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3월 2일 좋은 교사가 되기를 꿈꾸던 20대의 풋풋한 청년이 충북의 한 고등학교에 첫 부임했다. 노점상하시는 부모님도 크게 기뻐하셨다.

그 학교 학생들에게는 한 가지 불만이 있었다. 야간자율학습 때 필요한 교사들 저녁 식사비와 전기세 등을 잡부금이라는 명목으로 내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교사는 교무회의 때 규정에도 없고 학교예산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잡부금을 폐지하자고 제안했다.

그 제안, 학생들의 합리적인 문제 제기를 전달한 그 제안이 그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부터 교장의 감시와 견제가 시작됐고 부임 두 달 만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연행되었다. 6.25 한국전쟁을 북침이라고 가르쳤다는 혐의였다.

그의 수업을 들은 300여 명의 학생들은 북침이라고 한 적이 없다고 했고 7명의 학생들만이 북침설을 들었다고 했다. 그 7명 중 2명은 공교롭게도 그 날 결석한 학생이었다. 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해직돼 실형을 살았고 그 후 32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재심절차를 거쳐 무죄판결을 받았다.

잘못된 관행에 대하여 합리적인 문제제기를 하다가 사상을 의심받고 처벌받는 일, 일제시대나 한국전쟁 때나 있을 법한 이 철지난 서사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벌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국가보안법에 대해 반민주, 반통일, 반인권 등 여러 규정을 할 수 있겠지만 이 서사의 주인공인 강성호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국가보안법은 반인륜적 법이라고. 학생들의 처지를 볼모삼아 선생을 처벌하기 위해 거짓 증언을 시킨 반인륜적인 법이라고 말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받았을 고통과 마음의 상처가 절실히 느껴지는 말씀이었다.

국가정보원 충북지부 앞에서 용공 조작 사과하고 관련 자료 공개하라고 발언 중인 강성호 교사와 국가보안법 폐지 전국대행진단. [사진 - 통일뉴스 신찬비 통신원]
국가정보원 충북지부 앞에서 용공 조작 사과하고 관련 자료 공개하라고 발언 중인 강성호 교사와 국가보안법 폐지 전국대행진단. [사진 - 통일뉴스 신찬비 통신원]

국가보안법 폐지 전국대행진단이 8일차 일정을 시작한 곳은 교육의 도시 충북 청주이다. 청주에서 만난 강성호 교사의 사연은 누구든 그저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타당한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그것을 얼마든지 눈에 보이지 않는 사상의 문제로 옭아매어 한 사람을 철저히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가보안법 폐지 전국대행진단과 강성호 교사를 포함한 충북의 민주시민들은 오전 10시 국가정보원 충북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대행진단의 대표인 김재하 진보연대 상임대표는 헌법과 정부 위의 기관으로 군림하며 대통령마저도 사찰하는 국가보안법의 실행자들인 국가정보원을 규탄하였다. 김선혁 민주노총 충북지역 본부장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진정으로 위협하는 세력은 화천대유의 주범들과 재벌들이라고 외쳤다.

대행진단은 이후 사창사거리를 거쳐 청주 실내 체육관까지 도보 행진을 하였다. 가을비가 풋풋하게 흩날리는 청주의 깨끗한 거리를 걸으며 시민의 자유가 더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망국적인 국가보안법을 반드시 폐지하자는 민주시민의 소망을 만방에 알렸다.

가보안법 폐지 전국대행진단은 청주 시가행진을 끝내고 청주 실내 체육관 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신찬비 통신원]
가보안법 폐지 전국대행진단은 청주 시가행진을 끝내고 청주 실내 체육관 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신찬비 통신원]

이후 대행진단은 원주로 이동했다. 민주당 송기헌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입법 청원자가 10만 명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인 현실을 규탄하며 거대 여당 민주당이 하루라도 빨리 국가보안법 폐지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하고 거리 행진을 하였다. 거리에서 만나는 시민들은 미소와 박수, 함성으로 국가보안법 폐지의 당위성에 힘을 보태주었다.

민주당 송기헌 의원 사무실 앞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입법 발의를 촉구하는 전국대행진단. [사진 - 통일뉴스 신찬비 통신원]
민주당 송기헌 의원 사무실 앞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입법 발의를 촉구하는 전국대행진단. [사진 - 통일뉴스 신찬비 통신원]
국정감사 중인 송기헌 의원을 대신하여 신수철 보좌관에게 입법발의 청원을 전달하는 국가보안법 폐지 전국대행진단. [사진 - 통일뉴스 신찬비 통신원]
국정감사 중인 송기헌 의원을 대신하여 신수철 보좌관에게 입법발의 청원을 전달하는 국가보안법 폐지 전국대행진단. [사진 - 통일뉴스 신찬비 통신원]

“국가보안법 폐지하고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대행진에 참여한 강원 지역의 젊은 청년들은 이렇게 외쳤다. 일제시대 치안유지법에 원형을 두고 이승만 시절에 만들어진 구시대 악법, 국가보안법 따위는 이제 폐기 처분하고 21세기 대한민국의 국격에 걸맞게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할 때임을 외치는 젊은 세대의 바람을 소중히 받아 안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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