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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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그러한 고독의 맛을 결코 음미해본 적이 없다면 그때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박탈당했고 무엇을 놓쳤으며 무엇을 잃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을 것이다.

                                                                    - 지그문트 바우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새들이 쉼 없이 지저귀는 것은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렇게 그들은 소통하며 하나의 생명체처럼 하늘을 날아다니고 지상에 내려앉는다.

인간도 동물이라 무리에서 떨어지는 게 무섭다. 그래서 우리는 쉼 없이 카톡 카톡하며 곁에 팔로워들이 있음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나는 시골에서 읍내의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스스로를 ‘따’ 시켰다. 부르디외가 말하는 ‘아비투스(취향)’가 다른 학우들과 지내는 건 너무나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들 주위를 맴돌았다.

나와 신나게 놀던 시골 마을 아이들이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처럼 낯설게 보였다. 새까만 얼굴, 콧물을 자주 훔쳐 반질반질해진 옷소매. 그들과 자연스레 멀어져갔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나는 항상 긴장했다. 무리에 끼는 것. 전전긍긍하며 보낸 청소년 시절.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갔다.

혼자 있는 시간이 나면 주로 잡생각으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며 혼자 있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은 것 같다.

사범대학의 특성상 튀는 아이들이 없어 별 무리 없이 학교생활을 했다. 철학 공부모임에서 철인들을 접하며 ‘인생에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이 있는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뒤 직장에 다니면서 무리지어 다니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술집을 전전하며 실없는 농담에 억지웃음을 지어야 하는 게 고역이었다.

집에 오면 나가떨어졌다. 차츰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오면 뭔가 새로운 기운이 충전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끝내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인이 되어 세상을 떠돌며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 있으면 외롭다. 이 외로움이 싫어 사람들은 쉼 없이 전화를 하고 문자를 주고받는다.

나는 외로움이 밀려 올 때, 온몸으로 외로움을 받아들이면 외로움이 고독으로 바뀌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사회학자 바우만은 말한다.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나는 심층심리학자 융을 공부하며 고독이 인간의 내면에 있는 ‘영혼(자기Self)’을 깨워주는 숭고한 의례라는 걸 알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사회적 지위가 중요하다. 인간의 ‘구별 짓기’는 얼마나 처절한가! 그래서 인간은 항상 높은 곳을 올려다보고 낮은 곳을 내려다본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내면의 세계’가 있다. 동물은 본능으로 살아가기에 무리와 하나의 세계를 이루며 살면 되지만, 인간은 ‘생각’을 하는 동물이라 생각에 따라 천차만별의 세계를 살아간다.

인간은 각자 하나의 세계다. 각자 자기 세계의 신이자 왕이다. 인간 내면에는 융이 말하는 인류가 쌓아온 정신세계, 원형들이 있다. 원형들을 깨우며 인간은 ‘자아ego’를 넘어서 ‘참나Self’ ‘초월적인 인간’으로 거듭난다.

나는 무리에 끼지 못해 안달하던 인생 전반부와 무리에서 이탈해 고독을 발견해가는 인생 중반부를 살았다. 이제 고독을 누리는 후반부를 맞이하고 있다.

인간에게 고독이라는 통과의례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고독을 통해 자기 세계를 만들지 않으면 남의 인생을 산다. 남이 느끼는 대로 느끼고 남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간다.

그들은 항상 허공을 떠도는 느낌이 든다. 인생이 일장춘몽이다. 사는 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자극적인 쾌락을 찾아 한평생을 헤매다 허무감에 진저리 친다.

자신의 세계를 열어가는 희열은 인간이 맛볼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자기 세계를 가져야 남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홀로 불타오르며 만물을 살리는 태양, 향기를 내뿜으며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는 꽃처럼 그는 세상에 이로운 존재가 된다.

자신의 세계가 없는 사람은 남과 더불어 살아갈 수가 없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려 한다. 인간 세상은 아수라장이 된다.

인류가 오랫동안 꿈 꾸어온 세상은 자유로운 개인의 공동체다. 우리는 각자 자기의 세계를 만들어가며 남들과 연대해야 한다. 인간의 세계는 무수히 많은 세계가 중첩된 세계다.

장 루슬로 시인은 ‘세월의 강물’을 담담히 노래한다.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도우려 들지 말아라  
그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은 그를 화나게 만들거나  
상심하게 만들 것이다.  

하늘의 여러 시렁 가운데서  
제 자리를 떠난 별을 보게 되거든  
별에게 충고하고 싶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 장 루슬로, 《세월의 강물》 부분

 

다친 달팽이가 지금은 비록 처절하게 패배하더라도 그가 품은 꿈은 후손들에게 전해져간다. 언젠가는 더 강한 달팽이가 탄생할 것이다.

누가 그를 도와준다면 그는 꿈을 포기할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편안함에 젖어 주저앉고 말 것이다.

삼라만상 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각자 하나의 세계다. 우리는 남을 돕는다는 망상에 젖지 말아야 한다. 약자를 돕는 쾌감에 물들지 말아야 한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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