. 출입금지가 소극적 권한이라면 처벌은 적극적 권한이다. 현재 철조망과 경계초소와 전망대 안보견학장은 대부분 비무장지대 안쪽에 설치되어 있기에 정전협정대로라면 철책근무조나 전망대관광객은 출입할 때 마다 유엔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 매일 정전협정위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엔사는 정전협정을 시행할 행정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비무장지대에 대한 출입실무는 한국군의 자발적 협조가 없으면 유엔사로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군이 모든 출입을 승인받지도 않으며, 받을 수도 없다. 한국군으로서도 이들 업무는 과도한 행정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다.

협정을 위반했다면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정전협정위반에 대해 처벌할 수 없다면 그것은 도덕적 규정이지 법적규정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13항 ㅁ목은 처벌대상을 ‘각자의 지휘하에 있는 인원’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유엔사가 민간인을 지휘하진 못하니 우선 민간인은 처벌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다. 또한 한국 국방부는 공식적으로 한국이 유엔사회원국이 아님을 발표하였음으로 유엔사의 지휘하에 있지 않고 따라서 한국군도 처벌대상에서 제외된다. 유엔사령관은 출입을 금지시키는 소극적 권한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법철학자 페너에 의하면 처분권이란 사람들의 개입을 배제시킬 권리이다.5) 유엔사령관은 자신의 권한에 대한 개입의 배제를 요청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군의 협조가 없으면 그 요청을 실행할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즉 한국군이 유엔사권한의 상당부분에 개입된 상태이다. 따라서 유엔사령관의 처분권은 결코 배타적 권능을 갖지 못한다.

그럼 1954년 11월 17일 한미합의의사록 2항에 유엔사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이양한 조항이 문제될 것이다. 국방부가 유엔사회원국이 아님을 천명한 것은 이 조항에 대한 거부의사를 보인 것으로 파악될 것이다. 그러나 유엔사작통권이양 조항이 유효하다 해도 정전위반에 대한 처벌은 군령권이 아닌 군정권 행사이므로 역시 처벌은 불가능하다.

권리는 권능에 의해 실행된다. 권리와 권능이 항상 일치하진 않는다. 권능이 작용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 권리는 적용되지 않는다. 현대 법철학자 벤슨에 의하면 ‘책임이 있는 곳에 권리가 있다.’6)고 했다. 유엔사에 권능이 없다면 권리도 없다.

따라서 유엔사령관의 권한은 결코 배타적 지위를 가질 수 없다. 이는 유엔사가 비무장지대에 유엔사직할부대를 배치하고 군사법정을 설치하여 협정에 의해 부여된 권리를 행사하고자 할 때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한국군이 유엔사회원국이 아닌 이상 한국군에 대해 정전협정은 유엔사령관에게 어떤 법적 권능도 부여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유엔사가 헌법을 능가하는 권력을 가진 것처럼 생각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음은 『유엔사규정』을 살펴보자.
유엔사는 정전협정과 별개로 『유엔사규정 551-4』에 의해 비무장지대를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유엔사내부규정일 뿐 한국의 법이 아니다. 유엔사규정을 지킬지 말지는 유엔사내부에서나 논쟁하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유엔사규정551-4』는 정전협정위반을 곳곳에서 명문화하고 있다. 눈에 두드러지는 위반은 비무장지대 내 중화기 반입규정이다. 또한 정전협정위반에 대한 조사권을 유엔사군정위에 부여하고 있는데 이 역시 뒤에서 상술하듯 정전협정위반이다. 『유엔사규정551-4』개정의 역사는 정전협정위반에 대한 사후승인의 역사이다. 『유엔사규정』이야말로 유엔사가 상습적이고 지능적이고 체계적인 정전협정위반자로서 탄핵되어야할 핵심증거물인 것이다.

유엔사령부는 스스로를 처벌해야 한다. 따라서 스스로도 지키지 않는 정전협정을 한국민을 향해 ‘법적지시’ 운운하며 지키라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유엔사령부자신의 중대한 정전협정위반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사소한 위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그래서 정치적이다. 실수이든 착오이든 ‘법적지시’ 운운하는 순간 유엔사는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은 것이다.

2. 유엔사의 정전협정위반 조사·조치는 가능한가?

유엔사는 ‘정전협정준수를 저해하는 행위에 대한 조사’를 하겠다고 했다. 『유엔사규정551-4』(2019)는 정전협정위반에 대한 조사권을 유엔사군정위가 갖는 것으로 명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정전협정 제17항에는 적대 쌍방사령관들이 ‘군사정전위원회’와 협력하도록 되어 있지, 유엔사군정위나 인민군군정위와 협력하도록 되어있지 않다.7) 정전협정위반에 대한 조사와 처리권한은 정전협정 제24항, 제27항에 의해 군사정전위원회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듯이 94년 5월 29일 인민군이 군사정전위원회 폐쇄를 통보함으로서 군정위는 사라졌다. 유엔사군정위가 군정위의 절반이니 절반만의 효력이라도 가진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이 유엔사군정위와 중립국감독위원회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런 희망적 사고의 반영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전협정에서 군정위는 쌍방에 의해서만 성립되도록 규정되어 있다. 쌍방구성의 의미는 원운동과 같다. 원심력이 없으면 구심력도 없다. 원심력만으로 원운동의 절반잔여부분을 구성하지 못하듯 유엔사군정위만으로 군사정전위의 절반잔여부분을 유지할 수 없다. 따라서 유엔사군정위는 군정위와 무관한 효력무효의 기구인 것이다.

군정위가 무효화되자 유엔사는 궁여지책으로 대안을 찾아냈다. 정전협정 제25항 ㅈ목에 군정위의 역할로서 쌍방사령관의 통신을 중개하는 기능이 있는데 여기에는 다른 방법의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예외규정이 있다. 이 규정을 이용하여 유엔사는 군정위가 아닌 다른 채널로 통신을 유지하고 있다. 유엔사는 이로서 무효화된 군정위의 잔여부분을 계속이행 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군정위와 무관한 그저 ‘다른’ 소통채널일 뿐이다. 인민군군정위가 복귀하지 않는 한 유엔사군정위는 군정위의 잔여부분이 아니다. 따라서 유엔사군정위의 단독조사는 군정위의 조사권과는 무관한 것으로 정전협정위반이다. 조사를 굳이 하고 싶으면 인민군과 상의하여 군정위를 복원시키면 된다. 그런 뒤에 조사권한을 주장하면 그것은 정전협정상으로는 타당할 것이다.

3. 유엔사가 ‘대한민국정부와 체결한 합의’는 무엇인가?

유엔사는 정전협정과 ‘대한민국정부와 체결한 기존합의’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위에서 보았듯 정전협정에 의해 유엔사가 할 일은 없다. 그럼 ‘대한민국정부와 체결한 합의’는 무엇일까? 정부가 합의당사자라면 조약일텐데, 대한민국이 당사국으로서 비무장지대에 대하여 유엔사와 체결한 합의 따위는 없다.

단 합참과 유엔사간의 기록각서들이 있을 뿐이다.8) 이들은 기관간 합의이지 정부간 합의가 아니다. 이중 문제되는 각서는 2011년 한민구-셔먼 각서이다. 아래에 원문을 공개한다.

정전관리책임에 대한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와 유엔군사령부간의 기록각서(2011.10.24.)

1. 2011년 5월 26일 상설군사위원회에서,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전의 정전관리책임과 권한에 대해 논의 후 한미 양측은 대한민국 합참의장과 유엔군사령관이 서명할 기록각서 작성을 합의하였다. 2011년 10월 24일에 대한민국 합참의장과 유엔군사령관은 「전략동맹 2015」에 의거 동맹의 정전관리에 관하여 토의하였고,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2. 대한민국 합참의장과 유엔군사령관은 공동으로 :
가. 정전협정과 관련약정 및 전략지시 제2호에 명시된 유엔군사령관의 정전관리 책임과 권 한을 인정한다.
나. 정전관리는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책임임을 인식한다.
다. 정전협정을 지속적으로 이행하고 준수할 것을 확인한다.

3. 본 기록각서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전까지 유효하며, 국제법상의 법적권한과 의무를 창출하지 않는다.

4. 본 기록각서는 한글과 영어로 작성되며, 양본은 정본이다.

한 민 구                                  제임스 D. 서먼
육군 대장                               육군 대장
합동참모본부 의장                유엔군사령관
대한민국                                미 합중국
2011년 10월 24일               2011년 10월 24일

자료1 정전관리책임에 대한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와 유엔군사령부간의 기록각서(MFR between ROKJCS and UNC on AMR, 2011.10.24)

유엔사는 이 기록각서를 체결한 이후 『유엔사규정551-4』를 개정하는 등 법석을 떨었다. 2015년 판 『유엔사규정551-4』는 이전까지 지상구성군사령부의 책임이었던 정전업무를 한국 합참의장의 책임으로 넘기는 내용이었다.

자료2. 『유엔사규정551-4』(1986판), p.2. 육지부분에서의 정전업무책임자는 연합사지상구성군사령관으로 명기되어 있다. 2003년판에서도 이 내용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런데 1986년판에서는 놀랍게도 정전협정유지범위에 북한의 육지가 포함된다. 이는 북한을 점령지로 규정하는 것으로 정전협정 제14항의 명백한 오해이다. 2003년판에서는 이같은 오류가 바로잡힌다. 남한의 육지로 정정된 것이다.

아마 유엔사는 이를 근거로 법적지시 운운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각서 3항에 명시하고 있듯 이 각서는 ‘국제법상의 법적권한과 의무를 창출하지 않는다.’ 이 각서는 한국정부에 어떤 법적의무도 부여하지 않으며 한국은 정전협정준수에 대해 어떤 법률적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 따라서 『유엔사규정551-4』에서 합참의장책임조항을 삭제토록 함이 합당할 것이다.

이 각서를 인정할 필요도 없지만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살펴는 보자. 각서 2항 가)는 유엔사령관의 책임과 권한만 언급했을 뿐 유엔사군정위의 책임과 권한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유엔사군정위는 유엔사령관 산하기구지만 군정위의 구성부분이기도 하다. 군정위의 조사업무에 대해 유엔사군정위는 무효이기에 사령관도 군정위관련 조사권을 행사할 수 없다. 또한 정전협정은 적대일방인 유엔사령관에게 직접 정전협정위반을 조사·조치할 권한도 주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유엔사령관이나 유엔사군정위는 이 각서에 의해서라도 정전협정상 조사나 조치를 실행할 수 없다.

이 각서는 전작권전환 이전까지 매우 일시적으로만 유지되는 것을 상정하고 있었다. 당시는 2015년에 전작권전환 완료를 약속하고 있던 때였다. 2015년 전작권전환에 실패했다면 2015년 전환을 전제로 체결한 이 각서는 일단 폐기됨이 마땅할 것이다.

한민구 의장이 유엔사재활성화차원의 작업임을 간파하지 못하고 별 생각없이 체결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유엔사는 이 각서를 합참의 취지와는 달리 무언가에 이용하려하고 있다. 이런 각서 하나가 문제된다면 합참은 폐기를 통보함이 적절할 것이다.

4. 비무장지대에 대한 유일한 법적문서는 9.19남북군사합의서

위에서 본바와 같이 한국정부의 입장에서 정전협정의 법적지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한국법령도 정전협정준수를 명시하고 있지 않다. 정전협정준수는 협정을 체결한 북-미간의 의무사항일 뿐이다.9) 그럼에도 한국정부는 미국의 정전협정업무에 자발적으로 협조해 온 것이다.

한국정부로서도 2018년 9월 이전까지는 남북정전위기에 대비할 별다른 대안이 없었고, 유엔사에 의존하는 것이 불가피한 현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남북이 직접 정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2018년 9월 19일 남북군사합의서를 체결하였고 한달 뒤엔 국무회의에서 비준되어 대한민국전자관보에 게재됨으로서 발효되었다. 즉 국내법령이 된 것이다. 정전협정을 대체할 확고한 법적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그리고 합의서상으로는 정전협정을 대체했다.

9.19남북군사합의서에 의하면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4개의 중요사업에 대해 정전협정을 준수한다는 내용이 없다.

예를들면 정전협정 제13항 ㅂ목은 “죽은 군사인원의 시체를 발굴하고 또 반출하여 가도록한다. 상기 사업을 진행하는 구체적 방법과 기한은 군사정전위원회가 이를 결정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9.19남북군사합의서 붙임3의 제3조1항은 “쌍방은 대령급을 책임자로 하여 각각 6명씩의 유해발굴 공동조사 및 현장 지휘조를 구성한다.”고 명시했다. 어디에도 유엔사나 정전협정에 대한 언급이 없다. 오직 남북 쌍방이 법적주체로 명시되어 있을 뿐이다.

심지어 유일하게 유엔사란 이름이 거명된 판문점비무장화에 대해서조차 남·북·유엔사를 포함한 삼자협의체를 꾸리기로 했지만 정전협정준수나 유엔사의 정전협정상 지위에 대한 언급은 전무하다.

나아가 통일부는 9.19남북군사합의서 이행법률로서 「비무장지대의 보전과 평화적 이용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었고 국회계류 중이다. 한강하구법과 서해5도법도 준비 중에 있다. 한미군사연습을 실행함으로서 9.19남북군사합의서에 결정적인 균열이 생긴 건 사실이지만 합의서는 이행되고 있다.

비무장지대와 한강하구에는 유엔사가 주장하는 관할권과 국내법령이 된 9.19남북군사합의서의 관할권이 팽팽히 대치하고 있다. 정부가 이러한 긴장을 드러내려하지 않아도 유엔사가 나서서 긴장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유엔사는 백골OP에 주둔하고 있다가 윤석열 후보의 방문을 목격한 게 아니다. 신문기사를 보고 뒤늦게 ‘인지’한 것이다. 유엔사는 평택기지에 앉아서 보도자료 한 장으로 한국정부를 협박을 하고 있을 뿐 비무장지대 현장에서 정전협정위반을 감시할 인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합참은 목숨을 걸고 교전규칙을 운영하는데 유엔사는 사후에 유엔사교전규칙을 위반했다고 팩스로 지적질을 할 뿐이다.

9.19남북군사합의서는 국내법령이지만, 정전협정은 국내법이 아니다. 이 말은 9.19남북군사합의서를 위반하면 국방장관이 처벌되지만, 정전협정을 위반한다고 해서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9.19합의서가 국내법령으로 발효되는 순간 한국군은 돌아갈 다리를 끊은 것이다. 유엔사에 의존하던 지난날의 관계를 끊었고, 유엔사를 핑계로 자신의 할 일을 방기하던 무책임을 끊었다. 유엔사의 회유와 반발의 변덕이, 예상했지만 강력하다. 유엔사가 관할권을 주장은하나 정작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 유엔사는 절박하다. 한국군도 절박하다. 더 간절한 자가 상대를 설복시킬 수 있다.

비무장지대는 그동안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공백지대와도 같았다. 9.19남북군사합의서는 주권을 되찾는 작은 건국운동과도 같다. 과거잔재로부터의 위협이 거세지만 이 선택은 분명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다.

당분간 비무장지대와 한강하구에서 유엔사와 합참의 관할권이 병존하거나 긴장하거나 충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충돌은 피하고 조절을 통해 병존하는 길을 찾길 쌍방이 희망하나 때로는 책상을 치고 나오는 결기도 요구된다. 그래야 오히려 유엔사와의 관계도 새롭게 조정되어 갈 것이다.

평화헌법의 의미가 알려지지 않았을 때 일본사상계의 거두 마루야마 마사오는 평화헌법알리기 운동을 펼쳤고 지금 『일본국헌법』은 아무런 의심없이 『평화헌법』이라 불린다. 당시 그 장면을‘평화헌법이라는 경전을 앞세운 마루야마 사제가 그의 신도들을 이끌고 평화를 전도했다’고 묘사한다.

우리도 「9.19남북군사합의서』를 경전으로 앞세우고 사제와 신도가 되어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을 전도했다고 말하게 하자.


주>

1) 미 합참 유엔사 관련약정 및 전략지침 제 5b항. 유엔사령관은 “1953년 체결된 한국 정전협정의 제반조항을 이행한다. 이를 위해 유엔군사령관은 한반도와 그 인접수역에서 작전활동을 하는 모든 미국, 한국 및 유엔사 군 병력이 정전협정을 준수하도록 정전관련 지시를 하달하고 절차를 수립할 권한을 갖는다.(2018.6.10) (『유엔사규정551-4』(2019) p.54인용) 이 문건은 전략지침이 추가되었을 뿐 1983년 문건과 거의 유사한 내용이다.

미 합참 유엔사 관련약정: 제3항 b. 유엔사령관은 “정전협정 준수를 보장할 책임을 포함 정전을 유지할 유일한 권한을 갖는다. 이를 위해 유엔군사령관은 한반도와 그 인접수역에서 작전활동을 하는 모든 미국, 대한민국 및 유엔사 군병력이 정전협정을 준수하도록 정전관련 지시를 하달하고 절차를 수립할 권한을 갖는다.”(1983.1.19.)

따라서 유엔사의 입장이 특별히 바뀐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뀐 점이 있다면 한국 국방부가 드디어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는 사실이다.

2) 원문은 다음과 같다. “국방정책에 깊은 관심을 갖고 민원을 신청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귀하께서 신청하여 주신 유엔사관련 민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변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은 6.25전쟁의 당사국으로서 ‘유엔사회원국’이 아닙니다. 또한 대한민국합동참모본부와 유엔군사령부는 상호지원 및 협조관계로서 정전협정의 충실한 이행을 통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전쟁재발방지를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합참 교전규칙과 유엔사 정전교전규칙 관련내용은 군사비밀로서 답변이 제한됨을 양해바랍니다. 소중한 민원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며 본 민원 답변내용에 대해 추가 문의사항이 있으실 경우 국방부 대북정책관실북한정책과에 전화주시면 친절히 안내드리겠습니다. 귀댁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끝” (가짜‘유엔사’해체국제캠페인의 질의에 대한 국방부 답변서 2021.8)

3) 「“유엔사 확대하려면 한국 동의 필요하다” 정경두 국방, 미국 외 회원국들에 입장문」, 『경향신문』2019.10.14.

4) “유엔군사령관은(한국군포함, 자신의 지휘하에 있는 모든 병력을 대표하여) 정전협정에 대한 유엔사측 지휘권자로서 정전협정의 완전한 준수에 대한 책임이 있다.” 『유엔사규정551-4』(2019) 제8장 정전유지활동. 8-1 권한.

5) J.E. Penner, The Idea of Property in Law, (Clarendon Press, 1997), p.73참조

6) Peter Benson, "Philosophy of property of Law", The Oxford Handbook of Jurisprudence & Philosophy of Law, eds. Jule Coleman and Scott Shapiro, (Oxford Uni. 2002), pp.763-766참조

7) 정전협정 제17항. “본 정전협정의 조항과 규정을 준수하며 집행하는 책임은 본 정전협정에 조인한 자와 그의 후임 사령관에게 속한다. 적대 쌍방 사령관들은 각각 그들의 지휘하에 있는 군대 내에서 일체의 필요한 조치와 방법을 취함으로써 그 모든 소속 부대 및 인원이 본 정전협정의 전체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는것을 보장한다. 적대 쌍방 사령관들은 호상 적극 협력하며 군사정전위원회 및 중립국감독위원회와 적극 협력함으로써 본 정전협정 전체 규정의 문구와 정신을 준수하도록 한다.”

8) 비무장지대와 관련한 합참과 유엔사간 합의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대한민국육군과 주한미군 간 비무장지대 항공표식물 상호지원에 관한 주한미군사령관과 대한 민국육군참모총장 사이의 합의 각서.
2. 대한민국육군 제1사단과 유엔사 공동경비구역 경비대대 간의 합의각서, 2003년 8월.
3. 정전관리책임에 대한 대한민국합동참모본부와 유엔군사령부 간의 기록각서, 2011년 10월 24일.
4. 한국정전협정의 현행 예외사항에 대한 대한민국합동참모본부와 유엔군사령부 간의 기록각서, 2014년 7월 17일 (비무장지대내 중화기 반입허용)
5. 비무장지대 내 인가된 한국 정전협정 예외사항에 대한 유엔군사령관 각서, 수신: 대한민국 합동참 모의장, 2014년 11월 26일.
6. 전략 지시 2호, 1994년 12월 1일.(정전시작전통제권 환수)
7. 군사위원회 및 한미연합사 관련약정, 2b(8)항 및 2b(9)항, 1994년 12월 1일.

9) 한국은 평화협정 당사자임을 주장하기 위하여 정전협정당사자라는 논리를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정전협정서명자가 아니라고 해서 평화협정 당사자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나 일본도 참여할 수 있다. 반대로 정전협정 서명자인 중국이 반드시 평화협정당사자일 필요도 없는 것이다. 둘 사이에는 연속성만이 있는 게 아니라 불연속성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신뢰이다. 정전협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당사국보다 평화협정을 주도할 능력과 신뢰를 줄 수 있는 당사국이 더 중요한 당사국결정요인이 된다. 9.19남북군사합의를 체결함으로서 남북간평화협정의 문턱에 들어선 것이다. 남북미중간 평화협정으로 나아가는 길에 정전협정이 발목을 잡는다면 정전협정과 서서히 결별하는 방향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는 다른 기회에 자세히 다루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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