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자 통신원 / 국가보안법 폐지 전국대행진단 공동단장

 

지금 우리 사회는 국가보안법 폐지의 결정적인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전국대행진단은 5일차인 9일, 여수 실습현장에서 세상을 떠난 고 홍정운 학생을 추모했다. [사진 - 통일뉴스 박미자 통신원]
전국대행진단은 5일차인 9일, 여수 실습현장에서 세상을 떠난 고 홍정운 학생을 추모했다. [사진 - 통일뉴스 박미자 통신원]

국가보안법 폐지 전국대행진 5일차인 9일, 대구 10월항쟁의 아픔을 기억하며 우리는 전라남도 여수로 출발했다. 여수로 향하는 행진단은 지난 10월 6일 고등학교 실습현장에서 세상을 떠난 고 홍정운 학생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안타깝고 착찹했다.

어떻게 실습중인 어린 고등학생을 실습현장에서 혼자 잠수작업을 하도록 방치할 수 있었을까! 어두운 바다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청년들의 아까운 죽음이 거듭되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참사로 소중한 청년들의 죽음이 거듭되고 있다. 삼가 고홍정운 학생의 명복을 빌었다.

전국대행진단은 ‘여순사건 위령비’ 앞에서 참배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박미자 통신원]
전국대행진단은 ‘여순사건 위령비’ 앞에서 참배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박미자 통신원]
여수시 만흥동 ‘여순사건 위령비’. [사진 - 통일뉴스 박미자 통신원]
여수시 만흥동 ‘여순사건 위령비’. [사진 - 통일뉴스 박미자 통신원]

국가보안법 폐지 전국대행진단은 여수시 만흥동 ‘여순사건 위령비’앞에서 참배하였다. 위령비에는 “만성리 희생자는 1948년 11월 초순경 부역혐의자로 잡혀있던 종산초등학교 수용자중 수백명의 민간인이 이곳으로 끌려와 집단희생된 곳입니다.”라는 내용이 적시되어 있었다.

민간인들이 도대체 왜 집단적으로 학살당했는지에 대한 원인과 누구에 의해서 학살되었는지에 대한 가해행위의 주체에 대한 명시 없이 그저 희생되었다는 내용으로 서술되어 있는 점이 아프게 눈에 들어왔다.

기자회견에서 지역대표의 발언에는 이에 대한 과제가 담겨있었다.
“위령비의 명칭은 여순항쟁 위령비로 수정되어야 합니다. 이 항쟁은 제주에서 일어난 4·3항쟁을 진압하고 제주동포를 학살하라는 이승만 정권의 명령을 거부하고 들고 일어선 14연대 군인들의 저항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분들께서 이승만정권의 명령에 복종하고 제주 동포들에게 총을 쏘아야 했을까요?”

[사진 - 통일뉴스 박미자 통신원]
[사진 - 통일뉴스 박미자 통신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같은 질문을 하면서 피울음을 울었을까?
위령비 앞에서 바라보는 여수의 푸르른 바다는 말없이 깊고 푸르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은 제주민들의 항쟁에 대한 학살에 가담하지 않고 저항했던 군인들과 이 군인들을 지지하는 수많은 민간인들과 유족들을 학살하기 위해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였다.

2000년에 ‘제주 4·3사건 특별법’을 제정하였고, 2021년 6월 29일, ‘여순사건 특별법(여수·순천 10.19일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여순항쟁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반란이라는 낙인과 연좌제로 인한 억울한 세월을 보낸 기간은 국가보안법 제정 73년과 같은 기간이었다. 국가보안법으로 그들을 학살했고 지속적으로 탄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국가보안법은 73년째 유지되고 있다. 여수에서 이순신 광장을 거쳐서 시민회관으로 행진하면서 우리는 앞으로 우리의 어린 세대들에게 여순항쟁에 대해서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국가보안법에 학살된 사람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여순항쟁의 원인과 과정을 이야기하면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게 된다는 것이 참으로 모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 통일뉴스 박미자 통신원]
[사진 - 통일뉴스 박미자 통신원]

순천에서 팔마체육관 앞 여순항쟁탑을 참배하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순천유족회회장님은 “우리 서민들은 법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 법 없이도 살 수 있으며, 서로 아껴주고 함께 도우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필요없는 법으로 우리들을 갈라치고 자손까지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국가보안법은 그동안 여수와 순천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갈라치고 분리하며 공동체를 파괴해왔고 이 땅의 방방곡곡에서 함께 돕고 주인으로 살고자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탄압하는 악법 중의 악법이었다.

순천 팔마체육관 앞에 자리한 여순항쟁탑. [사진 - 통일뉴스 박미자 통신원]
순천 팔마체육관 앞에 자리한 여순항쟁탑. [사진 - 통일뉴스 박미자 통신원]
전국대행진단은 여순항쟁탑에 참배하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 - 통일뉴스 박미자 통신원]
전국대행진단은 여순항쟁탑에 참배하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 - 통일뉴스 박미자 통신원]

여순항쟁 유가족들은 국가보안법으로 학살당한 가족을 추모하는 것도 단죄를 받았고, 연좌제에 의해 무자비한 차별과 혐오로 피해를 받았기 때문에 그리운 가족을 숨기고 살았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가족을 추모하고 싶어도 추모할 수 있는 장소도 없었다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시내에서 가까운 곳인 팔마체육관 앞에 여순항쟁탑을 세웠다고 했다. 여순항쟁탑은 유가족들의 고통스러운 현실과 희망하는 대동세상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좌우로 갈라진 돌이 좌우 이념대립과 국토분단을 상징하고 있으며, 위로 높게 뻗은 돌은 희생자의 넋과 통일의지를 담아 형상화시켰다고 한다.

여수와 순천을 거쳐 광주로 오면서 여순항쟁은 여수와 순천을 넘어 구례와 보성, 광양 등 전라남도 주변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으며 5월 광주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이 1995년 제정되었고,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 1995년 5월에 제정되었지만, 여전히 광주항쟁의 진실을 제대로 배우고 알기 위한 과정에서 최대의 걸림돌은 국가보안법이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고서는 5.18민주화운동도, 여순항쟁의 정신도 제대로 교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전국대행진단은 광주에 도착했다. [사진 - 통일뉴스 박미자 통신원]
전국대행진단은 광주에 도착했다. [사진 - 통일뉴스 박미자 통신원]

광주에서 전국대행진단을 환영하는 간담회자리에서 장헌권 목사님은 대행진단이 입고 있는 조끼의 보라색이 기독교에서는 고난을 상징한다고 말씀하셨다. 고난을 통해서 새롭게 부활할 수 있는데, 국가보안법을 없애고 새로운 생명력이 부활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의 대행진을 시작하는 시간은 새로운 시민촛불을 들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우는 기회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지난 촛불혁명이 적폐청산을 외쳤다면, 이제 새로운 촛불은 우리 전국방방곡곡에서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세상을 선포하고 만들어가는 촛불을 들어야 할 것이다.

[사진 - 통일뉴스 박미자 통신원]
[사진 - 통일뉴스 박미자 통신원]

국가보안법 폐지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
국가보안법 폐지하고 민주주의 실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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